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Ⅲ. 19세기의 민중운동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1. 신분제의 이완과 민중사회의 성장
          • 1) 사족지배구조의 정착과 신분구조의 변화
          • 2) 17세기 위기 이후 대민 지배정책의 전환
            • (1) 국가의 대민 지배방식의 전환과 ‘여민휴식’정책의 철회
            • (2) 공동납체제로의 전환과 18∼19세기 호적 운영의 변화
          • 3) 사족지배질서의 동요와 민중의 성장
        • 2.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공동체 질서와 민중
          • 2) 18세기 향촌공동체의 변화와 민중조직의 활성화
            • (1) 면리제의 강화와 민
            • (2) 동계의 변화와 분동
            • (3) 민중조직의 활성화
          • 3) 19세기 민중의 사회적 결속
            • (1) 향회의 활용
            • (2) 민중조직과 농민항쟁
        • 3. 민중운동의 사상적 기반
          • 1) 성리학에 대한 사상적 도전
            • (1) 성리학의 교조화
            • (2) 민중사상의 확산
          • 2) 민중운동의 사상적 특성
            • (1) 민중운동 속의 사상경향
            • (2) 민중사상 전파의 주체
            • (3) 정부의 대응책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과제
          • 1) 민중세계의 각성
          • 2) 유대관계의 강화
          • 3) 향권의 추이
          • 4) 사회세력의 동향
        • 2. 유민과 명화적
          • 1) 유민
            • (1) 유민발생의 배경
            • (2) 유민의 실태와 유입처
            • (3) 정부의 유민대책
          • 2) 명화적
            • (1) 명화적 발생의 배경과 조직체계
            • (2) 활동양상과 그 성격
            • (3) 정부의 대책
        • 3. 여러 지역의 항쟁과 ‘무신란’
          • 1) 18세기 초 민중의 동향과 변산군도
          • 2) 무신란의 발단과 전개
            • (1) 18세기 초 정치정세와 ‘무신당’의 결성
            • (2) 무신당의 반정계획과 지방토호·녹림당의 가세
            • (3) 무신란의 전개와 향촌사회의 동향
            • (4) 무신란의 참가계층과 그 성격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1. 서북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특성과 항쟁의 배경
            • (1) 서북지방의 사회·경제적 특성
            • (2) 매향과 향권의 동향
            • (3) 중앙권력의 구조적 수탈
          • 2) 항쟁의 과정
            • (1) 서북민의 저항과 홍경래 난의 발발
            • (2) 홍경래 난의 전개과정
          • 3) 항쟁의 결과
            • (1) 홍경래 난 전후 향촌지배세력의 변동
            • (2) 반봉기군 ‘의병’의 향권 장악
            • (3) 서북민항쟁의 역사적 의의
        • 2. 삼남지방의 민중항쟁
          • 1) 사회경제적 배경과 정치적 여건
            • (1) 사회경제적 배경
            • (2) 정치적 여건과 지방사회의 운영
          •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 (1) 항쟁의 발생 지역
            • (2) 항쟁의 직접적 계기
            • (3) 항쟁의 전개과정
            • (4) 항쟁의 참가층과 주도층
            • (5) 항쟁조직
            • (6) 요구조건
            • (7) 공격대상
          • 3) 정부의 대책과 항쟁의 의미
            • (1) 농민항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
            • (2) 삼정에 대한 대책
            • (3) 이정책에 대한 반대 논의와 저항
            • (4) 농민항쟁의 평가
        • 3. 변란의 추이와 성격
          • 1) 변란과 민란
          • 2) 변란발생의 배경
            • (1) 사회적 모순의 심화와 ‘저항적 지식인’의 활동
            • (2) ‘양이’의 침공과 ‘이단사상’의 만연
          • 3) 변란의 추이
            • (1) 19세기 전반의 변란
            • (2) 해서, 영남세력의 변란
            • (3) 광양란
            • (4) 이필제란
            • (5) 기타
          • 4) 변란의 성격
            • (1) 변란의 조직과 운동구조
            • (2) 변란의 이념
            • (3) 변란과 19세기 후반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항쟁의 과정과 양상

