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려 귀족 사회의 동요
【개요】
건국한 지 200년이 되어 감에 따라, 고려 사회도 차차 안일만 탐하는 보수적 경향에 빠졌다. 그리하여, 중앙 문신 귀족들은 먼저 지방 세력의 중앙 진출을 막고, 다음에는 무신들의 권한을 축소시켜서 그들 문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러는 동안, 만주에서는 신흥하는 여진족이 금을 세우고, 고려에게 사대의 예를 취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도 보수적 문신들은 묘청의 난이나 토벌하는 등 그들 세력의 현상 유지에만 힘쓸 뿐이었다. 그들은 유교의 경전이나 외는 것을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가, 무신들의 반격을 받아 문신 귀족의 지배 체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문신 세력이 무너진 뒤에 무신들 간의 싸움은 정치 질서를 파괴하였고, 지방 농민이나 천민 집단의 반란을 일으켜 전국이 혼란 속에 빠졌다. 최씨 무신 정권은 이 혼란을 수습하면서 정치 혼란을 극복하였으나, 대내, 대외 양면에서 많은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다.
연구 과제
1. 고려의 북진 정책이 후퇴한 원인은 무엇인가?
2.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무신의 난의 의미는 각각 무엇인가?
3. 무신 집권 시대에 있었던 중방, 도방, 정방 등은 어떠한 기구인가?
4. 무신 집권 시대의 지방 사회의 상황은 어떠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