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Ⅲ. 갑오경장1. 제1차 개혁3) 제1차 개혁의 내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1. 청일전쟁과 1890년대의 동아시아
        • 2. 전쟁의 배경과 전개
          • 1) 조선에서의 청·일 대립
          • 2) 일본의 전쟁 준비와 갑오농민전쟁
        • 3. 전쟁의 경과
          • 1) 한반도에서의 전투와 황해 해전
          • 2) 중국에서의 전투
        • 4. 중재와 강화
          • 1) 열강의 중재
          • 2) 강화 외교
        • 5. 전쟁의 영향
          • 1)<시모노세키 강화조약>과 전후의 동아시아
          • 2) 전쟁의 영향과 의의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1. 청·일군의 조선 출병과 농민군의 전주성 철수
        • 2. 청일전쟁의 발발과 농민군의 정세인식
        • 3. 평양전투와 농민군의 동향
        • 4. 일본군의 청국 진입과 농민군의 재봉기
      • Ⅲ. 갑오경장
        • 1. 제1차 개혁
          • 1) 제1차 개혁의 배경
            • (1) 동학농민봉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청일전쟁 중 일본의 대한정책
          • 2) 제1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1차 개혁의 내용
            • (1) 대외관계의 개혁
            • (2) 동학 ‘비도’에 대한 대책
            • (3) 정치·행정제도의 개혁
            • (4)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5) 경제제도의 개혁
            • (6) 군사제도의 개혁
            • (7) 경찰제도의 개혁
            • (8) 사법제도의 개혁
            • (9) 사회제도의 개혁
            • (10) 교육제도의 개혁
        • 2. 제2차 개혁
          • 1) 제2차 개혁의 배경
            • (1) 항일운동의 탄압
            • (2) 내정개혁의 추진
          • 2) 제2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2차 개혁의 내용
            • (1)<홍범 14조>의 반포
            • (2) 대외관계의 개혁
            • (3) 정치제도의 개혁
            • (4)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5) 경제제도의 개혁
            • (6) 군사제도의 개혁
            • (7) 경찰제도의 개혁
            • (8) 사법제도의 개혁
            • (9) 사회제도의 개혁
            • (10) 교육제도의 개혁
            • (11) 기타 개혁
        • 3. 제3차 개혁
          • 1) 제3차 개혁의 배경
          • 2) 제3차 개혁의 추진세력
          • 3) 제3차 개혁의 내용
            • (1) 대외관계의 개혁
            • (2) 정치제도의 개혁
            • (3) 지방행정제도의 개혁
            • (4) 경제제도의 개혁
            • (5) 군사제도의 개혁
            • (6) 경찰제도의 개혁
            • (7) 교육제도의 개혁
        • 4. 갑오경장의 역사적 의의
          • 1) 갑오경장의 실시상황
            • (1) 대외적 자주·독립의 선양 조치
            • (2) 정치제도
            • (3) 지방제도
            • (4) 경제제도
            • (5) 군사·경찰제도
            • (6) 사법제도
            • (7) 사회제도
            • (8) 교육제도
          • 2) 갑오경장의 역사적 자리매김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9) 사회제도의 개혁

조선의 전통사회는 양반중심의 신분제사회로 특징지워 질 수 있다. 그런데 군국기무처는 전통적 신분제도와 문벌 및 출신지역을 가려 개인을 差待하는 관습의 철폐에 착수하였다. 군국기무처가 실시한 사회제도의 개혁은 반상·귀천을 초월한 능력본위 인재등용과 평등주의적·민주주의적 사회질서의 수립, 노비 및 여타 천민층의 점진적 해방, 서얼의 後嗣權 획득과 기술직 中人들의 宦路 확장, 그리고 여성의 대우 향상과 혼인풍습의 개선 등을 포함한 것이었다.

