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5권 신문화 운동Ⅰ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1. 근대 학문의 수용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1. 근대 교육의 성립
          • 1) 근대 교육 성립의 역사적 배경
            • (1) 개화정책의 추진과 신교육 수용론 대두
            • (2) 동도서기주의적 신교육 수용의 실패
            • (3) 선교사의 교육활동과 교육평등의식 계몽
            • (4) 변법개화파의 국민교육론 전개
          • 2) 근대적 국민교육제도의 성립
            • (1) 교육제도와 관리등용제도의 개혁
            • (2) 근대적 국민교육제도 정립
        • 2. 근대 교육의 발전
          • 1) 근대 교육의 이념
            • (1) 실용주의 교육 지향
            • (2) 자강주의 교육
          • 2) 근대 학교의 설립
            • 가. 정부의 근대학교 설립
            • 나. 전·현직관료 및 황제 측근세력들의 사립학교 설립
            • 다. 개항장 상인 및 유지 신사들의 사립학교 설립
            • 라. 요호·부민·유생 층의 학교 설립
            • 마. 선교사들의 학교 설립
            • 바. 구국계몽단체·학회 및 관련인사들의 학교 설립
            • 사. 불교와 천도교 종단의 사립학교 설립
          • 3) 근대 학교의 교육내용
        • 3. 근대 교육의 확대
          • 1) 통감부의 교육 침략
            • (1) 우민화교육 방침
            • (2) 동화정책의 방법으로서의 보통학교 확장
            • (3) 일본어 보급
            • (4) 교과를 통한 친일교육
            • (5) 일본인 교원배치
          • 2) 민족사학의 발전과 설립 이념
            • (1) 민족사학의 발전
            • (2) 민족사학의 설립이념
          • 3) 여자 교육의 발전
            • (1) 미션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2) 관립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3) 민간인 사립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4) 고등교육의 성립
            • (1) 민립대학의 설치운동과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 (2) 기독교계 전문학교의 대학승격운동
          • 5) 교육내용의 추이
            • (1) 애국교과와 훈화를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
            • (2) 창가와 체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
        • 4. 교육구국운동의 추진
          • 1) 근대 교육의 성격
            • (1) 근대 교육의 성격
            • (2) 근대 민족 교육의 확대
          • 2) 구국교육운동의 실태
            • (1) 사립학교의 설립
            • (2) 설학취지문의 검토
            • (3) 간도지역의 민족교육운동
            • (4) 역사교육의 확대
            • (5) 체육교육의 보급과 운동회의 개최
            • (6) 애국가와 독립가의 보급
        • 5. 근대적 교과서의 편찬
          • 1) 근대 교육 성립기의 교과서
          • 2) 근대 교육의 발전과 교과서
            • (1) 근대학교의 교육내용<교과목>
            • (2) 정부의 교과서 편찬
            • (3) 민간인에 의한 교과서 편찬과 실태
            • (4) 교과서의 내용
          • 3) 통감부하의 교과서
            • (1) 일제의 교육침략정책
            • (2) 학제의 개편
            • (3) 통감부의 교과서 통제
            • (4) 구국교육운동과 민간의 교과서 편찬
            • (5) 교과서의 실태
            • (6) 교과서 사용 실태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1. 근대 학문의 수용
          • 1) 서양 근대 학문의 세 수용통로
          • 2) 서양철학의 수용
          • 3) 사회진화론의 수용
          • 4) 사회과학의 수용
          • 5) 서양 인문사회과학 수용의 특징과 문제점
        • 2. 한국어 연구
          • 1) 언문일치의 첫걸음
            • (1) 두 문체의 대립
            • (2) 국한문체
            • (3) 국문체
          • 2) 초기의 국문 연구
            • (1) 지석영의<국문론>과<신정국문>
            • (2) 리(이)봉운의≪국문졍리≫(국문정리)
            • (3) 주시경의<국문론>과 그 뒤의 연구
            • (4) 이능화의<국문일정의견>
          • 3) 국문연구소의 업적
            • (1) 국문연구소에 관한 자료
            • (2) 개설의 동기와 목적
            • (3) 직원과 운영
            • (4) 사업의 경과
            • (5)<국문연구 의정안>
            • (6) 각 위원의 연구안
          • 4) 문법의 연구
            • (1) 서양인의 연구
            • (2) 유길준의≪대한문전≫
            • (3) 주시경의≪국어문법≫
            • (4) 어윤적의 연구
            • (5) 김희상의≪초등국어어전≫
          • 5) 주시경의 국어 연구
        • 3. 한국사 연구
          • 1) 연구의 필요성
          • 2) 근대 한국사 인식의 추이
            • (1) 실학시대 후기에서 개항기의 역사학
            • (2) 개화기 계몽주의 역사학
          • 3) 민족주의 사학의 성립
            • (1) 일제 식민주의 사학의 침투
            • (2) 근대민족주의 사학의 성립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1. 근대 문학의 발전
          • 1) 개화기의 시대적 과제와 문체, 문학장르의 관련
            • (1) 위정척사파
            • (2) 온건보수파
            • (3) 개화자강파
            • (4) 일본체험파
            • (5) 민중계몽파
            • (6) 친기독교 개화파
          • 2) 개화기의 시가 장르
            • (1) 애국·독립가
            • (2) ‘사회등’ 가사를 비롯한 우국가
            • (3) 민요 개작
            • (4) 개화기의 시조와 가사
            • (5) 신체시
          • 3) 개화기의 서사 장르
            • (1) 신소설
            • (2) 역사·전기 소설
            • (3) 토론체 소설
        • 2. 근대 예술의 발전
          • 1)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구성
            • (2) 근대음악사의 전개
            • (3) 새로운 과제
          • 2) 미술
          • 3) 연극과 영화
          • 4) 무용
            • (1) 무도의 등장
            • (2) 권번춤의 무대화와 가무극의 번성
          • 5) 체육
            • (1) 학교체육의 전개양상
            • (2) 근대 스포츠의 소개
            • (3) 체육단체 결성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1. 근대 학문의 수용

