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통감부시기의 가족관계
통감부가 설치되고 국정이 완전히 일인의 손에 넘어간 후인 1909년에<民籍法>738)과<民籍法執行心得>739)이 제정됨으로써 그 목적과 제도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화되었다.740) 호적은 호구조사의 수단이 아닌 추상적인 명치민법류의 家와 家에서의 개인의 신분관계를 증명하는 공증문서로 되었다. 그리고 호적제도는 작통제 및 호패제와 완전히 결별 분화되어 家 및 家에서의 개인의 신분관계의 등기제도로서 그 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명칭도 호구조사가 아닌<민적법>으로 바뀌었다. 이 시대의 가의 개념은 전근대적인 것이 아닌 명치민법체제하의 가로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창출된 정치적으로는 천황제중심체제 지향,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성립과 관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741)
成籍에 있어서 호구조사규칙에서는 매년 1월에 호적을 수정 작성하였으나, ‘민적부’는 신분관계의 공증문서로서 영구보존문서가 되었으며742), 변경 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신고에 의하여 그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743) 원칙적으로 호주의 신고에 의하지만744), 그 신고사항은 ①출생, ②사망, ③호주변경, ④혼인, ⑤이혼, ⑥입양, ⑦파양, ⑧분가, ⑨일가창립, ⑩입가, ⑪폐가, ⑫廢絶家再興, ⑬附籍, ⑭移居, ⑮改名, (16)친권 또는 관리권의 상실 및 실권의 취소, (17)후견인 또는 보좌인의 취직·경질 및 그 임무의 종료 등 모든 신분관계의 변동으로 규정하고 있다.745) 이것이 곧 호주권으로 연결되어 호주제의 강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중요한 변화는 이제 주거지가 아닌 추상적인 家의 소재지를 의미하는 본적의 지명과 지번이 기재된다. 입적자의 범위도 원칙적으로 주거를 같이하는 생활단위가 아니라 호주의 친족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호주의 친족이 아닌 동거자도 말미에 가족별로 부적하고 사유를 기재하였다. 이것은 비가족원 즉 노비·협호·雇女·雇男 등을 입적케 하던 구제도의 유제인 것이다.
호적기재의 양식상의 변화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자.
첫째, 호주의 4조와 직업란이 완전히 폐지되었다. 봉건적인 신분제의 법적 및 실질적인 폐지에 따른 조치였다. 대신 현실적으로 강력한 호주권으로 재창출된 전근대적 호주중심제로 대치되고, 전통적 신분과의 고리를 단절함으로서 식민지배를 강화하게 되었다.746)
둘째, 입적자의 기재순위는 ①호주, ②호주의 직계존속, ③호주의 배우자, ④호주의 직계존속 및 그 배우자, ⑤호주의 방계친 및 그 배우자, ⑥호주의 친족이 아닌 자의 순이다.747) 그리고 모든 입적자는 가에서의 신분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모든 입적자는 호주 또는 호주와의 관계를 신위난에 명시하여 호주중심의 신분제가 온존된다. 이것은 해방 이후 현대가족법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748)
셋째 부모의 난에 부모의 성명만을, 출생난에는 남녀별에 의한 출생순위 또는 서자와 사생 등을 명기하고, 사유난에는 신분상의 모든 변동사항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호주의 경우는 전호주의 성명과 호주가 된 원인 및 年月日을 밝히게 되어 있다. 모든 입적자는 本欄에 시조의 출생지가 기재되며, 연령이 아닌 정확한 생년월일 및 姓과 함께 名(호주와 동성동본인 경우는 名만)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 성명난의 설정은 과거에 여자의 경우, 성명 대신 성만 기재하던 사례를 배제함으로써 여자가 일반적으로 名을 사용하지 않고 姓만으로 통용하던 舊習이 무너지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즉 여성도 호적에 입적되어 파악의 대상이 된 점은 괄목할 만한 변화이다.
이러한 호적제도의 원칙과 제 규정은 해방후에도 거의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1960년에 공포된 신<호적법>749)에서도 신민법의 제정에 따른 몇 가지 변경과 기술적인 보완이 가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주민의 거주관계를 파악하고 常時로 인구의 동태를 명확히”하는 행정처리는 ‘주민등록제’로 대치하고, 인구조사는 ‘통계조사사업’에 의존함으로써 호적은 전적으로 家를 단위로 하는 신분관계의 공증문서로서만 존치의 의의를 갖게 되었다.
<丁暻淑>
738) | ≪韓末近代法令資料集≫Ⅷ, 法律 第8號<民籍法>, 융희 3년 3월, 120∼12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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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 | ≪韓末近代法令資料集≫Ⅷ, 內部訓令 第39號<民籍法執行心得>, 융희 3년 3월, 157∼163쪽. |
740) | 崔弘基, 앞의 책, 131∼133쪽. |
741) | 우에노 치즈코, 앞의 글, 23쪽. |
742) | ≪韓末近代法令資料集≫Ⅷ,<民籍法執行心得>第11條. |
743) | <民籍法>第1條의 2. |
744) | <民籍法>第1條의 2 및 第2·5條. |
745) | <民籍法>第1條의 2. |
746) | 정경숙,<호주제연구시론>(≪호주제 무엇이 문제인가≫, 평우회, 1984). |
747) | <執行心得>第3條. |
748) | 한국여성개발원,≪개정가족법과 가족법 개정운동에 관한 연구≫(1991), 22∼32쪽. |
749) | 法律 第355號<戶籍法>, 1960年 1月 1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