(1) 항쟁의 발생 지역

 부세의 운영방식과 부담의 증가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항쟁은 19세기에 들어 민란의 시대라고 할만큼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 형식은 농민층의 유리, 항조투쟁과 같은 소극적인 형태에서부터 봉기에 이르는 적극적인 항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방법에 있어서는 비록 이전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빈도가 늘어나고 다양한 형식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점에서 이전 시기와는 차이가 있다.

 먼저 농촌에서 이탈하는 이른바 유리도산은 봉건지배층에 직접 저항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소극적 저항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자신의 기반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저항의 한 방법이며 결단력이 필요하였다. 진주에서는 농민항쟁 직전인 철종 9년(1858)∼철종 10년의 2년 동안에 3,300여 호가 파산하고 유리하였는데 당시 전체 호수가 15,000여 호였던데 비한다면 2할이 넘는 엄청난 숫자였다.605) 이들이 모두 경제적 파탄의 이유로 유리하였다고 볼 수는 없고, 그 중 상당수는 부세의 부담을 벗어나려고 유리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말을 통한 선전 형태의 訛言이 있는데 이는 농민들에게 있어서 가장 초보적이나 동시에 가장 광범한 대중을 포괄하는 투쟁형태였다.606) 그 내용은 대체로 수령, 이서의 탐학 사실을 규탄하거나 鄭鑑錄의 일부 문구와 같이 현존하는 통치체제를 부정하는 등 선동적이고 정치적 내용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에 농민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공감대를 지닐 수 있는 것이었다.

 글로 표현하여 여론을 선동하는 掛書사건도 자주 발생하였다. 이는 문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농민들이 직접 작성했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농민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나아가 이들을 선동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순조 원년(1801) 8월 경상도 남단에 있는 하동과 창원의 장시에서 일어난 괘서사건이 대표적이었다.607) 여기서 장시가 이런 사건에 자주 이용되는 것은 농민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많은 농민들이 볼 수 있고 또 모여서 여론을 일으키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사항들은 지역 내에서 일상적이고 은연 중에 전개되는 것들이다. 더욱 구체적이고 조직화된 투쟁으로는 당시 수없이 보고된 民擾, 作變 등이 있었다.608) 이같은 사건은 전국에서 일어났다. 가혹한 수탈로 인하여 통치기구로서의 관의 권위가 떨어졌고 분노에 찬 농민들은 관가에까지 뛰어들게 된 것이다.

 이처럼 농민들의 반봉건항쟁은 19세기 봉건적 사회질서가 동요되는 가운데 차츰 고양되었으며 철종 13년(1862)에 이르러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나게 되었다. 같은 해 4월 중순에 명화적이 충청도 신창, 온양에 출현하였고 윤8월 초순에 아산지방에 나타난 일이 있었다. 명화적의 활동은 본래 농민항쟁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봉건해체기라는 상황과 계급적 처지의 유사성으로 인해 상호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609)

 그러나 농민들의 의식수준이 향상되고, 삼정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농민들의 관에 대한 직접적인 요구가 활발해졌다. 이는 소장을 작성하는 방법이었다. 군현과 감영에 대한 呈訴, 나아가 중앙의 비변사에 대한 정소, 그리고 왕에게 대해서는 擊錚의 방법이 있었다. 이는 법전에서도 보이듯이 실상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많은 지역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인정되지 않거나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진주에서는 철종 10년에 농민들이 비변사에 소장을 올렸고,610) 함평에서도 여러 차례 중앙과 감영에 정소했고 심지어 격쟁까지 했으나 끝내 시행되지 않았으며, 수령은 주동자들을 감영의 인신을 위조하여 무고했다는 혐의로 감영에 보고하여 처벌하도록 하였다.611)

