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노비
고구려에서 최하위 신분층은 노비였다. 사료에 의하면 고구려에서 노비의 생성요인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전쟁의 포로로서이다. 숱한 침략과정에서 적지않은 인원이 포로로 잡혀와 노비로 부림을 받았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범죄자 혹은 범죄자의 가족으로서 노비가 되는 경우이다.≪삼국지≫고구려전에 의하면 “감옥이 없으며 범죄가 있으면 諸加들이 평의하여 곧 죽이며, 그 처자는 노비가 되게 한다”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빚을 갚지 못해 노비가 되는 경우이다.≪주서≫고려전에 의하면 자녀를 노비로 삼아 公私의 빚을 갚는 경우가 있었다. 다음으로는 타인의 牛·馬를 죽인 자는 노비로 삼도록 하였다.659) 이는 범죄에 대한 처벌인 동시에 재산권의 보호를 위한 조치이기도 할 것이다. 위의 4가지 경우외에 유괴 등에 의한 노비화 등을 상상해 볼 수 있겠으나 고구려사회의 치안상태나 엄정한 법집행의 형편에서 볼 때, 그같은 일이 흔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4가지 경우에서 노비가 사회적으로 어떤 처지에 속했을 것인지는 짐작이 간다. 우선 이들은 정상적인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없었을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포로나 범죄자 혹은 범죄자의 가족은 결코 사회의 정상적인 성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들은 국가기관이나 귀족 기타 경제력이 있는 자, 즉 노비주의 소유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격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특히 牛·馬를 죽인자는 노비로 삼는다고 한데서 노비는 우·마와 대치될 수 있는 존재임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비들이 정상적인 가족구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비주의 특별한 은총이 아니면 그같은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비들은 일상생활에서 주인의 시중을 들기도 하고 농사나 가내공업 등에도 종사했을 것이다. 특히 전쟁을 통해 창출된 다수의 노비들은 공을 세운 귀족들에게 토지와 함께 내려져 귀족들의 대토지경영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노비의 해방은 구체적인 사례로는 보이지 않으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사의 빚을 갚지 못해 자녀를 노비로 내 줄 수밖에 없었던 부모가 만약에 뒤에 그 빚을 갚을 수 있게 된다면 그의 자녀는 노비에서 해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실제 많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임은 물론이다.
659) | ≪舊唐書≫권 199 上, 列傳 149 上, 東夷 高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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