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남자
여성의 ‘모던 걸’과 대응되는 신용어로 ‘나카오리 신사’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이는 양복차림의 남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기본형은 서양모자를 쓰고, 양복입고, 구두를 신은 모습이 된다.<단발령>이후 관직자나 유학생들은 공식 석상에서는 양복차림을 하였지만, 그들도 특수층을 제외하고는 집에서나 비공식석상에서는 한복을 입었다. 양복차림은 여성 못지 않게 남성에게도 동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혼기에 있는 처녀들은 상대방 남자가 양복입은 신사이기를 바랬다. 그래서 양복이 귀한 시골에서는 선을 볼 때나 약혼·혼례 때 양복을 빌려 입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기기도 하였다. 빌려 입은 옷이나 구두가 맞지 않아서 어설퍼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한복은 기본적으로 바지저고리 위에 袍가 가감된다. 하의는 바지로 속과 겉모양이 같은데 속에 입는 것은 홑으로, 겉에 입는 것은 홑·겹·솜·누비로 하였다. 포는 특히 남성들에게는 통상예복으로 의례나 외출시에는 필수품이었다. 이때의 포는 의제개혁 이후 周衣가 대중적인 것이었으나, 유림이나 班家에서는 道袍나 氅衣류를 입었다. 공직자나 학생들은 의복개량의 하나로 두루마기에 色衣입기가 권장됨으로 인해서 검정색의 두루마기가 보편화되었고, 1940년대부터 상류층에서는 겨울용으로 모직 옷감을 이용하게 된다. 그러나 黑衣 강요에도 불구하고 의례나 여름용 포는 흰색으로 하였다.
양복의 유입에 따라 남성복은 한복과의 절충식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것이 조끼였다. 조끼는 실용성으로 인해 새로 등장한 옷으로 양복 속에 입는 上衣이다. 소매는 없으나 포켓이 있어 간편하고 편리하므로 양복 조끼를 응용한 한복식 조끼를 만들어 담배 등의 소품을 넣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또한 바지의 허리띠는 옷감을 사용하던 것에서 양복용 가죽띠와 겸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