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병참기지화정책
          • 1)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의 전환
          • 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1) 군수산업으로의 자원 집중
            •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 (3) 군수원료로서 광물의 생산 및 이출 급증
          • 3) ‘병참기지화’ 정책과 조선경제
            • (1) 성장을 모색하던 조선인 자본가의 한계
            • (2) 생산력과 기술 이전의 제약
          • 4) 한국자본주의사에서의 ‘병참기지화’ 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 3) 교육정책
          • 4) 언론통제정책
          • 5) 조선어 말살정책
          • 6) 창씨개명
          • 7) 신도 강요
          • 8) 결혼정책
          • 9) 징병제와 참정권
        • 3. 전시수탈정책
          • 1) 전시동원체제의 구축
          • 2) 농업증산정책과 농산물 수탈
            • (1) 조선증미계획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
            • (2) 부락생산확충계획과 농촌재편성계획의 내용
            • (3) 미곡공출의 전개 과정과 농가경제의 파탄
          • 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
            • (1) 노동력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 조사
            • (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 (3) 농촌노동력의 동원 실태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1) 식민지 지배정책과 농촌사회의 변동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 (3) 소작쟁의의 격증
          • 2) 농민조합운동과 개량적 농민운동의 전개
            • (1) 농민조합운동
            • (2) 개량적 농민운동
          • 3) 193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격
        • 2. 노동운동
          • 1) 노동조합의 조직과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
          • 2)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3) 개량주의와 어용 노동조합
          • 4) 노동운동의 전개
            • (1) 1930년대의 노동운동
            • (2) 종전기의 노동운동
        • 3. 여성운동
          • 1) 1930년대 여성운동사 기술의 관점
          • 2) 1930년대 여성운동 변화의 기폭제로서의 근우회 해소
          • 3) 1930년대 전반기 여성운동
            • (1) 여성노동운동
            • (2) 여성농민운동
            • (3) 잠녀(해녀)투쟁
          • 4) 1930년대 후반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
            • (1) 193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 (2) 1930년대 후반기 이후 국내 여성농민조직운동과 조국광복회운동
            • (3) 여성운동가들의 결단과 여성지식인들의 일제체제로의 굴복
        • 4. 청년운동
          • 1)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와해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 5. 학생운동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과 민족운동의 변화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
            • (2) 민족운동의 변화
          • 2) 1930년대 학생운동
            • (1) 문화계몽운동
            • (2) 동맹휴학
            • (3) 비밀결사
          • 3) 태평양전쟁하의 학생운동
            • (1) 비밀결사 흑백당의 활동
            • (2) 부산2상·동래중학의 군사훈련 반대항쟁
            • (3) 학병거부항쟁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1) 독립운동정당의 성립과 활동
            • (1) 한국독립당
            • (2) 의열단
            • (3) 신한독립당
            • (4) 조선혁명당
          •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1) 조선민족혁명당
            • (2) 한국국민당
          • 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 (2) 조선민족전선연맹
            • (3) 7당·5당 통일회의와 전국연합진선협회
          • 4) 양대 정당체제의 재현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3)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5) 신한민주당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 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초기 활동
            •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3) 조선혁명군(정부)의 해체와 동북항일연군 합류
          •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2)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주도세력의 관내 이동
          • 3) 동북항일연군내 한인들의 활약과 조국광복회
            • (1) 한인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항일유격대의 성립
            • (2)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의 성립과 한인들의 활약
            • (3) 조국광복회의 결성과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확산
          • 4) 1930년대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의 의의
        • 3. 미주·일본지역의 독립운동
          • 1)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 (1) 193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2) 1930년대 북미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3)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 2) 일본지역 민족운동
            • (1) 1930년대 일본지역 조선인의 상태
            • (2) 재일조선인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전환
            • (3) 1930년대 전반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4) 1930년대 후반·4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
          • 1) 한국독립당의 창당
          • 2) 정부 조직의 확대와 개편
          • 3) 건국강령의 제정 반포
        •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1) 광복군의 창설
          • 2) 중국관내 무장세력의 광복군 편입
            • (1)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편입
            • (2) 조선의용대의 편입
          •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 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1) 좌익진영의 임시정부 참여
          • 2) 좌우연합정부 구성
          •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광복군이 창설되어 활동을 시작한 1940년대는 세계정세가 급변하면서 독립운동의 객관적 조건이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었다. 1937년 중국대륙을 침략한 일제는 戰線을 동남아시아 일대로 확대해가고 있었으며, 1941년 12월에는 미국의 해군기지인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미·일간에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는 즉각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1941년 12월 10일 主席 김구와 외무부장 조소앙 명의로<大韓民國臨時政府對日宣戰聲明書>를 발표,945) 임시정부도 일본과 전쟁에 돌입한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다.