1) 서양 근대 학문의 세 수용통로

 중국·조선·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서로 인접하는 유교문화권에 속한 나라였지만 근대 학문(서학)의 수용 양상은 세 나라가 서로 달랐고 또 그것이 근대에 서로 다른 길을 결정짓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배후에 있는 각국의 유교문화의 성격을 포함한 사상적 체질의 차이에 의해 규정된 측면이 중요할 것이다.295)

 잘 알려져 있듯이 조선에서는 이미 개국 전부터 실학파 사상가들에 의해 서구사상이 많이 수용되었다.296) 종교적 차원에서는 西敎로 학술적 차원에서는 西學으로 나누어 본다면 서교의 수용에 대한 연구와 서학 중에서도 자연과학이나 서양기술의 수용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다. 그러나 근대적인 의미의 인문사회과학의 수용에 대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서구학문(新學)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개항 전후 개화사상이 대두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1870년대부터 1910년 정도까지는 아직 근대 교육제도가 뚜렷이 확립되기 전이고 근대적 서양학문의 수용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철학사상과 사회사상, 인간론, 정치사상 등이 서로 섞여서 수용되었다. 그러므로 당시 수용한 서구 근대 학문의 분야가 분명히 나누어지지 않았고 또 학문분류도 분명하지 않았다.

 한국이 서양 학문을 수용하는 과정은 크게 중국과 일본을 매개로 하는 과정과 직접 서양을 접하는 과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여기서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 중에서도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이 정식 국교와 무역을 행하는 상대국은 청나라와 일본뿐이고 서양국가들과의 직접적인 왕래는 없었다. 조선시대의 한국에 알려져 있던 서양지식은 마테오릿치(Matteo Ricci)의 저작을 비롯한 중국주재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쓴 저작뿐이었다. 중국을 경유하여 서양의 지식을 얻는다고 하는 상황은 대개 18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774년 사절에 동행하여 북경에 간 李承薰은 예수회 선교사와 접촉하여 천문학과 수학을 배우고 세례를 받아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이후 한국 내에서는 신자가 증가하여 이를 탄압하는 정부에 의해서 몇 번의 순교사건이 일어났다.

