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Ⅲ. 국학 연구3. 국사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실증사학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은 일제의 식민주의사학의 극복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관심을 보인 역사학자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는 방편의 하나로 역사학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과는 달리 순수학문을 표방하면서 식민주의사학에 학문적으로 대항하고자 하는 일군의 역사연구자들도 있었다. 이미 1920·30년대에 이르러 일본과 국내의 대학에서 근대 역사학을 공부한 연구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 역사연구자의 수가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현실정치의 논리를 초월한 학문적 논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실증사학을 내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이들은 과학적·실증적으로 역사학을 연구하고 일본 관학자들의 식민주의사학에 대해서도 학문적으로 대항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실증사학은 개별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려는 순수 학술활동을 목표로, 실증적인 연구방법을 이용하여 한국사를 연구한 학풍을 지칭한다.209)

 이들 실증사학자들이 일본인 학자들의 주도로 조직된 靑丘學會에 자극을 받아 연구활동의 장을 마련하고, 연구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1934년에 창립한 것이 震檀學會였다. 물론 진단학회에는 李丙燾·李相佰·金庠基·孫晉泰·申奭鎬·柳洪烈·高裕燮 등 역사학자들만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金允經·李秉岐·李在郁·李熙昇·宋錫夏·趙潤濟·崔鉉培 등 국어학·국문학·민속학 등 국학에 관련된 연구자들이 함께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단학회에 참여한 역사학자들은 모두 그들이 전공하는 분야와 시대가 있었다. 예컨대 이병도는 고대역사지리와 사상사를, 김상기는 대외관계사를, 이상백은 조선건국사와 사회제도사를, 손진태는 원시신앙과 민속을, 신석호는 조선정치사를, 유홍렬은 조선교육사와 사상사를, 그리고 고유섭은 미술사를 전공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사 연구가 세분화되기 시작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사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천착이 필요하다는,210) 즉 전문화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실증사학자들은 사료의 자의적 해석이나 일정한 공식에 역사적 사실을 억지로 적용시키는 역사연구 경향을 극복하고, 식민주의사학을 학문적 논리로써 극복하고자 실증사학을 표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민족주의사학이나 사회경제사학에서 제시하는 일정한 법칙이나 공식보다는 구체적인 역사사실의 연구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려고 하였으며, 식민주의사학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211)

 예컨대 이병도는 일본 관학자들의 문헌비판적이고 합리성을 추구하는 고증적인 연구방법으로 주로 고대사와 고려사에 업적을 남겼다. 그는 특히 漢四郡이나 三韓의 위치를 비정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민족주의사학자들이 만주로 비정한 한사군을 한반도에 있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 또 辰國의 강역을 논급하고 箕子朝鮮을 부인한 韓氏朝鮮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상백은 조선건국을 田制改革이라는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둘러싼 정치투쟁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또 조선 초기의 斥佛運動 또한 佛寺의 경제력을 몰수하는 데 주요한 동기가 있었다고 보았다. 김상기는 동학운동을 동학이념의 평등사상과 농민운동을 연결시켜 사회개혁운동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朝貢을 전근대 동양사회의 무역형태의 하나로 파악한 것도 그의 업적이었다. 이러한 연구는 구체적인 역사사실을 고증을 통하여 설명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이나 국내에서 일본인 학자들에게 교육을 받았지만, 식민주의사학과는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고, 민족주의사학이나 사회경제사학과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실증사학의 방법론과 역사인식을 잘 드러낸 것이 이상백이었다.

역사의 사실이란 것은 항상 인간성의 전체에 관련하는 것이다. … 즉 이 역사사실이라는 것은 인간성 전체 위에 있는,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개체가 전체에 관련하는 것은 그 개체를 조금도 變改함이 없이 전체에 관련시킬 수가 있다. 일개의 사건이 그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으면서 넓게 그 시대 전체에 관련하고 또 국민·민족의 전반에 관련하여 이해되고, 다시 인간 전체에 있어서 고찰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李相佰,≪朝鮮文化史硏究論攷≫, 乙酉文化社, 1947, 2쪽).

