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Ⅵ. 민속과 의식주4. 주생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식민지기 일본인들의 한반도 진출은 전통적인 주택생산양식을 변환시키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공무원이나 회사원들을 위해 새로운 주택이 요구되었고 일본인 주택업자들에게는 이들을 위해 관사·사택·독신료 등을 공급할 건설시장이 마련된 것이다. 일본인 주택업자들은 1915년부터 주택의 매매·임대를 하면서 주문생산에서 벗어나 주택건설을 사업화하기 시작했다.736) 공급자와 수요자가 분리된 주택시장의 형성은 소위 집장사라 불리우는 한국인 주택업자들의 출현을 도와주었다.

 일제의 식민수탈과 산업화에 따른 이농향도의 인구이동으로 인구의 도시집중이 이루어지면서 대도시에서는 주택수요가 폭증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인 주택업자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마련해 주었다. 1920년대까지 이들의 활동무대는 주로 서울의 도심부에 한정되어 있었다. 당시 서울의 도심부에 있었던 대규모 주택은 이들에 의해 소규모 필지로 분할되면서 수십 호의 소주택군으로 건설되었다.737) 이는 전통적인 주문생산에서 벗어나 상품으로 주택이 건설되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시작이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도심 주변부에 마련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는 이들에게 대규모 주택건설의 무대를 제공해 주었다. 서울의 돈암정·안암정·신설정 등 대규모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에서 이들은 시장적 가치가 있는 주택을 건설해야 했다. 이들이 선택한 주택상품은 개량된 한옥이었다. 일부 상류계층에 의해 선호되는 ‘문화주택’은 당시 대중들의 주의식을 충족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산비가 비싸고, 주택업자들이 가진 기술력의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 이들은 전래되어 오는 주택양식을 기본으로 근대적 건축부재를 첨가하여 새로운 한옥의 양식을 창출하게 된다. 이를 ‘개량한옥’ 또는 ‘도시형 한옥’이라고 부른다.

 도시형 한옥은 서울 경기지방의 전통적인 중·상류 주택을 모방함으로써 상품적 가치를 강조하였다. ㄱ자 혹은 ㄷ자 형태로 마당을 위요하며, 중앙에 대청을 두어 침실을 분리시키는 평면은 서울·경기지방의 전형적 주택평면이었다. 다만 대지가 협소한 관계로 사랑채나 사랑방은 시설되기 어려웠다. 五樑架構의 목구조에 소로를 수장하고, 부연까지738) 단 날렵한 처마곡선을 갖는 기와지붕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상징이었다. 이는 양반집을 동경하던 당시 서민들의 주의식과 기호에 부합한 것이었다.

<사진 3> 명륜동 도시형 한옥 외관

<사진 4>명륜동 도시형 한옥내부

 ㄱ자 혹은 ㄷ자의 평면형태는 사방으로 연접된 이웃집과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서 내부공간의 기밀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적절한 형태였다. 높은 담을 설치할 경우 담과 건물사이에 공간의 낭비가 발생하며, 폐쇄적인 외벽으로 집중형 공간을 만들 경우 채광과 환기가 불량해 지기 때문이다. 다만 택지의 축소로 인해 마당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으며, 도로에 면한 밀집된 대지조건에서 내부공간의 기밀성을 높히기 위해 폐쇄적인 대문간의 설치가 필요했다. 대문간에는 화장실을 설치하여 침실과 격리시키는 전통적 규범을 지속하였다.

<그림 3>경성지방 민가 일반형
葛西重男,<온돌개관>(≪조선과 건축≫19-3, 1940), 22쪽.

 도시형 한옥은 공간의 구성이나 성격·형태를 조선시대 상류주거에 근거하면서도 근대적 건축재료를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개량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도시형 한옥에 새롭게 사용되기 시작한 재료는 벽돌과 유리, 그리고 함석 등이었다. 이러한 재료의 사용은 도시주택에 대한 법적 규제에 기인된 것도 있지만 공간사용의 편리성이나 구조의 내구성·의장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기능적 요구였다.