 한편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洋務運動에 관한 저작이 한국에서 읽혀졌다. 역관 吳慶錫은 1853년 이래 북경과 천진을 왕래하며 서양의 부국강병술을 배울 것을 주장하여 아편전쟁 후에 쓰여진 魏源의≪海國圖志≫와 세계지리서인≪瀛環志略≫, 미국인 선교사가 내고 있던 월간잡지≪中西見聞錄≫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서적은 그와 교제가 있었던 실학파 사람들에게 읽혀져서 후에 ‘개화파’의 한 원천이 되었다.297) 그리고 당시에는≪朝鮮策略≫,≪易言≫도 이미 수용되어 읽혀졌으며≪燕巖集≫이 개화파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줬다. 개국 이전의 폐쇄적인 사상적 상황 가운데 개화파 형성에 영향을 준 책 중에 사상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영환지략≫과 ≪해국도지≫일 것이다.298)

 개화사상이 대두되던 1870년대나 1880년대에 있어서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 주요 외국서적은 거의 모두가 중국의 서적이나 그 당시 중국에 와 있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저술이었다.299) 이와 같은 사실은 1890년대나 1900년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서적의 영향이 점차로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300)

 ≪해국도지≫같은 책은 이미 崔漢綺나 金正喜 그리고 나중에 朴珪壽 등이 읽게 된다. 서양에 대한 이들의 이해는 과학기술에는 좋은 반응을 보이지만 사상에는 종래 유학자들이 배척하던 불교 정도의 수준이라 판단하여 유학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중국을 방문하여 새로운 사상을 체득하게 된 박규수와 姜瑋는 귀국하자 주위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국제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역설하였다. 박규수는 兪吉濬에게 위원의≪해국도지≫를 주면서 오늘날에는 外洋事, 즉 국제문제에 대해서도 알아야 된다고 말하자 유길준은 이로부터 분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국도지≫는 위원(1794∼1856)이 1844년부터 1852년까지 100권으로 완간한 저작으로 서양의 역사와 지리를 중점적으로 소개한 일종의 세계지리서이다. 그런데 이 책이 동아시아 삼국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청에서는 서양의 기술을 채용하자는 洋務論이 흥기하고 페리의 내습(1853)으로 혼란에 빠진 일본은 결국 개국론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으며, 한국에서도 개화파가 출현하는데 한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301) 말하자면≪해국도지≫는 당시 동아시아 지식인사회에서 代替經書의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302)

 1860년 후반기부터 한국사회에 나타난 신사상은 1881년에 이르러 ‘自强’과 ‘開化’로 표현되게 된다. 자강은 당시 청국에서 유행되던 말이었고 개화는 일본에서 유행되었던 말인데, 함께 한국에 들어온 셈이다. 그러나 점차 자강보다는 개화에 더욱 매력을 느껴 한국사회에서 개화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급진파에서는 자기그룹을 개화당이라 부르고 온건파를 사대당이라 불러 구별하였다.303)

 1880년대 조선에 유입된 중국책과 잡지는 역사, 지리, 자연과학, 정치와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것이었다. 당시 수용된 인문사회과학 쪽의 중국서적으로는 역사지리서적인≪해국도지≫·≪영환지략≫·≪地球說略≫·≪普法戰記≫등과 정치·법률서적인≪朝鮮策略≫·≪萬國公法≫·≪興亞會雜事詩續≫·≪易言≫, 신문잡지 종류인≪申報≫·≪萬國公報≫·≪中西見聞錄≫·≪格致彙編≫등이 있었다.304) 1883년 5월(음력 3월) 경에≪역언≫이 복간되고 한글 번역본까지 간행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1897년이 되어서야 중국에 비로소 소개되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미 1880년대에 다윈의 진화론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사회진화론적인 ‘생존투쟁’·‘우승열패’는 매우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1880년대에 한국에 유입된 일본서적의 수는 매우 적었고, 그 영향력도 매우 적었다고 한다.305)

 중국에서도 서양의 기술 뒤에 숨은 서양의 제도와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청일전쟁의 패배 뒤였고 그리하여 자강론에서 변법론으로 사상을 바꾸게 된다. 청일전쟁 이후 중국에서 嚴復이 헉슬리의 이론을 번역한≪天演論≫(1898)과≪群學肄言≫(1903), 양계초의≪飮氷室文集≫(1903)이 들어와 조선에서 널리 읽혀졌다.

 특히≪음빙실문집≫의 영향은 대단히 컸다. 梁啓超의 변법자강사상은 서양의 천부인권론, 사회계약론, 사회진화론적 근대사상과 함께 조선 말기의 애국계몽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서양의 근대사상은 물론 단편적으로는 이미 1880년대부터 개화사상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었지만 특히 유길준의≪서유견문≫과≪독립신문≫그리고 양계초의≪음빙실문집≫등에 의해 조선의 계몽사상가들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린 감이 있다.306) 그러나 1900년대 후반기에 국권회복과 내정변법을 당면의 과제로 하고 있었던 조선의 계몽사상가들의 강한 관심은, 서양의 근대사상 그 자체보다 그 논리를 도입하여 쌓아 올린 양계초의 변법자강사상에 있었던 것 같다.