첫째, 군국기무처는 평등주의에 입각하여 양반제도의 혁파를 지향하는 각종 의안을 의결·발포하였다. 7월 30일에 군국기무처는 “문벌·반상의 등급을 劈破하고 귀천에 관계없이 인재를 選用할 것”이라 하여 문벌·반상의 신분적 차이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정책을 천명하였다. 이 의안은 반상의 계급적 차별 내지 양반제도의 혁파를 천명한 것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반과 상, 귀와 천을 가리지 않고 능력본위로 인재를 뽑아 정부의 관료체계를 충원하겠다는 정책을 선언한 것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갑오경장 개시 직전인 1894년 7월 24일에 “대저 국가를 도모하는 도리는 用人으로 爲先하나니 四色偏黨의 論을 일체 타파하고 門地에 구애됨이 없이 오직 어질고 재주 있으면 이를 천거할 것이며, 무릇 내치·외무에 의한 것은 時宜를 힘써 쫓을 것이니 대소 臣工은 각각 奮勵之義를 닦아 극히 予의 寡昧로써 정치를 새롭게 하려는 것을 도와 급히 보국안민의 책을 도모함이 가하니라”429)라는 조칙이 반포되었을 뿐 아니라, 갑오경장기간 양반제도 자체를 혁파하겠다는 혁명적 내용의 개혁안이 나오지 않은 채 ‘능력본위 인재등용’을 강조하는 국왕의 조칙 내지 교서만 여러 번 반포되었기 때문이다.

군국기무처는 “文武尊卑의 구별을 폐지하되 다만 품계에 따라 相見儀를 갖추도록 할 것”이라 하여 문존무비의 전통을, 그리고 “대소 官·士庶人의 等馬의 規를 일체 豁除하되 무릇 고등관을 만나면 다만 길을 양보할 것”이라 하여 官尊民卑의 폐습을 타파하려는 개혁안을 의결하였다. 또한 “비록 평민일지라도 진실로 利國便民할 起見을 가진 자는 군국기무처에 상서하여 회의에 부칠 것”이라 하여 평민에게 제한된 범위의 참정권을 인정하였으며, “무릇 諸 의안으로 이미 윤허 시행토록 한 것은 邦憲으로 삼아 認眞 시행하되 만약 違戾者가 있으면 귀천을 불구하고 據律 論罰하여 단연 容貸치 않을 것”이라 하여 모든 국민이 법앞에 평등함을 명백히 하였다. 마지막으로, “무릇 官人이 비록 고등관을 지낸 자라도 休官 후에는 任便 營商할 것”이란 의안을 가결해 자본·지식·경험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춘 양반관료들로 하여금 사·농·공·상의 전통적인 직업적 편견에 구애받지 말고 근대적 기업에 참여할 것을 권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안들은 총체적으로 능력본위의 인재등용을 재천명하고 나아가 평등주의적·민주주의적 사회질서 내지 근대적 경제질서를 수립하는 데 목적을 둔 개혁안들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군국기무처는 노비 및 천민층의 해방과 관련하여 “公私 노비의 典을 일체 혁파하며 人口의 販買를 금할 것”과 “죄인 자기 외의 연좌율을 일체 勿施할 것”, 그리고 “驛人·倡優·皮工의 면천을 許할 것” 등 일련의 혁명적 개혁안을 제정·공포하였다. 이러한 개혁조치는 조선의 노비제도가 비인도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봉건적 遺制이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타파해야 된다고 주장한 군국기무처 의원들의 이상주의적 동기, 그리고 동학농민봉기에 노비를 포함한 다수의 천민들이 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이들을 민심수습 차원에서 무마하려 한 대원군 등의 정치적 동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취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의안들을 종합해보면, 모든 노비와 일부 천민이 해방되고 또 노비의 매매금지 및 연좌율 폐지를 통해 천민의 재생산이 금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세계에서 드물게 가혹하고 악랄했던 연좌율을 폐지하고 역인·창우·피공을 면천한 조치는 역사적으로 획기적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국기무처가 추진한 이 같은 사회제도 개혁에는 몇 가지 중요한 한계성이 있었다. 그들은 면천의 수혜대상에 노비 이외에 역인·창우·피공만을 골라 지적함으로써 이 범주에 속하지 않은 妓生·內人·牢令 등 다른 천인계층은 제외시켰던 것이다. 또한 처음에는 노비제 혁파와 천민의 면천을 과감하게 실천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각지에서 해방된 노비들이 과격한 하극상 운동을 벌리자 노비의 즉각적인 해방을 중단하거나 점진적으로 추진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 점은 1894년 9월 9일에 전국 지방관에게 시달한<內務衙門訓令>에서 노비가 주인을 경멸하는 행위를 보일 때 이를 적극 억제토록 지시한 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430) 이렇게 따져 볼 때, 군국기무처는 9월 9일 이후 지방관들로 하여금 노비해방을 중단하거나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자세를 취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노비해방 조치는 실은 1894년 이전, 멀리 임진왜란 이래 조선왕조가 꾸준히 추진해 온 노비해방조치-특히 1801년의 內寺奴婢制 폐지와 1886년의 奴婢世役制 폐지-의 연장선상에서 취해진 하나의 완결조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갑오경장 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미 반포된 노비해방령을 철저히 시행하는 것과 노비의 재생산을 금지하는 것, 그리고 노비 이외의 다른 모든 천민신분층에게 면천의 혜택을 주는 것 등이었는데 군국기무처가 취한 조치들은 바로 이러한 미해결과제의 완결을 겨냥한 것으로 그 법제사적 의의에 한계가 있다.

