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Ⅲ.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1. 고대의 정치[5] 남북국 시대의 정치 변화

남북국의 통치 체제

통일 신라는 중앙 집권 체제로 제도를 재정비하였다. 중앙의 정치 체제는 집사부를 중심으로 하여 관료 기구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집사부 시중의 지위를 높였고, 그 아래에는 위화부를 비롯한 13부를 두고 행정 업무를 분담하게 하였다. 그리고 관리의 비리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감찰 기구인 사정부를 두었고, 국립 대학인 국학도 설치하였다.

지방 행정 조직은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하여 중앙 집권을 더욱 강화하였다. 군사⋅행정상의 요지에는 5소경을 설치하여, 수도인 금성(경주)이 지역적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보완하고, 각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였다. 군사적 기능보다 행정적 기능을 강화하여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아래에는 군이나 현을 두어 지방관을 파견하였고, 그 아래의 촌은 토착 세력인 촌주가 지방관의 통제를 받으면서 다스렸다. 또, , 부곡이라 불리는 특수 행정 구역도 있었다.

한편,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하여 외사정을 파견하였고,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군사 조직도 체계적으로 정비하였다. 중앙군의 핵심은 9서당이었다. 서당에는 고구려와 백제 사람은 물론 말갈족까지 포함하여 민족 융합을 꾀하기도 하였다. 지방군으로는 10정을 두었는데, 9주에 1정씩 배치하고, 북쪽 국경 지대인 한주(한산주)에는 2정을 두었다.

통일 신라의 통치 체제 변화는 중국식 정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강력한 중앙 집권적 전제 국가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 관부의 장관과 주의 도독, 군대의 장군 등 권력의 핵심은 모두 중앙 진골 귀족이 독점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발해는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권적 지배 체제를 갖추었다. 중앙의 정치 조직은 3성과 6부를 근간으로 편성하였다.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하였고, 그 아래에 있는 좌사정이 충⋅인⋅의 3부를, 우사정이 지⋅예⋅신 3부를 각각 나누어 관할하는 이원적인 통치 체제를 구성하였다. 당의 제도를 수용하였지만, 그 명칭과 운영은 발해의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발해의 지방 행정 조직은 5경 15부 62주로 조직되었다. 전략적 요충지에는 5경을 두었고, 지방 행정의 중심에는 15부를 두었으며, 그 아래에 주와 현을 두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발해의 군사 조직은 중앙군으로 10위를 두어 왕궁과 수도의 경비를 맡겼고, 지방 행정 조직에 따라 지방군을 편성하여 지방관이 지휘하게 하였다. 국경의 요충지에는 따로 독립된 부대를 두어 방어하기도 하였다.

통일 신라의 중앙 행정

통일 신라에는 위화부(이부), 조부와 창부(호부), 예부, 병부, 좌⋅우 이방부(형부), 예작부(공부) 등이 있어 중국의 6전 제도와 비슷하게 행정을 분담하였다.

상수리 제도

지방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서 이들을 일정 기간 서울에 와서 거주하게 하던 것으로, 고려 시대에는 기인 제도로 이어졌다.
남북국의 형세
발해의 중앙 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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