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병참기지화정책
          • 1) ‘조선공업화’ 정책에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의 전환
          • 2) ‘병참기지화’ 정책의 특징
            • (1) 군수산업으로의 자원 집중
            • (2) 생산성 감퇴를 수반한 ‘산업고도화’의 실상
            • (3) 군수원료로서 광물의 생산 및 이출 급증
          • 3) ‘병참기지화’ 정책과 조선경제
            • (1) 성장을 모색하던 조선인 자본가의 한계
            • (2) 생산력과 기술 이전의 제약
          • 4) 한국자본주의사에서의 ‘병참기지화’ 정책
        • 2. 국가총동원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1) 민족말살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 2)<국가총동원법>의 확대와 관제운동의 실시
          • 3) 교육정책
          • 4) 언론통제정책
          • 5) 조선어 말살정책
          • 6) 창씨개명
          • 7) 신도 강요
          • 8) 결혼정책
          • 9) 징병제와 참정권
        • 3. 전시수탈정책
          • 1) 전시동원체제의 구축
          • 2) 농업증산정책과 농산물 수탈
            • (1) 조선증미계획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
            • (2) 부락생산확충계획과 농촌재편성계획의 내용
            • (3) 미곡공출의 전개 과정과 농가경제의 파탄
          • 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
            • (1) 노동력의 수요 증대와 노동력 조사
            • (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 (3) 농촌노동력의 동원 실태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1. 농민운동
          • 1) 1930년대 초반 농촌사회의 변화
            • (1) 식민지 지배정책과 농촌사회의 변동
            • (2) 농촌사회 내부의 계급관계의 변화
            • (3) 소작쟁의의 격증
          • 2) 농민조합운동과 개량적 농민운동의 전개
            • (1) 농민조합운동
            • (2) 개량적 농민운동
          • 3) 1930년대 이후 농민운동의 성격
        • 2. 노동운동
          • 1) 노동조합의 조직과 산업별 노조로의 이행
          • 2)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3) 개량주의와 어용 노동조합
          • 4) 노동운동의 전개
            • (1) 1930년대의 노동운동
            • (2) 종전기의 노동운동
        • 3. 여성운동
          • 1) 1930년대 여성운동사 기술의 관점
          • 2) 1930년대 여성운동 변화의 기폭제로서의 근우회 해소
          • 3) 1930년대 전반기 여성운동
            • (1) 여성노동운동
            • (2) 여성농민운동
            • (3) 잠녀(해녀)투쟁
          • 4) 1930년대 후반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지식인
            • (1) 1930년대 후반 이후 노동운동
            • (2) 1930년대 후반기 이후 국내 여성농민조직운동과 조국광복회운동
            • (3) 여성운동가들의 결단과 여성지식인들의 일제체제로의 굴복
        • 4. 청년운동
          • 1)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과 와해
          • 2) 일제의 청년운동 탄압
        • 5. 학생운동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과 민족운동의 변화
            • (1) 군국파쇼 일제의 통치정책
            • (2) 민족운동의 변화
          • 2) 1930년대 학생운동
            • (1) 문화계몽운동
            • (2) 동맹휴학
            • (3) 비밀결사
          • 3) 태평양전쟁하의 학생운동
            • (1) 비밀결사 흑백당의 활동
            • (2) 부산2상·동래중학의 군사훈련 반대항쟁
            • (3) 학병거부항쟁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1. 중국관내 독립운동정당의 활동
          • 1) 독립운동정당의 성립과 활동
            • (1) 한국독립당
            • (2) 의열단
            • (3) 신한독립당
            • (4) 조선혁명당
          • 2) 제 정당의 통합노력과 양대 정당체제의 성립
            • (1) 조선민족혁명당
            • (2) 한국국민당
          • 3) 양대 연합체제와 통합노력
            • (1)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 (2) 조선민족전선연맹
            • (3) 7당·5당 통일회의와 전국연합진선협회
          • 4) 양대 정당체제의 재현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5) 임시정부로의 합류
            • (1) 한국독립당
            • (2) 조선민족혁명당
            • (3)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
            • (4)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 (5) 신한민주당
          • 6)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정당의 특성
        • 2. 만주지역 독립군의 무장투쟁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조선혁명군의 성립과 초기 활동
            • (2) 중국의용군과의 연합항전과 변천
            • (3) 조선혁명군(정부)의 해체와 동북항일연군 합류
          • 2) 한국독립군의 성립과 항일무장투쟁의 전개
            • (1) 한국독립군의 성립 및 중국의용군과 연합항전
            • (2) 한국독립군의 해체와 주도세력의 관내 이동
          • 3) 동북항일연군내 한인들의 활약과 조국광복회
            • (1) 한인들의 중국공산당 입당과 항일유격대의 성립
            • (2) 동북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의 성립과 한인들의 활약
            • (3) 조국광복회의 결성과 ‘항일민족통일전선’의 확산
          • 4) 1930년대 만주지역 독립군 무장투쟁의 의의
        • 3. 미주·일본지역의 독립운동
          • 1)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 (1) 1930년대 하와이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2) 1930년대 북미한인사회의 통일운동과 독립운동
            • (3) 194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 2) 일본지역 민족운동
            • (1) 1930년대 일본지역 조선인의 상태
            • (2) 재일조선인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전환
            • (3) 1930년대 전반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4) 1930년대 후반·40년대 일본지역 민족해방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1.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
          • 1) 한국독립당의 창당
          • 2) 정부 조직의 확대와 개편
          • 3) 건국강령의 제정 반포
        •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 1) 광복군의 창설
          • 2) 중국관내 무장세력의 광복군 편입
            • (1)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편입
            • (2) 조선의용대의 편입
          • 3) 연합군과의 공동작전
        • 3. 임시정부로의 통일전선 형성
          • 1) 좌익진영의 임시정부 참여
          • 2) 좌우연합정부 구성
          • 3)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통일운동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1) 광복군의 창설

