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Ⅳ. 학문과 종교4. 실학의 태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1. 16세기 사족의 향촌지배
          • 1) 사족지배체제의 형성과 그 의미
          • 2) 재지세력의 변화
          • 3) 사족지배체제와 수령권
          • 4) 향촌기구의 여러 양상
            • (1) 향약의 도입과 정착
            • (2) 유향소의 기능
            • (3) 향교와 사마소
        • 2.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 1) 향촌자치조직의 발달 배경
          • 2) 향촌자치조직의 내용과 성격
            • (1) 유향소와 경재소
            • (2) 향약과 향규
            • (3) 동계와 동약
          • 3) 향촌자치조직의 변질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1. 사족의 향촌지배조직 정비
          • 1) 난후의 향촌실정
          • 2) 향촌지배조직의 복구와 정비
            • (1) 경재소의 혁파와 향촌지배조직의 정비
            • (2) 동계·동약의 중수와 상하합계
        • 2. 사족의 향촌지배와 서원의 발달
          • 1) 사족 중심의 향촌운영
          • 2) 서원의 증설과 역할의 증대
          • 3) 서원정책의 추이
        • 3. 사족의 향권과 수령권
          • 1) 조선 중기 향권의 의미
          • 2) 사족의 향권의 내용
          • 3) 수령권 강화와 사족의 향권 상실
          • 4) 조선 후기 향권의 추이
        • 4. 사족지배체제하의 신분질서
          • 1) 사족 중심 신분질서의 확립
          • 2) 양란중의 신분 혼효와 정리
          • 3) 각 신분의 존재 양상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1. 예학의 발달
          • 1) 가례의 연구와 집성
            • (1)≪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관심
            • (2)≪주자가례≫의 주석과 언해
            • (3)≪주가가례≫연구의 심화
          • 2) 고전 예서의 연구
          • 3) 예학의 경향과 전례 논쟁
            • (1) 예학의 두 경향
            • (2) 전례 논쟁의 배경
            • (3) 인종의 문소전 부묘 논의와 공의전의 복제 논쟁
            • (4) 공빈의 추숭 논란
            • (5) 원종(정원군) 추숭의 전례 논쟁
        • 2. 종법제의 보급과 가족제도의 변화
          • 1) 종법제의 원리
          • 2) 종법과 가족제
          • 3) 제사와 상속
          • 4) 족보의 보급과 동성마을의 형성
        • 3. 유교문화와 농민사회
          • 1) 유교문화 원리의 보급
          • 2) 교육기구의 운용과 의례의 수용
          • 3) 의례변화의 제양상
            • (1) 관혼례의 변화
            • (2) 상제례의 변화
          • 4) 농민사회의 예속 변화의 몇 문제
        • 4. 순국·순절자의 포정
          • 1) 사림의 정표운동
          • 2) 국가의 정표정책
      • Ⅳ. 학문과 종교
        • 1. 성리학의 발달
          • 1) 학파의 분화
          • 2) 이기철학의 발달과 전승
          • 3) 17세기 성리학의 추세
            • (1) 율곡학파
            • (2) 퇴계학파
            • (3) 퇴율절충론
            • (4) 탈주자학적 유학사상
          • 4) 존주론과 명분주의
        • 2. 양명학의 전래와 연구
          • 1) 양명학의 전래와 초기 수용형태
          • 2) 양명학의 비판과 수용의 문제
          • 3) 초기 양명학 수용자들의 현실 인식
        • 3. 서양문물의 전래와 반응
          • 1) 서양문물 도입의 주역
            • (1) 내도 양인의 문화적 의의
            • (2) 접촉과 재래의 주역 연행사행원들
          • 2) 17세기 서양문물의 도입
          • 3) 조선사회의 서양문물에 대한 반응
            • (1) 곤여만국전도와≪직방외기≫
            • (2)≪천주실의≫와≪교우론≫
            • (3) 서양기기
            • (4) 한역 천문서와 역산서
          • 4) 서양문물의 실용적 채용
          • 5) 17세기 서양문물 전래의 역사성
        • 4. 실학의 태동
          • 1) 실학의 성립과 그 개념
          • 2) 초기 실학의 계보와 성격
        • 5. 국문 보급과 국어 연구
          • 1) 시대적 특성과 경향
          • 2) 국문 보급과 언문자모
          • 3) 음운학 연구의 전개
          • 4) 어휘 정리와 고증적 해석
        • 6. 역사학
          • 1) 역사학의 사상적 배경
          • 2) 고려 이전의 역사에 대한 서술
            • (1) 사략형 사서의 유행
            • (2) 기자에 대한 사료의 수집
            • (3) 강목형 사서의 출현
            • (4) 역사지리학 연구의 심화
            • (5) 해동악부체 시가의 출현과 그 발전
          • 3) 당대사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과 보관
            • (2)≪비변사등록≫등 연대기 기록의 편찬
            • (3) 야사형 사서의 편찬
            • (4) 사찬 지리서의 편찬
            • (5) 일기의 작성
          • 4) 역사학과 사학사상의 특징
        • 7. 불교계의 동향
          • 1) 산중승단
          • 2) 산승의 법통
          • 3) 불교신앙의 제형태
            • (1) 정토신앙
            • (2) 밀교신앙
            • (3) 미륵신앙
            • (4) 기타 신앙 및 도교·민속과의 습합
          • 4) 의승군의 조직과 활동
        • 8. 도교와 민간신앙
          • 1) 도교
            • (1) 과의도교
            • (2) 수련도교