 산에서 벌이는 횃불시위도 그 성격에서는 격쟁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함평민들이 서울 남산에서 횃불시위를 일으킨 것도 왕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방편이었다.612)

 이처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등소·의송·격쟁·시위 등의 방법을 통해서도 실제로 해결되지 않자 농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실력행사를 하는 길이었다. 이렇게 하여 일어난 농민봉기는 농민들이 대중적으로 참여하고 행동으로 표출하는 반봉건항쟁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농민항쟁은 철종 13년(1862) 2월 4일 경상도 지리산 기슭에 자리잡은 벽지인 丹城에서 처음으로 일어났다. 사족을 중심으로 한 고을민들이 환곡의 여러 폐단에 항의하면서 관아로 쳐들어가자, 현감은 감영으로 도망했다. 이 때만 하더라도 중앙에서는 이를 으례 발생하는 사태로 보고 제 구실을 못한 수령을 교체하는 선에서 처리하였다. 그러나 그 뒤 열흘만에 이웃 진주에서 樵軍이 중심이 되어 관가와 양반가를 공격하였는데, 그 양상이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었다. 이를 본받아 3월에는 함양·거창, 4월에는 밀양·선산 등지에서 일어났고 곧 경상도 일대로 확산되었다. 이처럼 경상도에서 시작된 농민항쟁은 곧 전국적인 항쟁으로 번져갔다. 전라도에서는 3월 말 익산에서 처음 농민항쟁이 일어나서 4월 말과 5월 초에 집중되었고 충청도에서는 5월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6월에 들어 전라, 충청도는 차츰 가라앉는 분위기였으나 경상도에는 여전히 열기가 남아 있었다.

 9월부터는 제주도에서 일어났고 10월에 들면서 廣州, 함흥 등에서도 일어났다. 11월에는 창원, 12월에는 남해에서 일어나서 이 해 말까지도 계속되었다.

 지역별로 농민항쟁의 상황을 살펴보자.613) 먼저 경상도의 경우는<표 1>과 같다.

발 생 지 역 날 짜 직접적 계기
단 성 2. 4 耗條結斂, 逋欠 强制充完, 移貿
진 주 2. 14 還逋(都結), 移貿
(우 병 영) 2. 14 還逋(統還)
함 양 3. 16 田稅木價
거 창 3월 중순 結價
성 주 3. 26, 4. 12 逋欠, 結價 과다, 移貿
울 산 4. 1 都結, 左兵營 完餉米 운영
선 산 4. 2(2차) 結價 과다
개 령 4. 7(2차) 都結
인 동 4. 9 都結(吏逋徵民), 結價 과다
군 위 4월 還穀의 結斂
비 안 4월 結斂
밀 양 4월초 還穀의 폐단
현 풍 4월말, 5. 17  
상 주 5. 15 排逋濫耗, 結價 과다, 移貿
경 주 10월경 結價
신 녕 10월경 還逋
연 일 10월경 숫돌 비용 호당 부과
창 녕 10월경  
창 원 11. 8 還穀의 폐단, 移貿
남 해 12. 21 還穀의 폐단

<표 1>경상도 농민항쟁 지역

상주의 경우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으나 1861년 겨울에 이미 사건이 발생하였다(≪承政院日記≫2648책, 철종 13년 2월 5일 및≪日省錄≫철종 13년 8월 28일).

 경상도에서는 먼저 지리산 기슭인 단성·진주·함양·거창 등의 진주권에서는 2∼3월 사이에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다음 상주권에서는 상주·선산·개령·인동·성주·비안·군위 등이 3∼4월 사이에 일어났으며 두세 차례 일어난 읍도 여러 곳 있었다. 셋째 경주를 중심으로 한 울산·창녕·밀양·신녕·연일·현풍 등 경주권으로, 이 가운데 경주·신녕·연일·창녕은 三政釐整節目이 반포된 뒤 10월경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그리고 안동권에 속하는 읍으로서는 비안에서만 일어났다.

