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Ⅰ. 구석기문화3. 구석기시대의 생활1) 생업과 의식주생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1. 구석기시대
          • 1)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구석기시대의 개념
            • (2)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2)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제4기의 지질과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화석인골과 편년
            • (1) 편년별 화석인골
            • (2) 화석인골의 몇 가지 특징
        • 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구석기유적의 분포
            • (1) 남한의 구석기유적
            • (2) 북한의 구석기유적
            • (3) 집자리 복원
          • 2) 구석기시대의 유물
            • (1) 유물의 분류
            • (2) 전기 구석기
            • (3) 중기 구석기
            • (4) 후기 구석기
        • 3. 구석기시대의 생활
          • 1) 생업과 의식주생활
            • (1) 생계경제
            • (2) 구석기시대의 주거지
            • (3) 구석기의 도구제작
            • (4) 구석기시대의 사회생활
          • 2) 의식과 예술
            • (1) 예술작품
            • (2) 의식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1) 시기별 구석기문화
            • (2) 비교와 문제점
          • 2) 일본
            • (1) 한반도와 일본의 자연환경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3) 시베리아
            • (1) 구석기유적의 발견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Ⅱ. 신석기문화
        • 1. 신석기시대
          • 1) 신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시대설정
            • (2) 연구사 개관
            • (3) 시기구분
          • 2)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후빙기의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인골의 출토
            • (1) 인골의 인류학적 연구
            • (2) 인골의 해부학상 형태 비교
        • 2.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신석기유적의 분포
            • (1) 유적분포의 특성
            • (2) 주요 신석기유적
          • 2) 신석기시대의 유적
            • (1) 집터
            • (2) 조개더미
            • (3) 무덤
          • 3) 신석기시대의 유물
            • (1) 토기
            • (2) 석기와 뼈연모
            • (3) 예술품
        • 3. 신석기시대의 생업과 사회
          • 1) 생업
            • (1) 수렵·어로·채취
            • (2) 농경과 목축
          • 2) 사회
            • (1) 사회구성
            • (2) 교역
            • (3) 의식·신앙 및 예술
            • (4) 의식주
        • 4. 주변지역 신석기문화와의 비교
          • 1)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영역구분과 지역성
          • 2) 동아시아 신석기문화의 이동
            • (1) 신석기문화의 이동
            • (2) 남해안계와 규슈지역의 신석기문화
          • 3) 서북한·동북한지역과 요동반도의 신석기문화
            • (1) 미송리 하층과 후와 하층
            • (2) 서포항 Ⅰ∼Ⅲ기층 당산유적과 소주산 중·하층, 오가촌기
            • (3) 쌍학리유적, 서포항 Ⅳ기층과 소주산 상층기
            • (4) 신암리 Ⅰ기층, 농포·호곡동 Ⅰ기층과 우가촌 하층기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1) 생계경제

 한반도의 구석기인들이 다양한 식료자원을 채집하여 먹고 살았다는 것은 설명의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것이 채집가능한 자원이었던지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자연환경, 특히 식생을 복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근래에 자료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반도내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식물상을 복원할 만한 충분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지는 않다. 용곡동굴 등과 같은 일부 구석기유적에서 고화분이 채집되었지만215) 꽃가루가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는 호수나 습지 등이 많지 않아 화분분석의 자료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가능한 방법은 인위적으로 훼손이 덜 된 시기, 즉 농경으로 본격적인 훼손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식생을 파악하여 기후변동으로 인한 식생변화의 폭을 대입하여 복원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식생은 빙하시대 기후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류를 이루는 혼합림이 분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기후가 온난해질 경우에는 활엽수림이 북상하거나 또는 전체 숲에서 점유하는 비율이 커지게 되고 빙하시대가 되면 이와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식생의 구성을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유적이 형성된 미세환경의 복원에는 제약이 있다. 물론 풀화분의 증가나 나무화분의 증가 그리고 초원성동물의 존재 등, 동식물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식생형태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고인류가 서식한 환경의 식물지리적 분포를 복원하는 것은 간단치가 않다. 현재로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산지나 평지의 많은 부분이 숲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며 이러한 숲에는 관목이 많아서 동물의 이동이나 고인류의 서식활동에 지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우리 나라의 숲의 경우에는 한번 형성되면 그 지속성이 커서 화재나 인위적인 변형을 가하기 전에는 변화가 적은 편이다. 고인류들은 강을 따라 발달하고 있는 범람원이나 평지의 일부 개활지와 구릉지의 숲과의 생태이행대(ecotone), 즉 복합생태지역을 이용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복합생태지역을 이용하는 것은 당시의 인류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주거지역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지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식물이 존재함으로써 고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부존자원이 가장 많은 곳이다.

