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5장 개항기 외국 여행가들이 본 조선, 조선인1. 조선인에 대한 인상

서울에 대한 인상

한양에서 인상 깊은 지역 가운데 하나는 남산이었다. 커즌은 다른 산들은 거의 나무가 없는데, 남산은 도시 남쪽 800피트 높이의 산 정상까지 울 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고 하면서 남산을 한 번쯤 등반해 볼 만한 산으로 추천하였다.330) 한편 남산은 예나 지금이나 한양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였다. 프랑스인 여행가 조르주 뒤크로(Georges Ducrocq, 1874∼1927)는331) 남산이 한양 사람들의 여름 산책 장소로 사랑받고 있으며, 이 남산에 올라가야 “한양의 넓은 공간,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붕들의 소박함, 이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모두 다 볼 수 있다.”고 소개하였다.332) 비숍도 ‘남산의 아름다운 언덕’이나 ‘궁궐 후원의 언덕’에서 한양을 보는 것이 가장 멋있다고 조언한다.333)

<남산>   
서소문동에 있던 이탈리아 공사관에서 바라본 남산 전망 사진이다. 이탈리아 영사로 1902년 11월부터 1903년 5월까지 한양에 머문 카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가 남긴 『꼬레아 에 꼬레아니(Corea e Coreani)』에 실려 있다. 조지 커즌은 산 정상까리 울창한 남산을 한 번쯤 등반해 볼 만한 산으로 추천하였으며, 여타 여행가도 아름다운 산책로, 훌륭한 전망대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편 한양 거리는 ‘눈부시게 하얀 옷과 검은 갓을 쓴 사람’들로 인해 ‘환상적이고 이국적’이었지만, 전반적으로 ‘음울한 도시’,334) ‘불결함과 초라함’, ‘단조로움과 특색 없음’335) 등 부정적인 인상이 대세를 이루었다. 새비지-랜더도 도시로서 한양의 매력을 낮게 평가하였는데, 그 이유로 “건물이 거의 없고 거리에 오물이 넘쳐 나며 세계 곳곳을 유람하는 여행가들의 이목을 끌 만한 명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독특하고 진기한 것’을 찾으려는 여행객들에게 한양은 별다른 흥미를 줄 수 없을 것으로 보았다.336)

<광화문>   
1894년에 간행된 『중국과 일본 이야기(Story of China and Japan)』에 실린 광화문 앞 거리 사진이다.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민족학자인 샤를 바라에게 있어 북적거리는 한양 거리와 군중은 민족학적 자산의 보고였다.

그러나 바라는 이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언뜻 보아 ‘비참하고 처량하고 가난해 보이는’ 도시도 베일을 걷어 내고 꼼꼼히 살펴보면, 매우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낱낱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속학자였던 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무척이나 붐벼 보이는 한양 거리는 민속학적 자산(資産)의 보고(寶庫)였다. 북적거리는 한양 거리를 그와 함께 따라가 보자.

말을 탄 관리, 가마를 탄 귀부인, 학자, 상인, 농부, 젖가슴을 드러내 놓은 여자 노비, 승려, 군인, 무당, 맹인, 거지, 아이들 등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한데 뒤엉켜 북적대는 군중을 바라보는 것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은 없으리라. 특히 도시의 중앙 대로 한쪽 켠, 우물들이 몰려 있는 근처의 가장 붐비는 상업 지구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 듬직한 벽돌들을 둥글게 쌓아 만든 우물에는 지면으로부터 약 60cm 정도의 깊이까지 물이 차 있는데, 수시로 거기서 물을 퍼 올리는 것은 대부분 여자들 의 몫이다. 한양에서도 인구 밀집이 가장 심한 곳은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는 거대한 종(鐘)이 설치된 건물 주변 지역이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터가 형성되어 있으며, 목재와 가축을 비롯한 과일, 식료품 등을 팔고 있다. 남자, 여자, 아이들 할 것 없이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자유롭고도 떠들썩하게 지나다니고 있다. 단지 사교계의 귀부인들만이 철저하게 밀폐된 가마를 타고 외출하든지, 겨우 앞길을 보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틈만 놔둔 채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초록빛 비단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서야 밖에 나다닐 수 있다. 따라서 망토의 널찍한 소맷부리는 귓가로부터 길고 보기 흉하게 늘어져 펄럭거리곤 한다. 반면 서민의 아낙네들은 생김새도 대부분 추녀에 가까웠고, 얼굴을 완전히 드러낼 뿐 아니라 꼭 끼는 윗저고리와 바짝 당겨 맨 폭 넓은 치마 끝 사이로 젖가슴까지 비죽이 드러내 놓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런 상태로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쌀이나 생선, 닭, 과자 등을 사는 동안, 그들의 아이들은 소란을 피우며 여기저기 쏘다니는가 하면, 꼭두각시 인형극이나 곡예사의 재주를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이다.337)

[필자] 홍준화
330)조지 커즌, 앞의 책, 81∼82쪽.
331)프랑스의 여행가이자 시인, 외교관인 조르주 뒤크로는 24세 때인 1901년 12월에 조선을 방문하였다. 그의 저서인 최미경 옮김, 『Pauvre et Douce Corée』,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 눈빛, 2001은 한양에서 약 2주간 머물면서 견문한 내용을 토대로 한 것이다.
332)조르주 뒤크로, 최미경 옮김,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 눈빛, 2001, 133쪽.
333)비숍, 앞의 책, 61쪽.
334)퍼시벌 로웰, 조경철 옮김,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 예담, 2001, 215쪽.
335)비숍, 앞의 책, 51∼53, 67쪽 ; 조지 커즌, 앞의 책, 85∼86쪽.
336)새비지-랜더, 앞의 책, 92∼93쪽.
337)샤를 바라, 앞의 책, 8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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