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Ⅳ. 종교6. 천주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문학·건축·예술활동

 天主歌辭는 1830년대에 처음 불려지기 시작한 이래 약 1세기 동안 토착화된 한글교리를 신자들에게 전해 주었고, 그들의 교회활동과 신심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 개화기에는 신자들의 의식전환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내용상 많은 제약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1909년 1월 8일≪경향신문≫에 소개된 南相殷(마태오)의<국권학가>와 같은 작품이 자연히 소멸되어 가는 대신에 순수교리와 교회를 노래한 가사만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 형식상으로도 1910년을 전후하여 4·4조 4음보의 장편가사가 6·4조(3·3·4조)나 7·5조(3·4·5조) 등 3음보의 창가형식을 거쳐 현대시로 계승되었다.438) 1924년에 발간된≪죠션어셩가≫에 수록된 천주가사들은 당대의 가사가 아니라 신부 崔良業(토마스)의<향가>(思鄕歌)나 閔克可(스테파노)의<삼세대의>(三世大義) 등 박해기의 가사 내용 14편이었다.439)

 천주가사와 같은 가사문학의 소멸을 재촉한 것은 1927년에 창간된≪천주교회보≫와≪별≫에 소개된 현대시들이었다. 이처럼 교회언론을 통해 등장하기 시작한 가톨릭의 현대시는, 첫째 소재와 내용면에서 가톨릭신앙을 바탕으로 한 시와, 둘째 전통가락을 벗어난 산문시 내지는 자유시로 크게 구분되며, 시기적으로는 위의 언론이 발행되던 제1기(1927∼1933년 전반),≪가톨릭청년≫과≪가톨릭연구≫가 발행되던 제2기(1933년 후반∼1945년)로 구분된다.440)

 우선 제1기에는 시 50편과 시조 6편이 교회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대부분이 교회용어를 사용하거나 신앙내용을 주제로 한 가톨릭적인 생활시였다. 그러나 基洙의<독시>, 鄭芝溶(프란치스코)의<뉘우침>등은 생활시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었고, 전형의<밋음>, 주병환의<元旦漫吟>, 작자미상의<無題>등은 신앙의 발상과 뼈대로 포장하여 時代苦를 노래한 작품이었다. 제2기에는 시 83편과 시조 14편 등 도합 97편이 소개되었으며, 특히≪가톨릭청년≫을 통해서는 정지용·河漢珠·具常 등과 신부 崔珉順이 많은 시를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오면 교회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 중에서도 가톨릭적인 생활시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26편이나 되며, 창작시쪽으로 이동되고 있는 과도기적인 현상도 나타난다. 아울러 趙琯昊의<東方步哨>, 松峴의<無題>등 시대나 현실에 관심을 보인 작품들도 나타난다. 바로 이러한 시들은 당시의 시대조건을 감안해 볼 때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441)

 이 밖에도 일제치하의 교회언론을 통해서는 소설·동화·동시·산문·평론 등이 꾸준히 소개되었으며, 때로는 영시를 번역 게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들에 대한 연구나 분석결과가 나온 것은 없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전문작가가 아니었고, 일반적인 계몽소설과는 달리 종교적인 내용과 호소를 내포한 교화적인 입장에 치우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별≫에는 자연 혹은 인간적인 정서를 노래한 시가 게재되거나 姜石取의 창작 소설인≪回道者≫가 연재되기도 하였다.442) 또≪가톨릭청년≫을 통해서는 정지용이 모더니즘과 동양정신, 그리고 가톨릭시즘을 지향하는 작품을 발표하였으며,443) 金起林·李箱 등이 당대의 모더니즘 문학운동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고, 李東九는 문학평론을 통해 성토마스사상과 중용주의를 바탕으로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에 치우치는 것을 비판하였다.444)

 일제치하에 와서는 교회건축에서도 새로운 양식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베네딕도회가 진출하면서 이전에 프랑스선교사들이 설계한 성당이나 一자형 건축물과는 다른 독일식 건축물이 건립된 것이다. 우선 베네딕도회에서는 한국에 진출한 지 1년만인 1910년과 다음해에 걸쳐 백동 언덕에 2층과 3층의 독일식 건물을 건립하였는데, 이 건물은 성당과 수도원이 한 건물에 있는 복합식구조였다.445) 또 베네딕도회에서는 1920년에 원산교구가 설정되면서 새 수도원 부지를 물색한 끝에 원산 인근의 德源에 부지를 정하고 건축을 시작하여 1927년에 U자형 수도원과 신학교를 건립하였으며, 같은 해 원산에는 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芬道修女會, O.S.B)의 U자형 수녀원을 건립하였다. 덕원의 U자형 수도원은 1931년 나머지 한쪽에 성당건물이 들어서면서 ㅁ자형 복합식건물이 되었다.446)

