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Ⅳ. 종교1. 일제의 종교정책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3·1운동에서 한국인들의 거족적인 저항에 부딪힌 일제는 무단통치만으로는 계속적인 식민지배가 어렵다고 보고, 1919년 8월 총독을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로 교체하여 정책의 변화를 꾀하였다. 사이토 총독은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하여, 시정개선을 약속하고 저항세력에 대한 회유와 분열정책으로써 이른바 분할통치라고 하는 보다 지능적인 식민지배정책을 구사하였다. 그는 우선 조선총독부 사무분장 규정을 개정하여 학무국에 종교과를 신설하여 그 동안 내무부 제1과에서 다른 업무와 함께 담당하던<神社 및 寺院에 관한 사항>과<宗敎 및 享祀에 관한 사항>을 분리하여 전담하게 하였다.233) 그리고 3·1운동의 탄압으로 악화된 국제적인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하여 정치선전을 강화하고 선교사들을 회유하였다.234) 그리하여 그 동안 선교사들의 불평을 샀던, 기독교계 학교에서 성경 교수와 종교행사를 할 수 없게 규정한 1915년<개정사립학교 규칙>을 폐지하고, 다시 개정하여 종교교육에 대한 규제를 없앴다.235) 이어서 1920년 4월<포교규칙>을 개정하여 교회당·포교소 등을 설치할 때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하던 것을 신고만 하도록 하였으며, 위반하였을 때 벌금형에 처한다는 규정을 삭제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개정된<포교규칙>제12조에 “조선총독은 현재 종교에서 사용하는 교회당, 설교소 또는 강의소 등에서 안녕 질서를 문란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그 설립자 또는 관리자에 대하여 이의 사용을 정지 또는 금지할 수 있다”는236) 새로운 규정을 두어 총독이 직접 종교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총독부는<사찰령>을 통하여 거의 완벽한 통제가 가능했던 불교계에 대해서도 일부 각성한 젊은 승려들의<사찰령>폐지 요구를 묵살하고, 다른 종교계와 마찬가지로 회유·분열정책을 썼다. 승려 2,300여 명이 날인한<사찰령>폐지 진정서를 총독부에 제출하였으나, 이에 대한 찬부를 둘러싼 30본산의 분열을 이용하여, 총독부는<사찰령>을 더욱 철저히 고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1922년 12월 친일적인 성향을 띤 교무원을 재단법인으로 인가해 줌으로써 불교계의 중앙집권화를 통한 통제를 꾀하였다. 이러한 총독부의 중앙집권화, 친일화 의도는 1920년에 만들어진 다음과 같은 ‘조선민족운동에 대한 대책’이라는 문서 가운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①<사찰령>을 고쳐 경성에 전국 30본산을 통할하는 총본산을 세우고 중앙집권화를 꾀한다.

② 총본산의 관장에는 친일주의자를 세운다.

③ 불교진흥촉진단체를 만들어 총본산의 옹호기관 노릇을 하게 한다.

④ 진흥촉진단체 본부를 경성에 두고 회장을 居士 중 친일주의자 가운데 덕망이 높은 사람으로 채운다.

⑤ 이 단체의 사업을 일반 인민의 교화, 죄인의 감화, 자선사업 기타로 한다.

⑥ 총본산·각 본산·불교단체에 상담역으로 인격있는 내지인(일본인)을 둔다.(≪齋藤實文書≫제9권, 고려서림, 1990, 영인본, 143∼151쪽;김순석,<1920년대 초반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 ≪한국독립운동사연구≫13, 독립운동사연구소, 1999, 79쪽).

 조선총독부의 이러한 정책에 따른 교무원이 얼마나 총독부와 유착되어 있었던가는 1923년 30본산 주지회의를 총독부 학무국에서 열고, 총독부 정무총감과 학무국장의 훈시를 듣게 되어 있어 불교계 청년들의 비판을 받았던 데서도 확인된다.237) 총독부는 1929년 6월에도<사찰령>과 그 시행규칙을 개악하여 사찰이 돈을 빌릴 때 담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총독의 허가를 얻도록 하여 주지가 임의로 재산을 담보하지 못하게 하였다.238)

