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1. 우리 나라의 발달(3) 고려 시대의 생활

〈몽고의 침입과 고려의 쇠망〉

무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세계적 제국을 이룬 몽고족이 고려에 침입해 왔다(1231). 몽고의 침입을 받은 고려는, 서울을 강화도로 옮기고 온 국민이 힘을 다하여 오랫동안 몽고군에 대항하였으나, 힘이 모자라 결국 몽고와 화의를 맺었다.

이 때, 강화도에서는 몽고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고 삼별초의 군인들이 끝까지 저항하였다. 이들은 한때 그 기세가 대단하였으나, 정부와 몽고의 연합군에게 쫓겨 제주도에서 패하였다.

이로써, 고려는 원나라(몽고가 세운 나라 이름)의 간섭을 받게 되어 오랫동안 자주성을 잃게 되었다. 원나라는 고려의 정치를 감독하고자 그들의 관청을 고려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영토의 일부도 그들이 다스렸다. 이후, 고려의 왕은 원나라와 인척 관계를 맺게 되고, 관제는 격을 낮추어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에 원나라가 쇠약한 틈을 타서 공민왕은 원나라를 배척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즉, 고려에 두었던 원나라의 관청을 철폐하고, 그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도로 찾으며, 또 원나라식의 관제와 연호 및 풍습을 버리게 하였다.

한편, 이 무렵 고려는 밖으로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받고, 안으로는 새로이 중국에서 일어난 명나라와 사귀느냐, 또는 그전대로 원나라와 사귀느냐 하는 문제로 서로 갈리어 다투니, 나라가 매우 어수선하였다.

마침 명나라가 전에 원나라 통치하에 있었던 고려의 땅을 요구하게 되자, 명을 미워하던 최영이 주동이 되어 명나라의 랴오뚱을 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이성계 등의 장수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랴오뚱 정벌에 나서게 하였다.

그러나, 랴오뚱 정벌을 반대하던 이성계는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이켜, 최영의 일파를 없애 버리고 정권을 잡았다.

이리하여, 1392년에는 드디어 고려를 넘어뜨리고 새로이 조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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