            • (3) 도교적 양생론과 의약 연구
            • (4) 수경신(경신수야)
          • 2) 민간신앙
            • (1) 선서와 관제신앙
            • (2) 도인들의 비밀집단
            • (3) 지리도참
      • Ⅴ. 문학과 예술
        • 1. 문학
          • 1) 시가문학
          • 2) 소설과 판소리
          • 3) 한문학
        • 2. 미술
          • 1) 회화
            • (1) 산수화의 제경향
            • (2) 인물화의 경향
            • (3) 동물화와 화조화의 경향
            • (4) 사군자화와 묵포도화의 경향
          • 2) 서예
            • (1) 고법으로의 복귀
            • (2) 석봉체의 유행
            • (3) 초서와 전예의 명가
            • (4) 필적 간행과 금석 수집
            • (5) 한글서체의 필사화
          • 3)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금속공예
          • 5) 건축
            • (1) 일반건축양식
            • (2) 도성과 궁궐
            • (3) 읍성과 관아, 객사
            • (4) 유교건축
            • (5) 사찰건축
            • (6) 주택
            • (7) 석탑·부도
        • 3. 음악
          • 1) 궁정음악의 전승과 변화
            • (1) 보태평과 정대업
            • (2) 여민락
            • (3) 보허자와 낙양춘
            • (4) 영산회상
            • (5) 정읍과 동동
            • (6) 유황곡과 정동방곡
            • (7) 생가요량과 쌍화곡
            • (8) 제향아악
          • 2) 단가의 발생과 전개
            • (1) 대엽
            • (2) 만대엽
            • (3) 북전
            • (4) 중대엽
            • (5) 삭대엽
          • 3) 기악풍류의 성립과 발달
            • (1) 다스름
            • (2) 영산회상
            • (3) 보허자
            • (4) 여민락
          • 4) 향악조
            • (1) 향악조의 궁
            • (2) 계면조의 음계변화
          • 5) 음악유산
        • 4. 민속
        • 5. 무용·체육
          • 1) 무용
            • (1) 정재무
            • (2) 일무
            • (3) 나례희와 처용무
            • (4) 광대 소학지희
            • (5) 나례우인
          • 2) 체육
            • (1) 성균관에서의 대사례
            • (2) 향교의 향사례
            • (3) 방희
            • (4) 격구
        • 6.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시대배경 및 의생활
            • (2) 의생활 변모의 3단계
            • (3)≪국조오례의≫와≪경국대전≫의 복식
            • (4) 일반 편복 구조
          • 2) 식생활
            • (1) 의례음식의 규범 정립
            • (2) 가정 상비식품의 발달
            • (3) 향토음식의 발달
          • 3) 주생활
            • (1) 주거의 계층적 특성
            • (2) 유교적 생활문화의 확산과 주거 공간의 분화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실학의 태동

1) 실학의 성립과 그 개념

 실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1930년대 초반에 벌써 일어났다.0642) 일제의 식민지 사상·문화정책에 대항하는 ‘朝鮮文化 復興運動‘ 혹은 ‘朝鮮學運動’의 발흥이 그것이었다. 항일 민족해방을 위한 문화·사상운동으로서 실학이 주목되었된 것이다.0643) 전통은 해방 후에도 물론 계승되었다. 日帝의 식민지 지배논리를 극복하고 주체적·발전적인 民族史像을 수립하기 위한 문제의식과 연구주제를 실학의 테두리에서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리하여 실학은 근대 이전 한국의 사회·경제·정치·사상·문화 일반에 걸쳐서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는 학문, 즉 國學을 총괄하는 용어로 확대되었다. 최근에 국사·국문학·철학은 물론이고 인문·사회과학 일반, 심지어는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실학과 관련한 논의나 연구가 일어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실학 용어의 개념, 실학의 성립 시기와 배경, 그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아직도 충분하고 설득력있는 대답이 마련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다. 실학의 내용이나 역사적 의의가 그 만큼 크고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태동기의 실학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에 유념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이제 비록 간략하게나마 실학연구의 역사를 살피는 일, 즉 실학의 연구사적인 검토를 통해서 과거의 연구성과를 돌아보고 그런 가운데서 되도록 실학의 정당한 개념과 의의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실학연구가 시작되던 초기에는 그것이 ‘조선 후기의 新學風’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띄고 있었다.「실학」을 정의해보려는 시도는 그 후 꾸준히 전개되었는데 1950년대 말기의 실학논쟁은 이러한 학계 나름의 활동 성과가 구체화된 것으로 보아 좋을 것이다.0644) 이 때의 논자들 사이에서는 同異點과 강조점이 다소 차이가 나고 있었지만 우선 실학의 기본성격으로서, ‘자유성·과학성·현실성을 바탕으로 한 근대지향성과 민족의식’을 꼽고 그 학문적 계보나 유파는 유학=주자학에 대신하는 ‘改新儒學’이라고 규정하였다.0645) 특히 논자들은 실학이 내포하는 반봉건성, 근대지향성에 주목하고 이를 개혁사상·체제변혁론의 중심 논리로 부각시켰다.