임시정부의 군사활동 방향도 연합군과의 공동작전으로 설정되었다. 군무부의 군사계획이 “광복군을 확대하여 속히 동맹군과 配合作戰한다”는 전제하에, “태평양 방면에서는 미국과 연계한다”거나, “한국과 일본본토에 지하공작을 진행하며 미국과 배합작전하여 해상으로 조선반도에 진입한다”는 등946) 연합군과 연계하여 대일전쟁을 전개한다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광복군으로 하여금 연합군과 함께 대일전쟁을 전개하게 함으로써 戰後 연합국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것이 임시정부의 戰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광복군은 당시 일본과 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중·영·미 등의 연합군들과 그 절차나 형태는 각기 달랐지만, 일정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활동하였다. 중국군과는 창설 당시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광복군 창설 자체가 중국측의 양해와 협조하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광복군은 중국 군사위원회에 사실상 예속되어 중국군과 함께 활동한 것이다.

영국군과도 함께 대일전쟁을 전개하였다. 인도·버마(미얀마)전선에 광복군 공작대원들을 파견하여 영국군과 함께 대일전쟁을 수행한 것이 그것이다. 인도·버마지역에서는 영국군과 일본군이 대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버마는 연합군이 중국에 전쟁물자를 수송하는 주요 통로였는데, 일본군이 이를 점령함으로써 수송로가 차단되었다.947) 영국군이 이를 타개하기 위한 임무를 맡아 인도·버마지역에서 일본군과 전쟁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군과의 공동작전은 영국군측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영국군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하였고, 이를 광복군측에 요청하였다. 광복군에서는 韓志成·文應國 등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공작대원 9명을 선발, 1943년 8월 인도 캘커타(Calcutta)로 파견하였다.948) 이를 계기로 광복군은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전선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광복군 공작대원들은 인도주둔 영국군 총사령부에서 교육을 받은 후,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4개월 동안 영어와 방송기술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1944년 초 영국군에 분산 배속되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영국군은 임팔(Imphal)전선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띠마플·티딤·비센플 등 각지에서도 계속 전투가 이어졌다. 광복군 공작대원들은 영국과 함께 이러한 전투에 참여하였고, 영국군이 하기 어려운 대적방송·포로심문·적문서번역 등 주로 정보활동을 담당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1945년 초 버마에 대한 총반격작전을 비롯하여, 버마 수도인 랑군(Rangoon, 양곤)을 완전히 탈환하여 일본군을 패퇴시키는 1945년 7월까지 계속되었다. 2년여에 걸쳐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전선에서 대일전쟁을 전개한 것이다.949)

광복군은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의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도 합작하여 국내진공작전을 계획 추진하였다.950) OSS와의 합작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려는 광복군측의 의도와 한국인들을 대일전쟁 첩보활동에 이용하려는 미국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이루어졌다. 광복군과 OSS의 합작은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으로 구체화되었다. 독수리작전이란 광복군 대원들을 선발하여 첩보훈련을 실시하고, 이들을 한반도에 침투시켜 적후방공작을 전개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은 OSS측에서 입안되었다. 그리고 OSS측과 광복군 사이에 구체적인 내용들이 협의되었고, 1945년 4월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이를 최종적으로 승인하였다. 이로써 독수리작전이란 명칭하에 광복군과 OSS와의 합작이 실현을 보게 되었고, 5월부터 3개월 과정의 OSS훈련에 들어갔다. OSS훈련은 무전교신과 게릴라 활동을 위한 특수훈련으로 일종의 첩보훈련이었다.