임시정부가 중경에 정착할 무렵에는 중일전쟁이 중국대륙 전체로 확산되어 있었고, 유럽에서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러한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임시정부는 대일전쟁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고, 이를 위해 전시태세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임시정부가 전시태세를 갖추기 위해 추진한 대표적인 사업이 韓國光復軍(이하 광복군으로 약칭)의 창설이었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의 창설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1939년 기강에 도착한 직후부터였다. 임시정부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초급장교 양성과 1개 연대 규모의 군대를 편성한다는 군사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915) 그러나 일본군의 점령지역이 확대되면서 임시정부는 중국대륙 여러 곳으로 옮겨다녀야 했고, 계획한 군사활동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기강에 도착하면서 이를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광복군의 창설은 한국독립당에 의해 계획, 추진되었다. 기강에서 3당이 통합을 추진하면서 광복군 창설을 주요 현안으로 결정하였다. 당이 추진해 갈 장단기 정책을 논의하면서 “國防軍을 편성하기 위해 국민의무병역을 실시한다”(당강 6조), “장교 및 무장대오를 통일 훈련하여 광복군을 편성할 것”(당책 3조)이라 하여,916) 광복군 편성을 한국독립당이 추진해 나갈 당면 목표의 하나로 결정한 것이다.

광복군 창설 준비는 크게 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병력을 모집하는 일이었다. 당시 임시정부에는 군대를 편성할 만한 인적 자원이 없었다. 1920년대 이래 黃埔軍官學校·洛陽軍官學校 등을 비롯한 각종 군관학교를 통해 양성한 군사인재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군에 복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李靑天·李範奭·金學奎 등과 같이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중국관내로 이동하여 임시정부에 참여하였지만, 이들은 대부분 군사간부들이었다. 실제 병력이 될만한 인적 기반이 없었던 것이다.

임시정부가 병력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은 일본군 점령지역에 이주해 있던 한인청년들을 모집하는 일이었다. 당시 일본군 점령지역인 北京·天津·石家莊 등을 비롯하여 화북지역에는 약 20만에 달하는 한인들이 이주해 있었다.917) 이들을 대상으로 병력을 모집한다는 것이 임시정부의 방안이었다. 1939년 7월 국무회의에서는 일본군 점령지역에 들어가 한인청년들을 모집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기구로 軍事特派團을 구성하였다. 曺成煥을 단장으로 한 군사특파단은 대부분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하였던 군사간부들과 중국의 군관학교 출신들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그해 11월 陝西省 西安으로 파견되었다. 서안은 화북지역과 최전선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특파원들을 일본군 점령지역으로 들여보내 한인청년들을 모집하고자 한 것이다.

