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Ⅴ. 과학과 예술1. 과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한국인이 해외유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20년대부터였다. 무엇보다도 3·1운동의 좌절경험과 이로부터 얻어진 일부의 성과가 그것의 중요한 배경을 이루었다. 이 때부터 즉각적인 독립을 위한 활동 못지 않게 그를 대비한 실력양성의 필요성이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에서 보여지듯 각 분야에서 절실히 느껴지게 되었다. 특히 전통교육에서 근대교육으로의 전환과 이에 대한 열의는 다분히 일제에의 대항 및 대응의 성격을 지니며 거세게 나타났다.

 이 때부터 해외유학이 그 동안의 각종 제재 및 억제조치가 다소 완화된 결과 한결 자유로워졌다.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을 위해서는 일본의 소학교나 중학교 단계부터 유학해야 했던 것이 학제와 교과과정의 개선으로 그렇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한국에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일본의 고등학교로, 때로는 전문학교 졸업자들이 곧바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 유학기간이 크게 단축되었다. 비로소 짧은 기간과 적은 비용으로도 해외유학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로써 유학의 기회가 일부 특권층-출중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자산을 가진-에서 더욱 넓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464)

 사실 한국인들에게 해외유학은 앞선 선진학문을 교육받을 수 있는 주된 통로였다. 이 때문에 병합 이전부터 한국에서는 고등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관비유학생을 해외로 꾸준히 파견하였다. 일제도 이 같은 한국에서의 노력을 묵과할 수 없었던 관계로 한동안 관비유학 제도를 그대로 유지시켜 나갔고 결과적으로 이 제도가 해외유학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 시기에 들어 개인이 앞장서서 스스로의 힘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민간 주도에 의한 사비유학으로 주된 흐름이 바뀌게 되었다.

 식민지 경험은 한국인들에게 국가보다는 각 개인의 주동적이고 자발적인 역할이 중요함을 인식하게 하였다. 유학 경비를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뿐만 아니라 유학과정과 수학후의 진로 등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였다. 결코 식민지 정부가 나서서 해외유학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장려, 지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총독부의 역할은 그것이 한국 통치에 가져올 파장을 예의 주시하며 그 추이를 적절히 통제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의 해외유학은 다른 국가에서와는 다르게 정부 주도가 아니라 일찍부터 개인이 앞장서는 민간 주도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해외유학의 주된 대상 국가는 일본과 미국이었다. 일본은 무엇보다 식민지 지배국으로서 정치외교적 관계가 긴밀하고 가장 인접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일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생활 관습이 매우 흡사한 점 등의 이유로 선호되었다. 이와 함께 일본 본토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국내는 물론 다른 국가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보다 훨씬 우대를 받았던 점도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그에 비해 기독교계 학교 출신자들 중에는 선교사들의 지도 및 후원, 상대적으로 많이 실시된 영어교육, 선진 학문 중심지로서의 인식, 문명화된 국가에 대한 동경심 등으로 미국유학을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졸업후 진로가 불투명함에도 대부분 기독교 신자들로서 독실한 종교적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미국행을 택하였다.

 일본유학은 1919년까지만 해도 6∼7백 명 수준-다른 국가로의 유학보다 많은 수치이기는 하지만-에 머물던 것이 이후 급격히 늘어나 1923년에는 4천5백여 명에 이르렀다. 물론 관동대지진에 따른 한국인들의 무고한 사상으로 잠시 침체를 맞기도 했지만 다른 국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았다. 특히 1930년대 중반부터 유학생 수가 다시 급격히 불어나며 1940년대에는 전체 규모가 2만 명을 넘어설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중등학교 혹은 전문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어서 대학 재학생은 전체의 1/10에도 크게 못미쳤다. 게다가 더 문제인 것은 이들 대학 재학생 중 이공계 전공자는, 과학기술의 인식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전공 선택이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과 판단에 맡겨짐에 따라, 5% 내외(의학과 농학도 비슷)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이다.465)