OSS훈련은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西安에서 제2지대 대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훈련이 실시되었다. 훈련책임자는 싸전트(Clyde B. Sargent) 대위였고, 제1기생으로 金俊燁·張俊河 등 50명이 선발되어 훈련에 참가하였다. 또 안휘성 立煌에서도 OSS훈련이 실시되었다. 이는 부양에 있던 제3지대 대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尹永茂·金永逸 등 20여 명이 훈련을 받았다. 훈련책임자는 윔쓰(Clarence N. Weems) 대위였다.

한편 제1기생의 훈련이 8월 4일 완료되자, 서안의 광복군 제2지대는 이들을 국내에 침투시키는 국내진입작전을 추진하였다. 8월 7일 임시정부 주석 김구를 비롯하여 李靑天·李範奭 등 광복군 간부와 OSS측 책임자인 도노반(William B. Donovan) 소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서안에서 국내진입작전을 위한 작전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도노반 소장은 “오늘부터 아메리카합중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사이에 적 일본에 항거하는 비밀공작이 시작된다”고 하여,951) 한미간에 공동작전이 실행된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OSS대원들의 국내침투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이들을 국내에 침투시키기 위한 국내진입작전의 세부적인 계획과 출동준비가 갖추어졌을 바로 그 순간에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일제의 항복소식을 접한 것은 대략 8월 9일 경이었다. 일제의 항복으로 국내진입작전이 좌절된 광복군에서는 곧바로 이범석을 책임자로 한 국내정진대를 구성하였다. 국내정진대는 8월 18일 OSS측과 함께 비행기로 국내에 진입,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하였다가 서안으로 다시 돌아왔다.952)

광복군이 중국군·영국군·미국군과 함께 활동한 것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전략이었다. 객관적 상황으로 볼 때, 한민족의 독자적인 힘만으로 일본군과 전면적 전쟁을 수행하거나 일본을 패망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할 때 최선의 전략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대일전쟁을 전개함으로써, 전후에 연합국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광복군이 중국군을 비롯하여 인도·버마전선에서 영국군과, 그리고 미국의 OSS와 합작하여 공동작전을 추진한 것은 이러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韓詩俊>

945)대한매일신보사,≪白凡金九全集≫5, 102∼103쪽.
946)<韓國光復軍建軍及作戰計劃>(≪韓國獨立運動史資料集≫趙素昻篇 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478∼482쪽.
947)당시 중국측에 제공되던 전쟁물자는 주로 버마 남쪽의 랑군 港으로부터 북부의 라시오를 거쳐 중국 昆明으로 전달되었다. 이 통로는 ‘버마公路’라 하기도 하고, 蔣介石을 원조한다는 뜻에서 ‘援蔣루트’라고도 불렀다.
948)≪독립≫,1945년 6월 13일,<인도에서 활약하는 조선용사들>.
949)韓詩俊, 앞의 책, 266∼271쪽.
950)광복군과 OSS와의 합작훈련에 대해서는 金光載의≪韓國光復軍의 活動 硏究 -美 戰略諜報局(OSS)과의 合作訓練을 중심으로-≫(동국대 박사학위논문, 1999)라는 상세한 연구가 있다.
951)金 九,≪백범일지≫, 345쪽.
952)<報告;今番國內進入經過에 關한 件>(1945년 9월 8일자로 제2지대장 李範奭이 총사령 李靑天에게 보고한 문건).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