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과 외구
카알 대제가 죽은 뒤 얼마 안 가서 분할 상속 때문에 제국이 분열하였다. 그리하여, 골육 상쟁을 거듭하다가 베르덩 조약(843)으로 국토가 3분 되었으며, 다시 메르센 조약(870)으로 동 프랑크, 서 프랑크, 이탈리아로 갈라짐으로써 오늘날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제국이 분열되어 싸우는 동안에 지방관들이 실권을 장악하여 할거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왕권이 약화되고 서 로마 황제의 지위도 유명 무실한 것으로 되어 갔다. 그러한 내분에 겹쳐서, 북으로부터는 노르만 족, 동으로부터는 마쟈르 족, 그리고 남으로부터는 이슬람 교도의 침공을 받으니, 서 유럽의 혼란과 고통은 극에 달하였다.
항해에 능한 이교도인 노르만 족은 9세기에 들어서면서 스칸디나비아에서 바다와 강물을 타고 브리튼과 프랑크의 섬이나, 해안을 급습하여 자주 노략질하였다. 서 프랑크는 특히 피해가 컸었으나, 국왕은 그들을 막아 싸울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롤로가 이끄는 바이킹의 무리에게 센 강 하류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노르망디라는 지명이 붙게 된 것이다.
그들 중에는 멀리 에스파니아를 거쳐 지중해로 들어가 이탈리아를 습격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이슬람 교도들이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등을 약탈하고 프랑스 남안까지 위협하였으며, 9세기 말에 헝가리 지방으로 쏟아져 들어온 사나운 마쟈르 족이 동 프랑크를 자주 침범하고, 심지어는 이탈리아까지 쳐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국왕은 이들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고장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변경백을 비롯한 지방의 실력자들이 곳곳에 성을 쌓고, 소성주들이 대성주를 받들어 싸웠다. 그리하여, 이들 대성주는 제후로서 영내의 실질적인 군주이며, 그 영지는 독립국이나 다름없이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