 구석기인류의 생계방식에 대한 연구는 주어진 고고학적 자료에서 추론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개발된 방법들이 오늘날 생존하고 있는 채집경제집단에 대한 연구이다. 이러한 민족지적인 방법은 그 관찰된 현상들이 곧바로 과거 구석기시대에 일어났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특정한 환경 아래 보이는 행위의 다양한 양상의 범위에 대한 추론의 근거를 제시하게 된다. 그러나 동아시아지역에 있어서 이러한 원시경제를 영위하는 집단은 별로 없으며 부분적으로 원시경제의 환경적응 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있지만, 이러한 집단에 대하여 체계적인 인류학적 연구가 진행된 바가 극히 적은 편이어서 이 동아시아지역에 있어서 구석기인류의 적응에 대하여 설명할 때는 한계가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지역은 사실 호모 에렉투스집단이 가장 이른 시기에 온대지방에 진출한 지역이지만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지역은 채집경제집단이 적응하는 데는 그다지 좋은 환경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계절이 뚜렷하며 각 계절별로 식량자원이 고르게 분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과 초봄에 채집대상이 되는 식량은 극히 적어서 그다지 멀지 않은 역사시대에도 굶어 죽는 자가 있는 정도로 식량자원이 계절별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초에 조사된 한반도에서 나는 식물들 중에 식용하고 있었던 식물의 종류를 계절별로 구분하여 볼 때도 분명히 이러한 계절별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표 1>). 그렇다고 구석기시대에 장기적인 식량저장법이 개발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현재로서는 전혀 추측의 차원이지만 겨울이나 초봄에는 결국 동면하는 동물을 이용하거나 동물들을 사냥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표 1>한반도 식용식물 이용가능 계절별 종수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온대지역에서도 전 구석기시대를 통하여 식물자원은 고인류의 주요한 식료원이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한반도나 동북아시아지역에 자생하는 식물의 열매나 과실의 경우에 그 크기가 작아서 열대나 사바나지역의 경우보다도 훨씬 많은 작업량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군집하는 식물자원의 경우에는 여행거리가 짧을 수도 있겠지만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여행거리가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식료자원 자체의 확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에너지의 투여가 크기 때문에 이 지역에 등장하는 석기문화는 기회적이며 즉시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된다.216) 이러한 채집경제와 석기문화의 유형은 전기에서 중기를 거치는 동안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지속되어 왔으며 상부 홍적세, 즉 빙하가 극성기로 들어서면서 이 지역의 식물자원의 생태가 크게 변화하고 개활지에 여러 종류의 우제류 짐승이 서식하게 되어 동물자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지기 시작하면서 달라지게 되었다고 본다.