 당시 읍은 토지면적의 다소에 따라 등급을 나누기도 하는데 대체로 6천 결 이상을 대읍, 4천 결 이하를 중읍, 2천 결 이하를 소읍, 1천 결 정도를 잔읍으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에 의거하면 대읍으로는 밀양·안동·진주·상주·성주·경주·선산·대구 등 8읍이며, 중읍은 창녕·영천·예천·울산·김해·고성·의성 등 7읍이다. 그리고 소읍은 양산·현풍·영산·영천·청도·의흥·경산·용궁·풍기·신녕·칠곡·인동·동래·창원·하동·사천·곤양·의령·함안·함창·삼가·함양·개령·금산·거창·초계·합천·고령 등 28읍이며, 잔읍은 언양·자인·비안·연일·흥해·하양·군위·순흥·영해·청송·영덕·봉화·예안·영양·진보·기장·장기·청하·남해·단성·칠원·거제·진해·웅천·안의·산청·문경·지례 등 28읍이다(강조부분은 농민항쟁 발생지역).

 대읍은 8읍 가운데 6읍, 중읍은 7읍 가운데 2읍, 소읍은 28읍 가운데 7읍, 잔읍은 28읍 가운데 5읍에서 농민항쟁이 발생하였다. 비율로 본다면 대체로 읍세와 비례하고 있다. 특히 대읍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항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읍은 대구·안동 단 두 곳에 지나지 않았다. 읍세에 따라 경제적인 여건과 항쟁세력의 역량에 차이가 있다고 보인다. 또한 부, 대도호부, 목, 도호부와 같이 행정적인 비중이 높은 읍에서 항쟁의 비율이 높다.

 전라도는 발생지역이 매우 많고 전지역에 걸쳐 고루 분포되어 있어 경상도처럼 읍세에 따른 차이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표 2>).

발생지역 날 짜 직접적 계기
장 수 3. 16 이후  
영 광 3. 16 이후 邸債 作還
익 산 3. 27 都結(환포충완 보군폐)
능 주 3. 29 이전  
무 주 3. 29 이전  
함 평 4. 16 還穀 과다
고 산 5. 4 軍役稅 還逋
부 안 5. 8 還逋 등
금 구 5. 11 還穀 移轉, 結稅 과다
강 진 5. 12 兵營 作隊軍錢 부과
장 흥 5. 13 田稅, 大同稅 과다
순 천 5. 15 還穀
화 순   加斂, 加作
진 안   吏逋徵民 減價分給
흥 양   吏胥의 還逋
옥 과   還弊
고 창   吏逋徵民
장 성   都結, 無名戶斂錢

<표 2>전라도 농민항쟁 지역

전라도 지역에서 농민항쟁이 있었으나 보고가 되지 않은 읍으로 임피·장수·용담·무안·화순·진도·순창·태인·구례·진안·금산·고창 등이 있다(≪龍湖閑錄≫12책, 京營奇). 이 가운데 장수, 고창과 화순은 다른 기록에 보이나(≪承政院日記≫2651책, 철종 13년 6월 12일, 126·430쪽) 나머지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충청도는 5월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는 점과 감영이 있는 공주와 병영이 있는 청주를 중심으로 한 내륙지방에서 대부분 일어났다는 점이 특징이다. 곧 공주와 그의 진관에 속한 임천·은진·회덕·진잠·연산과 청주와 그의 진관인 문의·회인·청안·진천 등이었다. 읍의 규모로 볼 때는 공주·청주·임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행정적으로 소읍인 현에서 일어났다. 서쪽의 내포지역에서는 한 곳도 농민항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이 지역 주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생활형편이 다소 낫다는 점과, 이미 4월에 신창, 온양 등지에서 명화적이 나타나서 병영이나 진영에서 명화적 체포를 위해 군대가 동원되는 등 억압적 사회통제 때문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표 3>).614)

