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Ⅲ. 동양 세계의 전개2. 중국 문화의 발전과 동서 문화의 교류(1) 수⋅당의 발전

당의 쇠망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던 당도 현종 말기에 이르러 통치 조직의 동요가 엿보였다. 국가 형성의 근간인 부병 제도가 농민의 국가 관념 희박과 경비 관계로 인하여 모병제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모병에 의하여 편성된 군대의 질이 좋지 않아, 국방상의 요지를 지키는 데 있어서 이민족 출신의 군대와 지휘관에 의지하는 일이 늘어났다. 또한, 지방의 수비를 담당한 절도사들이 군정, 민정, 재정의 3권을 장악하여 이들의 횡포가 날로 늘어나니, 당은 기울게 되었다. 이 때, 절도사인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니(755), 당의 국력 쇠약은 더욱 두드러졌다.

경제 혼란도 절도사의 횡포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였다. 7세기 초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균전제로 경작지를 잃은 빈농이 많이 늘어났으며, 따라서 균전제를 전제로 한 조⋅용⋅조의 세법도 무너지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조⋅용⋅조 제도를 폐지하고 양세법을 실시하니, 이는 호를 기준으로 빈부에 따라 세액을 정하고 여름과 가을 2기로 나누어 세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중국 세법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균전제와 부병제의 붕괴, 절도사의 횡포, 농민의 반란(황소의 난), 재정의 곤궁으로 국력이 쇠약해진데다가 환관의 횡포마저 겹쳐, 당은 주전충에게 결국 망하고 말았다(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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