서안에 도착한 군사특파단은 화북지역의 한인교포들을 대상으로 병력을 모집하는 招募活動을 시작하였다. 1940년 6월 李俊植을 주임으로 하여 盧泰俊·安椿生 등의 단원들이 山西省으로 진출하였고, 이들은 중국군 第2戰區 사령관인 閻錫山의 지원을 받아 일본군 제41사단이 주둔하고 있던 臨汾·克難坡 등지를 중심으로 초모활동에 들어갔다.918) 초모활동은 일종의 비밀지하공작이었다. 단원들이 비밀리에 일본군 점령지역으로 들어가 그곳에 거점을 확보하고, 이를 근거로 그곳에 있는 한인청년들을 포섭하여 오는 일이었다. 이러한 초모활동을 통해 병력을 확보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재정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재정의 마련은 주로 미주동포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임시정부는 광복군 창설을 추진하면서 1940년 2월 외무부장 명의로 大韓人國民會를 비롯한 미주지역 여러 단체들에 공문을 보내,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창설한다는 것을 알리고, 이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기 시작하였다.919)

임시정부의 재정지원 요청에 대해 미주동포들은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국민회의 기관지인≪新韓民報≫는 “광복군 조직은 3·1운동 이후 처음 있는 큰 사건”이라며 광복군 창설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힘이 있으면 힘을, 돈이 있으면 돈을 내라”고 하면서,920) 모금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리고 1940년 5월 한국독립당이 창당된 후 하와이 愛國團과 團合會가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로 개편되면서, 이들 단체는 그 조례에 “경제적 책임을 부담함”이라 하여921) 광복군 창설에 대한 경제적 후원을 자임하기도 하였다.

셋째는 중국정부를 대상으로 광복군 창설에 대한 인준과 지원교섭을 전개하였다. 중국 영토내에서 군대를 편성하는 데는 중국정부의 승인과 양해를 얻어야 했고, 또 광복군 편성과 운영에 많은 경비가 소요됨에 따라 중국측에 재정적 원조를 요청할 필요도 있었다. 중국과의 교섭은 주로 중국국민당의 한국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광복군 편성이 중국의 抗日戰에 유익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추진되었다. 김구는 朱家驊를 비롯한 중국측 인사들에게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편성하여 대일전을 수행하고, 일본군에 있는 韓籍士兵들을 빼내면 敵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과 “화북을 안정시키려면 먼저 東北을 수복해야 하고, 동북을 수복하려면 한국독립을 원조해야 한다”고 하면서,922) 광복군의 창설과 이에 대한 원조를 교섭하였다.

이러한 교섭은 중국의 한국담당자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주가화·徐恩曾·康澤 등 한국담당자들 사이에서 오고간 공함들에서 “한적사병을 책동해서 우리에게로 돌아오게 한다면, 이것은 직접 우리 나라의 抗日戰爭에 유익할 것”이라는 것과 이를 위해 임시정부를 원조해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던 것이다.923) 한국담당자들은 이러한 의견을 蔣介石에게 보고하였고, 장개석은 이를 인준하였다. 한국담당 책임자인 주가화는 “한국의 여러 정당이 통일되기 전이라도 저들로 하여금 즉시 공작을 전개하도록 해주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라는 의견을 개진하였고, 이에 대해 장개석은 중국 군사위원회 참모총장인 何應欽과 접촉하여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924)

임시정부는 광복군 창설계획서를 작성하여 중국정부에 제출하였다. 1940년 5월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장 김구 명의로<韓國光復軍編練計劃大綱>을 주가화를 통해 장개석에게 제출한 것이다.925) 이 계획대강의 핵심은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편성하여 韓中聯合軍으로 중국군과 함께 연합작전을 전개한다는 것이고, 중국정부에 광복군 창설에 대한 인준과 재정적 원조를 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장개석은 이러한 계획을 승인하였다. 5월 중순 “한국광복군이 중국항전에 참가한다”는 전제하에 광복군 창설을 승인한다고 하면서, 중국 군사위원회 軍政部로 하여금 이에 대한 조속한 조치를 하도록 지시한 것이다.926) 이로써 광복군 창설계획은 중국 최고 영수인 장개석의 비준을 얻게 되었다.