 1876년 일본은 군함을 파견하여 강제적인 함포외교로 조선에게 개항을 강요했다. 오경석은 조선측 전권비서를 맡았지만 일본사절로부터 철도와 전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렇게 하여 급속히 서양문명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던 메이지(明治)維新 후의 일본이 새로 조선의 서양문명 도입경로가 된 것이다.307) 즉 실학사상을 기반으로 한 선구적인 개화사상이 청말의 중국서적들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면 그 후의 개화사상은 일본서적을 통한 것과 실지로 견문하는 것으로 비롯하여 얻어진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자본주의국가로서, 구미 자본주의제국의 사정을 알기 위해, 또 유신 이래 단기간에 걸쳐 근대적 발전을 이룩한 경험을 알기 위해서 개화파 인사가 일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金玉均 등 개화파의 일본에 대한 대외활동의 길을 튼 사람은 李東仁이었다. 이동인은 처음에는 劉鴻基와 친분이 있어서 그의 소개로 김옥균 등과 사귀게 되었다. 이동인이 東本願寺 부산별원을 통하여 근대화되고 있는 일본에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878년경부터이다. 이렇게 해서 유홍기는 신세계를 볼 수 있는 두 개의 눈을 가지게 되었으니 하나는 오경석을 매개로 한 청국을 통해서요 다른 하나는 이동인을 매개로 한 일본을 통해서이다.

 이동인은 부산에서 입수한≪萬國史記≫나 세계 각국의 도시와 군대의 규모를 찍은 사진, 瑤池鏡(萬華鏡) 등을 김옥균 등에게 보여주고 당시 불온서적이던≪만국사기≫등을 동지들 사이에 서로 돌려가며 읽었다. 김옥균과 朴泳孝가 사재를 처분해서 여비를 조달하여 외국사정에 관한 문헌이나 자료를 구입하도록 이동인을 일본에 파견한 것은 1879년의 일이며 이는 민간인으로서의 최초의 여행이자 국법을 어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최초로 만난 사람이 또한 이동인이다.308)

 초기 개화파의 사상형성에는 내재적·외재적 요인이 있으나, 대부분의 논자들에 의하면 외재적 요인 중 일본의 후쿠자와가 미친 사상적 영향을 거론한다.

 1876년 개항 후 최초로 일본외교사절이 된 金綺秀가 보고한≪일동기유≫에는 “그들의 학문은 경전을 숭상하지 않고 오로지 부국강병을 받들고 있다”, “군사나 종사에 모든 서양의 방법을 쓰고 있다” 등의 내용을 싣고 있다. 1881년에는 신사유람단이 일본으로 떠났다.

 유길준은 후쿠자와가 저술하여 일본사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던≪서양사정≫·≪학문의 권장≫·≪문명론의 개략≫등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서양사정≫·≪만국공법≫등은≪서유견문≫에 많이 인용되었고≪서유견문≫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서양사정≫에 나타나고 있음에서 잘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내용이 거의 전재된 부분도 있다.309)

 다른 한편 당시 慶應義塾에서는 미국인이 지은≪The Element of Political Economy≫등의 영어원서를 교재로 영어교습을 하기도 하였고 또한 외국어에 능한 교수들이 스펜서·몽테스키외·토크빌 등 사상가의 책을 소개하는 강의를 하였다고 한다. 유길준은 특히 정치·경제학에 큰 흥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310) 또한 그는 후쿠자와의 책 외에도 당시 일본에서 널리 읽혀진 가토(加藤弘之)의≪입헌정체론≫·≪국체신론≫, 나카에 죠민(中江兆民:1847∼1901)의≪민약역해≫등의 정치사상 관계 저술도 읽어 보았을 것이다.311)

 앞에서 서술한 것들 외에도 개화사상에 영향을 미친 서구의 책으로는 루소의≪사회계약설≫이나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 아담 스미스의≪국부론≫등이 있는데, 개화사상가들은 이러한 저서를 직접 읽지는 않았고 주로 일본서적을 통해 이러한 사상조류와 만났을 것으로 추측되고 이러한 사상과 직접 부딪혔던 시기는 189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312)