 1970년대를 전후해서는 실학·실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분야와 주제는 더욱 세분화되고 구체적인 내용이 다양하게 확인되었다. 늘어난 연구성과를 시기와 내용에 따라 분류하고 유형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럴수록「實學」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한 것으로 되어갔다.「실학」의 용례·개념이나 범주, 성립시기와 배경, 주요 계보와 발전단계, 그리고 사상의 성격·의의 등에 대하여 견해 차이가 좁혀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 확대되는 인상마저 있었다.0646) 요컨대 한국사, 특히 조선 후기 역사에서 차지하는 실학의 비중이 매우 커지고, 실학이라는 이름의 연구열은 높아져 감에도 불구하고 실학의 본질 문제를 둘러싼 논자들의 견해는 더욱 多岐多樣해서 혼선이 더해 간다는 데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사정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도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국 역사연구의 수준과 문제의식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사정으로 생각된다. 단순히 역사인식의 태도와 방법을 달리하는 데서 생겨나는 현상이 아닌 것이다. 또 분명한 사실은 개별 주제나 인물의 연구가 실학이라는 이름으로 축적되는 것만으로 진정「실학」의 성격과 의의가 드러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 동안에는 ‘실학=조선 후기’라는 전제, 혹은 ‘실학을 통한 朝鮮後期像의 이해’라는 접근방식이 거의 일방적으로 통용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사실 실학은 조선 후기 역사상의 큰 특징이며 사회발전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조선 후기 사회·역사상의 전체는 아니다. 그래서 종래의 실학=조선 후기라는 발상에 내포된 논리적 문제점은 대개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개념·성격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실학」을 통해서 조선 후기를 설명하려 했다는 것이고, 이와 관련해서 다른 하나는「실학」이 역사활동의 산물임에도 그것을 산출해낸 사회·역사조건을 올바로 고려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실학에 관련한 문제의식과 접근방법이 재고되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실학의 성격을 파악하는 일과 역사적 산물로서 실학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실학의 형성·전개와 사회·역사적 배경, 즉 내재적 계기를 정확하게 이끌어내는 하나의 문제로 모아진다. 실학이 생겨나고 발전·이행하는 전체과정은 바로 사회·역사운동의 과정이며 그 가운데서 실학이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밝혀내면 바로 여기에서 실학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실학 태동의 內因, 즉 실학이 등장하는 시기의 사회 역사적 조건과 이에 관련한 사상·학문적 동향을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실학의 개념과 의의를 밝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종래 연구자들도 실학 형성의 배경=內·外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를테면 1950년대에는 외인, 즉 기독교와 서양과학을 실학의 기저로 전제하고 淸朝의 考證學과 北學을 그 매개고리로 보는 경향이 뚜렷하였다.0647) 이는 서구적인 요소의 수용·확산에 주목하는 근대화·근대사회론의 관점을 일정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서양이나 중국이라는 외래적 영향을 중시하는 견해는 중국에 이미 실학의 용례와 학풍이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발상과도 연관이 깊었다.0648) 그런가 하면 같은 무렵에, 유학 내부의 주자학 비판과 임진왜란의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경제 정책을 내인으로, 燕京을 통한 서구문화와 중국 학술의 전래·수용를 외인으로 나누어 보는 내·외인 절충론도 등장했다.0649) 그러나 내인에 더 주목하는 관점은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실학 성립의 내재적 계기를 강조하는 견해는 1960년대 초 실학문제에 관한 최초의 연구사적 정리에서 비로소 분명해졌다.0650) 즉, 실학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타개하려는 학문적 노력이며 조선 전기부터 지배층 전체의 관심사였다는 것, 실학 역시 한·당 이래의 유교를 학문적 기반으로 하는 점에서는 程朱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정치적 유교주의가 봉건적 국가권력의 원리였던 만큼 실학사상이 그러한 유교주의와 어떻게 다른가를 밝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실학사상을 근대사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개혁이론과 