 새로운 재료의 사용에 따른 전통한옥의 변화에 대해 金鴻植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새로운 재료로서 함석이 저렴하게 공급되자 처마 내밀기를 짧게 하여 지붕의 하중을 줄이는 반면 함석차양으로 처마 내밀기를 대신하였다. 함석의 장점은 물매를 최대한 낮게 할 수 있고 물매의 방향이 자유로웠으므로 추녀 끝을 하늘로 더욱 치켜들 수 있었다. …(중략) 싼 유리의 대량공급으로 대청이나 툇마루에는 미서기 유리문을 설치하여 여름철에만 이용하던 마루의 이용기간을 확대시켰다. 또한 다량의 우수한 벽돌공급은 마루 밑 고막이등 쥐를 막는데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굴뚝은 물론 자연석 혹은 사고석 화장담 상부에 장식으로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김홍식,≪민족건축론≫, 한길사, 1987, 283쪽).

<그림 4>도시형 한옥 평면
송인호,≪도시형 한옥의 유형연구≫(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0), 187쪽.

 한편 니스와 폐인트·타일 등도 기능적 또는 의장적 이유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러한 도시형 한옥의 등장은 일제시기의 주거양상을 이해하는 데 세 가지 측면에서 시대적 의미를 갖는다. 그 첫째는 주택생산양식의 변화이다. 전술한 것처럼 전래되어 오던 1:1 주문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상품생산에 의한 대량공급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이행과정에서 주택건설의 산업화와 주택시장의 형성을 의미한다. 또한 시장에서의 상품적 가치와 대량생산을 위한 규격화와 표준화를 의미한다. 한옥은 산업화 된 주택시장에서 일본식 주택이나 문화주택과 경쟁하여 상품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도시형 주택으로서 한옥의 가능성이다. 도시형 한옥은 좁은 택지와 밀집된 주거군, 공공도로 등 어려워진 대지조건에서도 적용되었다. 마당의 축소나 사랑채의 부재 등을 제외하고는 전통적 공간구성과 주거형태가 존속될 수 있었다. 오히려 근대화된 건축재료를 적절히 이용하여 기능성을 증진시켰다는 점에서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시형 한옥은 식민지 상황에서 주거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인 건축가 笹慶一은 당시의 한국주택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이 때의 한국가옥 지붕의 二重棰柱上에는 斗組를 사용하여 古來의 한국 勾配지붕으로 되돌아 갔다(朝鮮總督府,≪朝鮮≫, 통권 273, 1930).

 그것은 그때까지 지어 본 각종 방식에 불만이 있어 조선 고래의 국수보존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풀이하면서 그것은 일본식 주택보다 한 발 앞선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물론 이러한 주거상황은 도시형 한옥의 보편화에 기인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전쟁을 위한 경제적 수탈과 급속한 도시화·공업화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옥은 더 이상 발전적 확대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우선 식민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일제의 목재남벌로 산림이 급속히 황폐화해 갔으며, 목재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목재를 주요부재로 하는 한옥은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도시의 주택수요가 폭증하면서 단시간에 대량공급이 가능한 주거유형이 요구되었다.

 수공업적 생산방식에 의존하는 한옥의 생산은 이러한 대량생산의 요구에 적합할 수 없었다. 공업재료와 기계적 생산방식으로 생산되는 근대건축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택지에 많은 주택을 싼값에 공급하기 위해 도시주택의 고층화와 고밀화는 필연적 과정이었고, 기계적 생산방식에 적합한 근대건축이 채용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양근대건축이 한옥을 대체하는 보편적 주거유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736)대한주택공사,≪대한주택공사 20년사≫(1979), 161쪽.
737)송인호,≪도시형 한옥의 유형연구≫(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0), 22∼25쪽.
738)오량가구란 도리 5개와 장연과 하연을 이용하여 구성된 지붕틀을 의미한다. 소로는 창방과 장혀사이에 넣은 수장재이며, 부연은 덧서까래를 말한다. 오량가구·소로·부연 등은 조선시대 고급주택에서 사용되었던 건축요소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