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3장 우리 옷감과 염료의 멋과 아름다움1. 일상 속의 옷감과 염료

백의민족의 유래와 의미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부르게 된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옷감과 염색에 관한 우리 조상들의 관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각 민족마다 좋아하는 옷 색깔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검정색, 일본인 은 남색을 즐겨 입는다. 이와 달리 우리 민족은 흰색을 즐겨 입었다.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흰옷 입기를 좋아하였다는 기록은 중국의 역사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부여는 흰색을 숭상하여, 흰옷을 널리 입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푸른 들에서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사람들의 옷이 모두 희었다.”는 내용도 있다.126)

실제로 삼국시대 사람들은 지배층을 제외하고 대부분 흰옷을 입었다. 당시 지배층은 중국의 옷을 받아들여 주로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었다. 이러한 사실은 벽화나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화려한 옷을 입음으로써 흰옷을 입은 일반 백성들과 차별을 두었다. 이에 연유하여 ‘백의’는 ‘평민’을 뜻하며, ‘금의(錦衣)’는 ‘고관(高官)’을 상징하게 되었다.

<각저총의 부인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 있는 고구려 고분 각저총의 벽화이다. 장막을 들어올린 넓은 방 중앙에서 무덤의 주인공에게 밥상을 올리는 두 여성과 시녀의 모습이다. 이처럼 지배층은 일반 백성들과 구별을 두기 위하여 화려한 옷을 입었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우리 민족은 여전히 흰옷을 즐겨 입었다. 이는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1488년(성종 19) 조선을 다녀간 후 지은 『조선부(朝鮮賦)』에서 “조선 사람들은 모두 흰옷을 입는다.”고 기록해 놓은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 묘소의 도굴을 시도한 독일의 상인 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도 『금단의 나라: 조선 기행』에서 “조선 남자나 여자의 옷 빛깔은 모두 희다.”라고 기록하였다.

한편, 우리 스스로 백의민족임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동안이었다. 당시 우리 민족을 강압적으로 식민 통치하고 있던 일제는 우리 민족이 입는 흰옷을 항일에 대한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은 “까마귀 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시조에서 알 수 있듯이 흰색을 지조와 청결로 인식하였다. 이에 일본인은 조선인이 흰옷을 즐겨 입는 것을 저항의 철학으로 이해한 것이다. 실제로 일제의 단발령과 함께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선 의병들 모두 흰옷을 입었고, 3·1 운동 때에도 흰옷을 입은 조선 백성이 전국을 휩쓸었다.

물론 우리 역사 속에서 흰옷 착용이 금지된 때도 있었다. 1275년(충렬왕 1)에 “동방(東方)은 목(木)의 방위이므로 색(色)은 마땅히 청(靑)을 숭상하여야 할 것인데, 백(白)은 금(金)의 색이라 국인(國人)이 융복(戎服, 몽고식 복장)을 입은 뒤로부터 많이 백저포(白苧布)로 웃옷을 삼으니, 이는 목이 금에게 제압당하는 상입니다. 청컨대 백색의 의복을 금하소서.”라는 대사국(大司局)의 요청을 받고 이를 따르도록 한 바 있다.127)

조선시대에도 태조·세종·연산군·인조·현종대에 여러 차례 푸른 옷을 권장하였으며, 숙종은 아예 푸른 옷 착용을 국명(國命)으로 내리기까지 하였다. 우리나라가 서구 열강의 영향권에 편입되면서 흰옷은 더욱 노골적으로 홀대를 받았다. 1894년 갑오개혁 때 검은 옷을 입으라는 칙령이 반포된 데 이어, 1897년 광무개혁 때는 흰옷 입는 것을 금지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관청에서 반강제적으로 흰옷을 입지 못하도록 막았으나, 도리어 일반 민중의 반감만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평생 농사일에 힘쓴 우리 조상들이 더러워지기 쉬운 흰옷을 즐겨 입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대부분의 복식(服飾) 학자들은 “염색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옷감을 짠 그대로 입었다.”고 주장한다. 둘째, “유교적 관념에 따라 신분을 구분하기 위해 흰옷을 입혔다.”는 시각도 있다. 셋째, “상례나 제례 기간이 유난히 긴 결과, 자연히 흰색 옷을 자주 입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 밖에 최남선은 『조선 상식 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태양의 자손으로서 광명을 표시하는 흰빛을 자랑삼아 흰옷을 입다가, 나중에는 온 겨레의 풍속이 된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필자] 김병인
126)『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魏書)30,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
127)『고려사(高麗史)』 권85, 지(志)39, 형법(刑法)2, 금령(禁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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