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책(城柵)
삼국이 정립하고 있을 때에 성을 쌓고 책(柵)을 세웠다. 그 중 고구려(高句麗) 동천왕(東川王)은 지금으로부터 1659년 전(247)1)에 평양성(平壤城)을 쌓았는데, 둘레는 2만 4천 5백 3십 9척이고 높이는 13척이었다. 외성은 석축(石築)의 둘레가 8천 2백 척이고 토축(土築)은 2만 2백 척이었고, 둘 다 높이는 32척이었다.
또 영류왕(榮留王)은 지금으로부터 1275년 전(631)에 장성을 쌓았는데, 북으로는 부여성(扶餘城) 동남쪽으로부터 시작하여 서남쪽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1천여 리가 되었다. 무릇 16년 만에 공사를 마치니 그 공사의 광대함을 가히 알 수 있다. 고구려, 백제(百濟)가 멸망하고 신라(新羅)가 통일한 후에는 적국의 걱정이 적었던 까닭에 공사비가 많지 않게 되었다. 다만 헌덕왕(憲德王) 18년(826), 지금으로부터 1080년 전2)에 패강의 장성 3백 리를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