발생지역 날 짜 직접적 계기
은 진 5. 10 還逋, 耗穀의 結斂
공 주 5. 10 還逋, 結斂 등
회 덕 5. 10 還逋
청 주 5. 13  
회 인 5. 14 禁養 斫伐 반대
문 의 5. 14 結價와 軍役 부과 시정
임 천 5. 17 還穀의 虛留
진 잠 5월 중순  
연 산 5월 중순  
진 천 5월 중순 結價 과다
청 안 10. 2 軍錢補弊條를 結價에 첨가

<표 3>충청도 농민항쟁 지역

 기타 지역으로서 광주·함흥·제주도 등은 모두 조정에서 이정책을 발표한 뒤에 일어났다는 점이 특징이다(<표 4>). 이는 이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항쟁이 일어나려고 했던 지역이 있었다. 경상도 고성에서도 방문이 걸리고 무리들이 모여 진주, 단성을 본받으려고 하였으며,615) 함창에서는 4월 중순의 장날에 권씨 성을 가진 土班이 통문을 돌려 장시에 농민을 모으다가 관가에 의해 미리 체포되었다.616) 대구에서도 향회가 빈번하게 열리고 봉기가 일어날 조짐이 나타났으나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617) 감영의 소재지였던만큼 봉기가 일어나기 어려웠던 것같다.

발생지역 날 짜 직접적 계기
광 주 10. 23 파환귀결 후 환포 징수 반대
함 흥 10. 24 파환귀결 후 원곡 집전 반대
제 주 3읍 9. 12∼14 화전세 부당 징수 등

<표 4>기타 지역의 농민항쟁

 충청도 부여에서는 현감 李啓淳의 탐학에 항의하여 횃불시위가 있었으며,618) 옥천에서는 5월 중순에 부세문제의 시정을 위하여 봉기를 준비했으나 수령이 효유하여 흩어졌다고 한다.619) 그리고 황해도 봉산에서는 9월초 농민들이 횃불시위를 벌였다.620)

 그런데 전라도의 경우 38개 발생지역 가운데 순창·구례·진도·태인 등은 수령이나 감사가 자체처리하고 중앙에는 정식으로 보고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경상도나 충청도의 경우 정식으로 보고된 지역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도 농민항쟁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상 71개 읍 외에도 전라도 남원과 운봉은 3월 중순에 인근 함양봉기의 여파로, 김제는 5월 초 선무사 趙龜夏의 순행시 인근 금구·부안 봉기의 영향으로 항쟁이 발생하였을 개연성이 높은 지역이다. 한편 해남의 경우 李夏銓 사건의 주동자 金順性의 지시에 따라 김일회가 주도한 흉서사건이 8월 초에 발생하였다.

605)≪備邊司謄錄≫246책, 철종 10년 6월 19일.
606)丁若鏞,≪牧民心書≫兵典 應變.
607)≪純祖實錄≫순조 원년 8월 기유·10월 계유.
608)한명기,<사회세력의 위상과 저항>(≪조선정치사(1800∼1863) 상≫, 1990).
609)裵亢燮,<壬戌民亂 전후 明火賊의 活動과 그 性格>(≪韓國史硏究≫60, 1988).
610)≪備邊司謄錄≫246책, 철종 10년 6월 19일.
611)≪龍湖閑錄≫(韓國史料叢書 25, 國史編纂委員會, 1979) 권 3, 營奇, 73쪽.
612)≪承政院日記≫2650책, 철종 13년 4월 22일.
613)宋讚燮, 앞의 책, 72∼75쪽.
614)망원한국사연구실, 앞의 책, 326쪽.
615)≪壬戌錄≫(韓國史料叢書 8, 國史編纂委員會, 1971), 3쪽.
616)≪壬戌錄≫<鍾山集抄>, 204쪽.
617)≪壬戌錄≫<鍾山集抄>, 211쪽.
618)≪日省錄≫철종 13년 6월 6일.
619)≪壬戌錄≫<鍾山集抄>, 225쪽.
620)≪日省錄≫철종 13년 9월 5일.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