 하나의 구체적인 역사사실이 인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러한 실증사학자들의 관점은, 바로 식민주의사학의 강요나 민족주의사학과 사회경제사학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였다. 또 그는 “어떠한 원칙을 실증하고 결론을 단정함에는, 정밀한 관찰과 確乎한 사실을 전제로 할 것이요, 독단적 해석과 기계적 적용은 진리를 탐구하는 방도가 아니요, 참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였는데,212) 바로 실증사학을 그대로 대변하는 주장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실증사학의 등장에 대하여 정인보같은 민족주의 사학자는 실증사학자들이 일본인 학자들을 추종한다고 하면서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즉 그는 “≪三國史記≫등의 우리 사서가 남의 기록은 믿고 우리의 것은 배척하였는데, 우리가 문헌을 존중한다고 하면 역사를 顚倒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우려하였다.213) 사회경제사학자들은 실증사학의 학문적 방법론에 대한 의의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역사연구 목적론과 관련하여 역사 발전의 공식과는 무관하다는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214) 즉 사회경제사학자인 이청원은 실증사학자들이 주도한≪진단학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이제 이 학보 제3권의 내용을 보건대 그에는 당연히 제기하여야 할 상당히 귀중한 문제가 많이 있으며, 종래의 케케묵은 通俗史家들보다 엄청나는 발전의 자취가 보인다. 그러나 발전이라는 것은 선행자들과 전혀 본질적으로 다른 발전이 아니고, 오직 그들 선행자들이 제기한 명제를 일반화하고 수정하고 보충하고 다른 일면을 분리하였다는 의미에서 이다. 이 의미에서 우리 학계에 남겨준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러나 그와 동시에 좋지 못한 결과도 산출하였다는 것을 조금도 숨겨서는 아니된다. ‘사회적 운행을 초월한 純粹思惟’이니 ‘순수한 개인이 자기사상’이니 하는 따위의 ‘늘 점진적으로라는’ 기분 좋은 선율에 나아가는 관념적 사관으로, 이 나라의 젊은 학구자들에게 소화불량의 결과를 주었다는 것이 즉 그것이다. 우리는 늘 이상과 같은 관점과 준비 아래서만 이 會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李淸源,<震檀學報 第三卷을 읽고>,≪震檀學報≫4, 1936, 155쪽).

 진단학회의 학문적 분위기를 ‘순수사학’으로 보고 있던 이청원은≪진단학보≫의 업적을 종래의 역사학과는 다른 형태의 발전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한계로 사회성의 결여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발전이라는 것도 “선행자들과 전혀 본질적으로 다른 발전이 아니고, 오직 그들 선행자들이 제기한 명제를 일반화하고 수정하고 보충하고 다른 일면을 분리하였다는 의미”라고 제한시키고 있었다. 이 경우에 실증사학이 문헌비판적이고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으나, 일제의 식민주의사학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해해도 좋지 않을까 짐작된다.

 실증사학자들은 식민지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민족의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사명감에서보다는 한국사 연구에 종사하는 것 자체가 민족적이라는 생각에서 한국사를 연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 스스로 밝혔듯이 일제에 대한 민족적이고도 학문적인 대결 의식이 연구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보인다.215) 철저한 문헌고증으로 학문적인 수준을 크게 향상시켜 일본인 학자들의 업적을 넘어설 수 있던 그 자체에 만족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아무튼 실증사학자들이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자 하는 학문적 태도는 한국사학이 근대 역사학으로 자리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엄격한 사료 비판과 철저한 고증을 연구의 기본 전제로 삼아,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연구업적을 쌓았다. 물론 실증적인 연구방법은 실증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역사학 연구의 기본적인 조건이었다는 점에서, 실증사학자들이 일제 관학자들이 세운 한국사 인식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개별적이고도 구체적인 사실의 해명에만 목표를 둔 이른바 사건 서술적인 역사학이었다는 비판도 있다.216) 또 실증사학자들이 밝혀낸 개별적인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한국사의 발전과정을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되곤 한다. 그러한 비판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그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며, 그 또한 극복해 나가야 할 점이었다. 다만 실증사학자들이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그러한 문제점의 극복이 바로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崔起榮>

209)실증사학의 전반적인 논의는 다음이 참고된다.

金容燮,<우리나라 근대역사학의 발달>2(≪文學과 知性≫9, 1972).

洪承基,<實證史學論>(≪現代 韓國史學과 史觀≫, 一潮閣, 1991).

李章雨,<實證史學의 반성과 전망>(≪韓國史 市民講座≫20, 1997).
210)李基白, 앞의 글(1977), 176쪽.
211)李基白, 앞의 글(1994), 39쪽.
212)李相佰,≪朝鮮文化史硏究論攷≫(乙酉文化社, 1947), 9쪽.
213)鄭寅普,<與文湖岩一平書>(≪薝園文錄≫, 延世大 出版部, 1967), 331∼337쪽.
214)李基白, 앞의 글(1994), 37∼39쪽 및 앞의 글(1991), 184∼187쪽.
215)李丙燾,<創立에서 光復까지>(≪震檀學會六十年誌≫, 震檀學會, 1994), 231쪽.

李章雨, 앞의 글, 33쪽.
216)金容燮,<日本·韓國에 있어서의 韓國史 敍述>(≪歷史學報≫31, 1966), 147쪽.

―――, 앞의 글(1972), 508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