 총독부는 3·1운동 이후 유교계에도 대동사문회·유도진흥회 등 친일단체를 만들어 친일여론을 조성하고, 이런 단체에 가입한 유생들을 중추원 참의로 임명하였다. 특히 1920년 1월에 조직된 유도진흥회는 설립 당초부터 총독부 내무국이 깊이 개입하여, 이를 이용해 상해임시정부의 내부분열에 이용하고자 하였다. 이 회는 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각도에 지부가 결성되고 도지사, 군수 등 지방관들과 유착하여 향교조직을 통해 총독부의 정책에 협력하게 하였다. 이 단체는 설립목적을 “유도를 진흥해서 퇴폐된 유풍을 되살리고, 동양도덕의 진원을 발휘해서 민심의 안정을 꾀하고 국가 진보의 기운에 바친다”고 하여 노골적으로 총독부 통치정책에 협력을 표방하였으며, 실천사항으로 봉건적·복고주의적 예교의 부활·장려를 강조하였다.239) 그러나 이러한 노골적인 친일 표방은 오히려 의식있는 유생들의 반감을 사 총독부가 기대했던 효과는 거둘 수 없었다. 이와 함께 총독부는 1920년 6월<향교재산관리규정>을 개정하여 종래 향교의 재산수입을 관공립보통학교 경비에 충당하던 것을 중단하고 문묘 享祀비용과 지방교화사업 지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의 사용에 관해서는 지방관들이 철저히 감독하게 함으로써 지방관들은 이러한 향교의 재산을 유생들의 회유와 친일유림단체를 조성하여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데 사용하였다. 더욱이 1923년 4월에는<지방문묘직원에 관한 건>을 발포하여 향교직원의 임면에 유림이 일체 관여하지 못하게 하고 지방관청에서 관장하도록 하여 철저히 친일 분자들로 이들을 임명하였다.240) 그리하여 이를 통해 유생들을 회유하고, 이른바 교화사업이라 하여 연설회·강연회·백일장 등에 향교의 재산을 낭비하였다. 더욱이 1929년 6월에는<서당규칙>을 개정하여 서당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였다. 즉 서당의 명칭, 아동 정수, 교수용 도서 등을 종래에는 부윤·군수에게 신고만하면 되던 것을 도지사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서당에서 일본어·조선어·산술을 가르칠 때는 총독부에서 편찬한 도서를 사용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서당의 지도·감독에 대한 훈령을 내려 서당의 인가를 더욱 엄격하게 하고, “적당한 방법에 의하여 국민도덕에 관한 사항을 교수할 것” 등을 지시하였다.241)

 1920년 9월≪동아일보≫가 일본 신도의 3종 신기 숭배를 미신적 우상숭배라고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가 총독부로부터 무기정간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신도에 대한 입장과 태도가 문화정치기에도 전혀 바뀌지 않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총독부는 1925년 조선신궁의 준공을 앞두고 있어, 이 기회를 통해서 신사참배와 신사신앙의 확산을 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정책은 어느 정도 언론의 자유가 주어진 상황에서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기독교계 학교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1924년 5월 兼二浦神社 낙성식에 일반인들로부터 봉축비 명목으로 기부금을 거두고, 그 지역 학생들을 참배시킨 것에 대해서≪동아일보≫가 “맘에 없는 기부, 뜻에 없는 참배”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에 총독부 학무국장이 각 도지사에게<神宮大麻及曆頒布에 關한 件>이라는 통첩을 보내 이의 보급을 장려한 것이라든지, 같은 시기에 발생한 강경보통학교 학생들의 신사참배 거부 사건에 대한 학무국장의 통첩을 보아도 신사신도를 초종교적인 위치에 두고 이에 대한 숭경과 참배를 장려하려는 그들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1925년 10월 조선신궁의 진좌제를 앞두고 이를 공공기관을 통하여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학무국장이 그해 ‘생도 아동의 신사참배에 관한 건’이라는 통첩을 내어 학생들의 동원과 참배를 유도하던 총독부는 기독교계 학교의 불참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이에 총독부는 이를 강요하면 조선인의 반감만 더 사게 될 것이며, “신사를 통해 사상선도를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내부 의견도 있어 적극적인 신사정책을 일시 후퇴하였다. 그리하여 보다 적극적인 강경책을 쓰고, 정책적인 지원을 원하던 신직들의 불평을 사기도 했다.242)

233)≪朝鮮總督府官報≫, 1919년 8월 20일, 號外<조선총독부훈령 제30호>.
234)강동진,≪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한길사, 1980), 17∼114쪽.
235)≪朝鮮總督府官報≫, 1920년 3월 1일,<조선총독부령 제21호>.
236)≪朝鮮總督府官報≫, 1920년 4월 7일,<조선총독부령 제59호>.
237)≪동아일보≫, 1923년 1월 18일,<총독부에 주지회의>.

김광식,≪한국근대 불교사연구≫(민족사, 1996), 227쪽.
238)朝鮮總督府,≪施政25年史≫(1935), 588쪽.
239)강동진, 앞의 책, 226∼229쪽.
240)이명화, 앞의 글, 107∼109쪽.
241)朝鮮總督府, 앞의 책, 586∼587쪽.
242)김승태,<일본신도의 침투와 1910·1920년대의 ‘신사문제’>(≪한국사론≫16, 서울대 국사학과, 1987)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