이와 함께 임시정부는 내부적으로 광복군 창설에 필요한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하였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던 이청천·유동열·이범석·김학규 등을 중심으로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들로 하여금 광복군 창설에 대한 구체적인 실무작업을 추진하도록 한 것이다. 이들은 우선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있던 만주독립군 출신의 군사간부들과 중국의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복무하고 있는 한인청년들을 소집하여 총사령부를 구성한다는 것과, 이를 기반으로 하여 1년 이내에 3개 사단을 편성한다는 부대편성 방안을 마련하였다.927)

광복군 창설 준비가 완료되자, 임시정부는 광복군 창설을 대내외에 공포하였다. 1940년 9월 15일 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 김구 명의로 발표한<한국광복군선언문>이 그것이다.928) 이 선언을 통해 임시정부는 9월 17일 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그리고 1940년 9월 17일 重慶의 嘉陵賓館에서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임시의정원을 비롯하여 중국측 인사와 각국 외교사절들이 참여한 가운데 한국광복군총사령부성립전례식을 거행하였다.929) 총사령부성립전례식이 곧 한국광복군 창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광복군은 지휘부인 총사령부를 구성하여 창설된 것이고, 이후 병력을 모집하여 단위부대로 支隊를 편성해 나간다는 방침이었다. 창설 직후 광복군은 총사령부와 3개 지대를 편성하였다. 총사령부는 총사령 이청천, 참모장 이범석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공진원, 제3지대장 김학규 등이 임명되어 단위부대 편제를 갖추었다. 당시 총사령부의 간부와 지대장들은 모두 만주지역에서 독립군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던 군사간부들로서, 독립군 출신들을 근간으로 하여 광복군을 창설한 것이다.

915)군사위원회는 ‘속성 군관학교를 설립하여 최단 기간 내에 초급장교 200명을 양성하고, 기본군대로 1개 연대를 편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한 사업비로 37만 원의 예산을 책정하였다. 당시 37만 원이란 금액은 임시정부 1년 예산의 65%에 해당되는 것으로 임시정부가 군사사업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국회도서관,≪大韓民國臨時政府議政院文書≫, 247쪽).
916)國史編纂委員會,≪韓國獨立運動史≫資料3(1968), 405쪽.
917)葛赤峰,<朝鮮革命記>(秋憲樹,≪資料韓國獨立運動≫1), 114쪽.

韓志成,<目前環境與朝鮮義勇隊今後工作>(≪朝鮮義勇隊≫제37기, 1940. 5).
918)<1942년 軍務部 軍事報告>(국회도서관,≪大韓民國臨時政府議政院文書≫), 776쪽.
919)≪新韓民報≫, 1940년 2월 29일.
920)≪新韓民報≫, 1940년 6월 20일.
921)金元容,≪在美韓人50年史≫(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8, 1976, 734∼735쪽).
922)1940년 2월 25일자로 徐恩曾이 朱家驊에게 보낸 공함(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國民政府與韓國獨立運動史料≫, 대만, 1988), 206∼207쪽.
923)1940년 2월 21일자로 康澤이 徐恩曾에 보낸 공함(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國民政府與韓國獨立運動史料≫), 205쪽.

1940년 2월 25일자로 徐恩曾이 朱家驊에게 보낸 공함(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國民政府與韓國獨立運動史料≫), 206∼207쪽.
924)1940년 3월 2일자로 朱家驊가 蔣介石에게 보낸 공함(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國民政府與韓國獨立運動史料≫), 209쪽.
925)<韓國光復軍成立經過事實>(≪韓國獨立運動史資料集≫趙素昻篇 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26쪽.
926)<韓國光復軍成立經過事實>:1940년 5월 18일자로 朱家驊가 金九에게 보낸 공함(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6), 653∼654쪽.
927)韓詩俊,≪韓國光復軍硏究≫(일조각, 1993), 86∼87쪽.
928)대한매일신보사,≪白凡金九全集≫6, 294쪽.
929)한시준, 앞의 책, 89∼9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