셋째, 군국기무처는 서얼 및 중인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관한 의안들을 의정·반포했다. 이러한 조치는 군국기무처 의원 가운데 서얼 및 중인출신이 많았다는 사실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

우선 군국기무처는 7월 30일에 “嫡妻와 妾에 모두 자식이 없은 뒤에 비로소 率養을 許하여 舊典을 申明할 것”이란 의안을 가결한 데 이어 그 다음날인 8월 1일에 이 의안 마지막 부분에 “令前의 것을 追論할 수 없다”는 일절을 추가함으로써 가정내에서의 서얼의 후사권을 확인하였다. 또 “만약 嫡長子가 자손이 없으면 衆子가, 중자가 자손이 없으면 妾子가 제사를 받든다”는≪경국대전≫의 奉祀조와 “嫡妻와 妾에 모두 아들이 없는 자는 官에 신고하여 同宗의 支子를 세워 잇게 한다”라는 立後조 등 구전의 申明을 의무화함으로써 서얼차대 해소문제를 적어도 법적으로 완결시키려 했다.

다음으로, 군국기무처는 “각 府衙의 칙임관을 派定한 후 먼저 都察院에 회동하여 각 사의 吏胥를 시험하여 文算 才諝가 있는 자는 실시일을 기다려 재능에 따라 관직을 줄 것”이라는 의안을 채택함으로서 유능한 기술직 중인을 될수록 많이 신정부의 관료체제에 흡수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고 “무릇 醫譯雜職 및 賞加人으로 각 府衙의 奏·判任官이 된 자는 모두 新授階級에 따라 시행하되 原資에 구애받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의안은 신규 절차를 거쳐 주·판임관이 된 중인들의 기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기술직 중인들이 많이 발탁·서용되지 않자 “다만 엎드려 생각컨대 정치를 경장하고 百度를 維新하여 비록 비천한 무리라도 진실로 재능이 있으면 모두 嚮用될 수 있는데 오직 世累한 사람만이 홀로 鴻渥을 均霑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비단 取人을 넓게 하는 것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發政 施仁하는 端에도 欠이 있는 것이어서 天聖에 再奏하는 것이 급히 聖聰을 돌리어 폐기된 向隅의 무리로 하여금 聖澤을 고루 입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중인출신 관료들의 불만을 표시하고 그들을 위한 개혁의 추진을 촉구하였다.

넷째, 군국기무처는 “남녀의 조혼을 즉시 엄금하되 남자는 20세, 여자는 16세 이후에 비로소 嫁娶를 허가할 것”과 “寡女의 재가는 귀천을 무론하고 그 자유에 맡길 것” 등 조혼 금지와 과부 재가허용에 관한 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여성의 사회적 대우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였다. 조선사회의 악폐 중의 하나였던 조혼을 금지한 이 같은 조처는≪경국대전≫의 可婚 규정이 제정된 이래 초유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의가 있다. 그리고 각종 폐단을 불러일으켰던 재가금지규정을 철폐한 사실 역시 전통적인 사회·가족제도내에서 여성의 열악한 지위를 향상시키는 단초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431)

429)≪高宗實錄≫, 고종 31년 6월 22일.
430)≪關草存案≫, 갑오 8월 초 10일,<內務衙門訓令>.
431)柳永益,<甲午更張과 社會制度 改革>(≪韓國社會發展史論≫, 一潮閣, 1992), 258∼287쪽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