 마지막으로 직접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의 서구사상 수용은 1910년 까지는 매우 드물었지만 尹致昊와 兪吉濬·徐載弼 등의 미국 유학생과 朴定陽 등의 ‘親美開化派’를 통해 서구사상 수용이 이루어졌음은 잘 알려져 있다.313)

 우리는 서구사상의 수용이 초기에는 서양 선교사들의 한문저술을 통해서 이루어지다가 점차로 청말 중국학자들의 저술 혹은 번역서를, 그리고 나아가 일본의 철학서가 중국에서 한역된 것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일본을 통해 그리고 미국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역사적 맥락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295)강재언 저·이규수 역,≪서양과 조선≫(학고재, 1998), 259∼260쪽.
296)다음과 같은 글들이 참고된다.

이원순,≪조선서학사연구≫(일지사, 1986).

이광린,≪한국개화사연구≫개정판(일조각, 1995).

강재언 저·정창열 역,≪한국의 개화사상≫(비봉출판사, 1984).

강재언 저·이규수 역, 위의 책.

강재언,≪조선의 서학사≫(민음사, 1990).
297)개국 전의 서양인식과 서양사상 수용에 대해서는 이원순, 위의 책과 강재언 저·정창열 역, 위의 책, ‘제3장 조선에 건너온 서양서목-개국 전의 서양인식과 관련하여’ 등이 참고된다.
298)이광린,<‘해국도지’의 한국전래와 그 영향>(앞의 책).
299)이광린, 위의 글, 38∼46쪽.
300)이재선,≪한국개화기 소설연구≫(일조각, 1993), 29∼33쪽.
301)이광린, 앞의 책, 2쪽.
302)최원식,<신소설에 나타난 개화의 두 모습>(≪역사비평≫34, 1996), 142쪽.
303)이광린,<개화사상의 형성과 그 발전>(≪개화파와 개화사상 연구≫, 일조각, 1989), 35쪽.
304)더 자세한 내용은 이광린, 앞의 책(1995), 38∼46쪽.
305)이광린,≪한국개화사연구≫, 39쪽.
306)양계초는≪음빙실문집≫(하)에서 루소의 학설을 매우 자세히 소개하고 홉스, 로크, 흄을 그리고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을 자세히 해설하여 소개하였고 또한 벤담도 언급했다. 또한 그는 블룬칠리(Johann Caspar Bluntschli:伯倫知理)의 학설이 국가유기체설에 기초를 둔 것이며, 국가유기체설은 루소의 공화정치론과는 대립되는 흐름임을 자세히 해설하여 소개했다. 이 때문에 이미 전제군주제를 혐오하고 공화정을 동경하고 있던 한말의 사상계에는 독일 낭만주의보다 루소, 로크 등의 계몽사상이 더욱 중요한 서구의 정치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검토된 것으로 보인다(신용하,≪박은식의 사회사상연구≫, 서울대 출판부, 1982, 59쪽 참조).
307)上垣外憲一,≪일본유학과 혁명운동≫(진흥문화사, 1983), 13쪽.
308)강재언,≪韓國近代史硏究≫(한울, 1982), 70∼71쪽.

강재언·정창렬역, (앞의 책, 1984), 196∼197쪽.
309)김봉열,≪유길준 개화사상의 연구≫(경남대 출판부, 1998), 38∼39쪽.

≪서양사정≫이≪서유견문≫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이광린,<유길준의 개화사상-서유견문을 중심으로>(≪한국개화사상연구≫, 일조각, 1979) 참조.
310)이광린, 앞의 글(위의 책), 52쪽.
311)유영익,<갑오경장 이전의 유길준-1894년 친일개혁파로서의 등장배경을 중심으로>(≪한림대논문집≫4, 1986), 75쪽.
312)신용하,<19세기 한국의 근대 국가형성 문제와 입헌공화국 수립운동>(≪한국의 근대국가 형성과 민족문제≫, 문학과 지성사, 1986), 64쪽.

≪독립협회회보≫2호(1896. 12. 5)에서는 루소의 사회계약설과 자연법사상,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과 삼권분립설이 소개되고 있다.
313)다음의 글들이 참고된다.

이광린,<미국 유학시절의 유길준>(앞의 책, 1995).

―――,<서재필의 개화사상>(앞의 책, 1979).

―――,<서재필의 사상>(≪개화기연구≫, 일조각, 1994).

유영렬,≪개화기의 윤치호연구≫(한길사, 1985).

한철호,≪친미개화파연구≫(국학자료원, 1998).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