 당시에 건립된 성당 중에는 현재 사적지나 지방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1906년에 건립한 것을 1916년에 증축한 전북 익산의 華山성당(일명 나바위성당, 사적 318호), 1922년에 건립된 안성성당(옛 구포동성당, 경기도유형문화재)은 대표적인 한·양절충식 성당이었다. 서양식성당 중에서는 1896년에 지은 옛 성당을 개축하여 1937년에 3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식성당으로 완공한 인천의 답동성당(사적 제287호)이 유명하다. 또 지방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서양식 성당으로는, 고딕식 첨탑의 장방형인 원주의 龍召幕성당(1915년), 고딕식 첨탑을 갖춘 T자형인 충남 아산의 공세리성당(1921년), 2개의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식인 충남 당진의 합덕성당(1929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성당들은 대부분 서양성직자들이 본국의 건축양식을 피상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경우가 많았으며, 따라서 내부 공간보다는 외형에만 치중하는 결과를 낳은 데다가 건축양식을 상실한 講堂形(천장의 높이가 동일한 단일공간형) 성당들이 많이 건축되었다.447)

 이러한 성당건축과 함께 탄생한 것은 聖畵라고 불리는 회화작품과 조각품들이었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張勃(루도비코) 작품인 명동성당의 12종도화(1926년), 李順石(바오로) 작품인 약현성당의 성베드로·바오로종도화(훗날 소실됨)를 비롯하여 신의주성당의 성신강림도 등이 있었으며, 이러한 성당벽화와 성상작품들은 동양화풍을 벗어나 새롭고 자유로운 화풍을 추구하던 당시의 미술계에 영향을 주었다.448) 또 베네딕도회의 수사 플뢰칭거(A. Flötzinger)는 명동성당에 안치된 신고딕식의 강론대(1915년)를 완성하였다. 이 밖에도 서양목공예를 전공한 여러 수사들이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고 하지만,449) 현재 그들의 작품성격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시의 천주교전례음악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그레고리오성가였다. 그러나 라틴어로 미사가 집전되는 과정에서 불려진 그레고리오성가는 일반신자들에게 하나의 서양음악이었을 뿐이며, 그 의미보다는 단지 경건한 전례의식의 하나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서울교구에서 현존하는 최초의 한글성가집인≪죠션어셩가≫를 1924년에 간행하면서 69곡의 성가 중에서 14곡의 가사를 천주가사인<향가>와<삼세대의>에서 차용하였다.450) 이후 교회전례음악이 더욱 발전해 가면서 대구의≪공교성가집≫(1928년), 덕원의≪朝鮮語聖歌≫(1928년), 연길의≪聖歌集≫(1935년),≪대구교구성가집≫(1936년), 덕원의≪가톨릭성가≫(1938년) 등에 서양식 한글성가들이 계속 수록되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처럼 한글가사들이 성가집에 수록된 것은 한글성가의 발전적인 측면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사들은 노랫말로만 수용되었을 뿐 음악으로 수용된 것이 아니었으며, 고유의 민족성가로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첫째 서양식 한글성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민족음악을 기방음악으로 품하시킨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경건주의 음악관에 빠져 한글가사가 한국적 음악으로 더 잘 표현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고, 셋째로 제도교회가 일제와의 마찰을 꺼려하여 민요풍의 한글성가가 불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451) 그 결과 일제치하에 간행된 한글성가집들은 고유의 한글가사를 원용하였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를 발전적인 차원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車基眞>

438)河聲來,≪天主歌辭 硏究≫(성황석두루가서원, 1985), 298∼309쪽. 1911년에 창간된≪경향잡지≫에도 처음에는 3음보의 가사들이 소개되다가 점차 창가와 자유시가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439)張安淑,<韓國가톨릭聖歌의 歷史的 變遷에 관한 연구>(≪韓國敎會史論文集≫I,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518쪽.

趙善宇,<한국가톨릭성가의 수용사>(宋基寅神父 華甲紀念論叢≪歷史와 社會≫, 현암사, 1997), 188·194쪽.
440)姜熙根,<한국천주교회의 시문학활동>(≪한국천주교회사의 성찰≫,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533쪽.
441)姜熙根, 위의 글, 546쪽.
442)안홍균, 앞의 글, 414쪽.
443)정의홍,<鄭芝溶文學에 나타난 가톨리시즘>(≪교회와 역사≫154, 1988), 14쪽.
444)具仲書,<日帝下의 “가톨릭靑年”誌 연구>(≪교회와 역사≫108, 1984), 16쪽.
445)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앞의 책(1995), 193∼194쪽.
446)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위의 책(1995), 220∼223·251·273·302쪽.
447)김정신,≪한국가톨릭성당건축사≫(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61∼77쪽.
448)최석우,<韓國의 開化와 그리스도敎>(≪韓國 敎會史의 探究≫,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455쪽.
449)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앞의 책(1995), 195∼197·271∼273쪽.
450)≪죠션어셩가≫에 앞서 나온 한글성가집으로는≪사리원성가집≫(1921년)과 덕원의≪朝鮮語聖歌≫(1923년)가 있었다고 한다(趙善宇, 앞의 글, 193쪽).
451)趙善宇, 위의 글, 183·194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