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의 결과
개화당 정권이 3일 만에 무너지자, 고종은 새 내각을 통해 각종 개혁 조치를 무효화하고, 예조 참판을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의 정변 개입에 항의하고 김옥균 등 망명자의 송환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도리어 공사관이 불타고 공사관 직원이 희생된 데 대하여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무력 시위를 하였다. 이에 정부는 한성 조약을 맺고, 사죄와 더불어 배상금을 지불하였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청에 비해 정치적으로 불리해진 일본은 청과 담판하여 텐진 조약을 맺고, 조선에서 청⋅일 양국 군대를 철수하고 장차 군대를 파병할 경우에는 서로 알릴 것을 약속하였다. 갑신정변 이후에도 조선에 대한 청의 내정 간섭은 여전히 심하였다. 청⋅일 두 나라는 서로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투를 강화하면서 경쟁하였고, 10년 후에는 청⋅일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