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사교과서Ⅴ. 사회 구조와 사회 생활3. 근세의 사회[3] 향촌 사회의 조직과 운영

향촌 사회의 모습

향촌은 중앙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향은 행정 구역상 군현의 단위를 말하며, 촌은 촌락이나 마을을 의미한다.

향촌 자치를 위하여 설치한 기구가 유향소였다. 유향소는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며 향촌 사회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한 기구였다. 경재소는 중앙 정부가 현직 관료로 하여금 연고지의 유향소를 통제하게 하는 제도로서, 중앙과 지방의 연락 업무를 맡았다.

향촌 사회에서 지주로 농민을 지배하던 계층은 사족(士族)이었다. 사족은 향안을 작성하고 향규를 제정하였다. 향안은 향촌 사회의 지배층인 지방 사족의 명단으로, 임진왜란 전후의 시기에 각 군현마다 보편적으로 작성되었다. 향안에 이름이 오른 사족은 그들의 총회인 향회를 통하여 자신들의 결속을 다지고 지방민을 통제하였는데, 이들 향회의 운영 규칙이 향규였다.

사림은 도덕과 의례의 기본 서적인 소학을 보급하고, 가묘와 사당을 건립하며, 족보 편찬을 통해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족보는 가문의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안으로 종족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밖으로 다른 집안이나 하급 신분에 대해 우월 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따라서, 족보는 혼인 상대자를 구하거나 붕당을 구별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읽기자료

족보의 의미

내가 생각건대, 옛날에는 종법이 있어 대수(代數)의 차례가 잡히고 적자와 서자의 자손이 구별지어져 영원히 알 수 있었다. 종법이 없어지고서는 족보가 생겨났는데, 무릇 족보를 만듦에 있어 반드시 그 근본을 거슬러 어디서부터 나왔는가를 따지고 그 이유를 자세히 적어 그 계통을 밝히고, 친함과 친하지 아니함을 구별하게 된다. 이로써 종족 간의 의리를 두터이 하고 윤리를 바르게 할 수 있었다. 〈안동 권씨 성화보〉

향촌(鄕村)

군, 현 아래 면, 이(里) 등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몇 개의 자연 촌락으로 구성되었다. 면, 이에는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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