 이렇게 과학기술을 전공하려고 한 사람들이 적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식민지체제에서 나타난 과학기술을 둘러싼 지배국과 피지배국 간의 사회문화적 괴리에 기인한 바가 컸다. 일본은 일찍부터 서구 과학기술의 수용과 발전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인 까닭에 이 무렵에는 이미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발전 정도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서 있었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은 사회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녀 이공계 대학은 국가가 운영하는 명문 관립대학에 설치되었고 그 전공자는 사회상층의 집안으로부터 나왔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위상이 식민지로 전락되면서 오히려 낮아짐에 따라 의욕적이고 우수한 사람들로부터 이공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힘들게 되었다. 그보다는 사회 중하층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고 이를 전공함으로써 적은 수이지만 이공계 대학 졸업자들이 나오게 되었다.466)

 그에 비하면 미국유학은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유학생 전체 규모가 일본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고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음에도 대학 재학생은 일본의 절반 가까이에 이른 적도 있었다. 이들은 해외유학에 남다른 의지를 가지고 비교적 많은 준비를 하며 어려운 여건을 헤쳐나가야 했기에 상당수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이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20%(의학과 농학은 15%)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많았다. 이는 일본으로의 유학이 당시 상황에서 볼 때 권력 추구와 밀접히 관련된 학문 습득에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면 미국유학은 그 같은 길이 막히면서 보다 기술적인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데 요구되는 전공을 선택한 결과였다.467)

 식민지시기 동안에 이공계 대학 졸업자는 총 4백 명 정도가 되었다. 이 수치는 그 동안 추산한 것보다는 훨씬 많지만 그렇더라도 매우 적은 인원에 머물렀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런데 이들 중 국내의 경성제대 출신자 37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가 해외유학을 통해 배출된 사람들이었다. 국가별로는 일본 2백 명, 미국 1백 명, 그밖에 만주·유럽 등지에서 50명 정도가 나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 박사학위자는 극히 적은 약 10명으로 모두가 일본과 미국에서 각각 5명씩 배출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이학과 공학 박사학위는 李源喆(미시간대학, 천문학)과 崔晃(오하이오주립대학, 화학공학)이 각각 1926년, 1934년에 취득하였다.468)

 그나마 이 정도의 인력이라도 양성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 스스로의 개인적 노력과 주변의 격려에 힘입어 이루어진 해외유학의 덕분이었다. 당시 해외유학은 민족의 앞날이 걸린 거족적인 일로 여겨지던 시대 분위기여서 유학 당사자들은 흔히 많은 사람들의 큰 기대 속에 축하를 받았다. 경제적 여력이 없어도 장래가 촉망되거나 향학열이 남다른 사람들은 가깝게는 주변친지, 멀리는 독지가들로부터 상당히 기대 섞인 후원을 받기도 하였다. 유학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올 때도 성대한 환영을 받고 일간지에 그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될 만큼 일대 뉴스거리가 되었다. 결국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출현하게 된 과학기술자들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의 의도하지 않은 부수물보다는 한국인 자신들이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서 얻은 결과의 몫으로 크게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교육, 그 하나로서의 해외유학은 일제 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응의 한 양식이었다. 민족 전체적으로는 국가의 주권을 되찾는 데 필요한 실력양성을 기르고 개인적으로는 우월한 능력을 갖추어 차별과 멸시를 벗어나려고 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국가 주도 없이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는 교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하던 그 동안의 전통적 인식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을 입신출세의 수단으로 여기던 전통적인 사고까지 그대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과학기술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수반되어 나타났다.469)

464)金根培, 위의 글, 171∼172쪽.
465)박성래,<한국 과학기술자의 형성 연구>(한국과학재단, 1995).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학·문학 등 전통적으로 중시된, 권력 지향에 도움이 될 문과 계통의 학문분야를 전공으로 삼았다.
466)당시의 처한 현실로써는 과학기술을 통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신분상승을 기하기가 어려웠음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높지 않은 출신배경으로 인해 과학기술로의 진출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467)박성래,≪한국 과학기술자의 형성 연구 2:미국유학 편≫(한국과학재단, 1998).
468)박성래, 위의 책, 72∼87쪽.
469)金根培, 앞의 글(1998), 171∼174 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