 동물들도 주요한 생계자원이었음에 틀림없지만 식물자원보다는 일상생활의 식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물은 식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영양가가 높고 단백질의 섭취효율이 크지만 안정적으로 공급되지는 못한다. 당시에 동물성 단백질을 획득하는 방법은 사냥을 하거나 다른 동물이 먹다 남기거나 죽은 동물의 시체에서 구할 수 있었다. 사냥은 몰이사냥을 하거나 또는 함정이나 올가미를 이용한 사냥을 상정할 수 있지만 고고학적으로 증명해 내기란 어렵다. 물론 전기 구석기시대에도 몰이사냥을 한 흔적들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스페인의 Torralba유적에서는 맘모스를 불로써 몰이하여 늪지에 빠뜨린 후에 사냥한 흔적이 있다. 이 시기의 사냥에 사용된 도구는 아마도 나무창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나무창의 존재는 아프리카나 영국에서 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되는 유적에서 발견된 바 있는데217) 물론 이러한 나무창들이 진정 나무창인지 또는 땅파는 도구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무를 다듬어서 끝을 뾰족하게 사용한 증거들이 있는 이상 이와 유사한 것들이 사냥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다분히 있는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지역의 대형석기들 중에서 많은 것들이 대형긁개로 사용되고 다른 종류의 대형석기들도 나무를 다루는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각면원구나 다른 대형석기들이 사냥도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일찍부터 예견되던 것이다. 후기 구석기유적인 수양개유적에서는 꼬다리가 있는 첨두기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나무의 끝에 장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며 이외에도 후기 구석기에는 장착이 가능한 소형의 첨기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사냥의 비중이 커졌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남아프리카의 중기나 후기 구석기시대에 사냥한 경우를 보면 사냥은 대단히 기회적인데 사냥의 대상이 무리에서 낙오된 늙거나 병든 동물 그리고 어린 짐승들이 주요한 사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218) 그리고 많은 원시경제에서 보면 소형동물-쥐나 다람쥐 같은-이 주요한 대상이 되며, 개구리나 곤충류가 주요한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의 구석기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실 신체적으로 훨씬 발달하고 이빨과 발톱 그리고 뿔같은 무기를 가진 동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동물성 단백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동물사체를 수습하는 방법이 있다. 이러한 방법은 호모 헤빌리스의 단계에서부터 해오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구석기 전기간을 통하여 동물성 단백을 섭취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반도내에서도 석회암동굴의 여러 지점에서 동물뼈들이 발견되고 이러한 동물뼈는 고인류가 식량으로 하기 위하여 반입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219) 또한 동굴내에서 발견된 동물뼈들 가운데 어떤 것은 도구로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발견된 동물화석이 구석기시대의 환경복원이나 생계경제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하지만 동굴 속의 동물뼈들이 어떻게 고인류의 생계와 관계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 동물화석이 고인류의 생계경제에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이 동물화석들이 고인류의 음식이나 도구의 재료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진행시켜서는 안된다. 유적에서 발견되는 모든 동물뼈가 사람에 의해서 이동되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없으며 지질학적 및 생물학적 변형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퇴적과정을 복원하여 설명하지 않으면 인간의 행위를 해석하는 데에 많은 문제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석회암동굴 속에 동물뼈가 퇴적되는 경우는 인위적인 반입 이외에도 다른 동물, 특히 하이에나나 개과의 짐승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다른 식육류 짐승들도 먹이를 거처에 반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동물들이 사람과는 시점을 달리하여 그 동굴을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이에나나 개과의 짐승 그리고 설치류의 짐승들은 뼈를 변형시키는 경우가 다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인공적 형상과 구별하는 것이 구석기고고학자들의 주요한 분야 중의 하나이다. 화천동동굴에 들어 있는 동물뼈들의 경우에는 분명히 동물들이 지상에서 석회암 틈새로 빠져 들어가서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그리고 검은모루 등의 경우에도 동물뼈가 인공적으로 반입되어 쓰였다기보다는 동굴에 퇴적물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지표에 존재하던 동물뼈들이 같이 반입된 경우도 많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래서 이 동물들은 인간들이 음식으로 반입하였다고 가정하고 분석한다면 큰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있다. 설령 인간에 의해 반입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세심한 뼈의 분석을 통하여 반입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생계방식은 밝혀내기 어렵다. 예를 들어 두루봉동굴 제9굴의 경우, 동물의 최소 개체수를 곧바로 동굴 속에 반입된 동물의 마리수로 환산하여 인간이 사용한 칼로리를 계산하였는데,220) 이에는 많은 무리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최소 개체수(MNI:Minimum Number of Individual)라고 하는 것은 해당 유적에 관련된 동물의 총수이어서 만일 사람이 죽은 사체의 다리만을 뜯어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이는 하나의 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기의 총량의 이해에 문제가 있고 동물의 사체가 모두 인간에 의해 반입된 것이라는 주장 역시 많은 설명을 요하는 부분이다. 현재 중국의 주구점에서 출토되는 많은 동물뼈 중에서도 인간에 의하지 않고 하이에나 등의 동물에 의해 반입되었다고 하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221) 동굴내의 동물뼈들에 대한 화석형성과정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고는 고인류의 생계경제를 복원한다는 자체가 아무런 고고학적 의미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동물뼈를 가지고 생계경제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복원 이전에 반드시 화석이 형성된 과정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15)다음과 같은 글들이 참고된다.

김홍걸,<덕천 승리산 동굴유적의 포자-화분구성 승리산사람의 화석층>(≪조선고고연구≫ 1993-1).

로영대,<함북 화대군 털코끼리 발굴지에 발달한 니탄층의 포자화분조합>(≪문화유산≫ 4, 1962), 49∼54쪽.

전제헌·윤진·김근식·류정길,≪용곡동굴유적≫(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86).

이융조,<청원 두루봉 새굴·처녀굴의 자연환경연구-식물상의 자료를 중심으로->(≪孫寶基博士停年退任紀念 考古人類學論叢≫, 1988), 29∼57쪽.
216)裵基同,<全谷里 구석기문화와 동북아시아 홍적세 고인류생존활동>(≪學術院論文集≫-人文科學篇 28, 1989), 1∼31쪽.
217)Oakley, K. P., Man the Toolmaker 6th. ed., University Chicago Press, 1972.
218)Binford, L. R., Faunal Remains from KRM, Academic Press, 1984.
219)손보기,≪청원 두루봉 9굴발굴보고-두루봉 9굴 살림터≫(연세대 선사문화연구실, 1983).
220)손보기, 위의 책.
221)Binford L. R. & Chuan Kun Ho, Taphonomy at a distance : Zhoukoudian, “The Cave Home of Beijing Man?”, Current Anthropology 26-4, 1985, pp. 413∼442.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