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과학과 예술
1. 과학
식민지 한국에 과학기술이 있었는가. 현대 과학기술의 핵심적인 모습이라 할 대학·연구기관·과학단체·학술잡지 등은 모두가 식민지시기에 등장한 것들이었다. 이들 중 어느 하나도 이전 시기에는, 물론 그 싹에 해당하는 모습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대 과학기술은 역설적이게도 일제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태동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 행해진 과학기술활동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시기와는 상이한 독특한 특징들이 엿보인다. 과학기술의 현대적 모습이 갖추어지기는 했지만 그 실제 내용에서는 피지배민 한국인들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예컨대 경성제대 이공학부·중앙시험소·조선화학회 등의 구성과 운영에서 한국인은 도무지 참여의 여지가 존재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들이 위치해 있는 지역만 한국일 뿐 그 주도자들은 완전히 일본인 일색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식민지체제 아래에서는 한국의 과학기술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분명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452) 한국인의 주체적인 참여 속에 그 성과가 한국인의 자기 향상, 나아가서는 민족 발전과 관련된 과학기술은 식민지시기라 할지라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 내용과 수준이 일본인의 과학기술에 비해 크게 미흡하고 뒤떨어져 있었긴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자못 큰 것이었다. 한국인들이 열어 나간 한국의 과학기술은 당시는 물론 그 이전과 이후의 시기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지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주권을 상실한 식민지 상황으로 인해 이 시기 한국의 과학기술은 다른 방식으로 진전되게 되었다. 식민지 정부가 그것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할 리는 만무하였으므로 한국의 과학기술은 한국인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이끌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과학교육을 비롯해서 그 계몽 및 활용 등 과학기술과 관련한 대부분을 일제에 의존하기보다는 한국인 자신들이 열어 나가야 하였다. 이처럼 식민지시기 한국의 과학기술은 한국인의 자발적인 활동에 크게 힘입어 그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452) | 이 글은 식민지시기 한국 과학기술을 집중적으로 다룬 金根培,≪日帝時期 朝鮮人 과학기술인력의 성장≫(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1996)을 많이 참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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