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방 이전 미·소의 대한정책
20세기 전반 일본제국주의는 영국·미국 등 구미제국주의 국가들의 양해 아래 ‘동아시아의 헌병’으로 등장하였지만 세계대공황 이후 일본의 침략이 아시아 전역과 태평양지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점차 이들 국가와 대립하게 되었다. 일제는 만주사변(1931)·중일전쟁(1937)을 통해 만주와 중국으로 침략을 확대하였고, 이 단계에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했던 것은 이 지역의 민족해방운동 역량이었다. 이 시기 조선의 반제운동, 만주의 조선인·중국인 연합 항일무장투쟁, 중국 화북지역의 중국공산당 지도하의 항일전쟁, 중국 관내의 중국국민당 지도하의 항일전쟁은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에 맞서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고 민족해방과 독립을 이루기 위해 고난에 찬 싸움을 벌였지만 일제의 침략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일본이 동남아시아로 침략을 확대하면서 이들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네덜란드·프랑스 등 구제국주의 국가들과의 대립이 격화되더니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을 시발로 마침내 미국과 전면적인 전쟁상태에 돌입하였다. 이로써 동아시아지역의 반파시즘투쟁은 식민지·반식민지의 민족해방운동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대 일제의 전면전으로 비화하였다.
중일전쟁 후기부터 일제 지배층에 의해 고창된 ‘대동아공영권’은 일제의 아시아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자 구호였지만 거기에는 이 시기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반영되어 있었다.001) 그것은 조선·대만·만주·중국 등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 일제가 침략을 통해 확보한 지역에 대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배를 목표로 한 것이었고, 구미의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해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식민지 재분할을 요구한 것이었다.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대동아공영권에 편입되어 있었고, 이전부터 일제의 침략전쟁을 위해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과 군수·병참기지 역할을 강제받았지만 태평양전쟁이 발발함으로써 동아시아의 반제민족해방투쟁은 연합국과 동아시아의 민족해방운동세력을 한 축으로 하고 일본제국주의를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양대 세력 사이의 전면적 전쟁으로 비화하였다.
001) | 대동아공영권 구상의 선구는 1938년 近衛文麿 수상에 의해 구체화된 동아 신질서 구상이었다. 이 구상은 원래 구미 제국주의와 공산주의 배격의 명목으로 ‘日滿支블록론’에 따라 중국에 대한 배타적 독점지배를 목표로 한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나 조선·만주·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또 태평양지역으로 일본의 침략이 확대됨에 따라 대동아공영권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이것은 나치즘의 ‘생활권(Lebensraum)’ 이론과 마찬가지로 파시즘 국가들에 의한 세계 재분할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였다. 대동아공영권 구상은 대아시아주의로 분식되었지만 그것은 孫文이나 安重根 등이 주장했던 것처럼 피억압민족을 구미의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 구미열강의 지위를 대신해 낡은 불평등관계를 새로운 불평등관계로 교체한 것에 불과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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