당시의 역사적 현실과의 구체적인 관련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말하자면 종래의 유교·주자학 역시「실학」을 자처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유교·주자학과 실학은 깊은 연관관계에 있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성격과 의의를 서로 달리하는 까닭은 그들이 처한 역사적 현실과 과제를 각각 다르게 인식하고 그 해결과 방법 역시 서로 달리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므로 조선 후기 실학의 본질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역사적 배경, 특히 내재적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렇게 보면 실학의 배경에 대한 관점이 대체로 외인 중시에서 점차 내인 중심의 시각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역사발전의 주체적·내재적 계기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1930년대 순수하게 ‘朝鮮學’이라는 이름으로 실학운동을 표방했던 국학자들의 인식수준에 도달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튼 내인론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실학문제 자체의 추구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먼저 ‘한국사의 내재적·주체적 발전상’이 확인되어야 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 農業史를 중심으로 한 조선 후기 사회의 구조적·발전적 실상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연구가 축적되면서 이러한 과제는 점차 해소되었다.0651)

 그리하여 이 무렵에는 실학의 내재적 동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여러 방면에서 기울여졌고 이를 크게 보면 두 가지 방향으로 모아지는 것이었다. 하나는 조선 후기 주자학의 經學觀·理氣人性說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확인하여 이것을 주자학으로부터 실학의 분리, 실학의 철학기반 형성으로 이어가려는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발전의 내재적·일차적 동인이 실학의 배경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이 시기의 사회·경제적 성격과 그 변동에 주목하는 관점, 즉 사회경제사 연구의 확대였다.

 전자의 경우, 실학자들은 유교 경전을 연구하는 經學에 큰 관심을 가지고, 程朱·陸王을 포함한 여러 학설의 장단점을 취사하여 이를 종합 확대해가거나, 孔孟의 원시유학(洙泗學)에 회귀하여 경전의 독자적인 해석을 모색함으로써 朱子 경학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고 새로운 修己治人의 학문을 추구했다고 강조했다.0652) 그리고 이러한 경학의 지향은 오직 朱子註를 無謬의 진리로 인정하려는 정통주자학의 경학체계·經典註釋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反朱子 경학의 성립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또 우주 자연법칙을 설명하는 理氣說에 대해서 실학자들이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대개 主氣說을 선호하거나 그 경향으로 이행했다든가,0653) 주자학의 학문 사상이 의리를 숭상하는 것임에 대해서 실학자들은 그러한 윤리·도덕학의 폐단을 비판하고 實事·實用을 중시하는 功利論을 발전시켰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0654) 이들 논의의 공통된 특징의 하나는 실학을 일단 定型의 범주로 인정하는 위에서 실학과 주자학의 차별성을 철학적 측면에서 확인해 내는데 치중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그러한 차별성과 철학적 기반이 가능했던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한편에서는 실학과 주자학의 관련을 고려하면서 실학자들의 개혁적 사상경향을 그 사상의 갈래와 연구 방법에 따라 계보적으로 정리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를테면 실학을 주자학의 이념과 방법을 극복해서 실용·실증을 지향한 18세기의 전형적인 新學風으로 규정하고 이를 다시 토지제도를 포함한 법제개혁에 중점을 두었던 經世致用學派, 商工業을 위시한 생산·기술의 개발 이용에 주력했던 利用厚生學派, 그리고 典故·金石 등 고증적 연구방법을 중시하는 實事求是學派로 나누어 설명하는 방법이 그것이었다.0655) 이는 실학 태동의 원인·배경을 발전단계나 사상계보의 체계화에서 찾는 발상으로서 여기에서의 학파분류는 이후 실학연구에 시사한 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실학의 배경은 역시 후자, 즉 사회·경제 기반이 지니는 특성과 그 발전에서 구해야 할 일이었다. 이러한 발상은 다음의 논의에서 분명해졌다. 즉 실학은 임란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과 관련해서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실학자들의 사회·경제 이론을 시기별로 계통화하면, 兩亂期의 약화된 봉건국가 강화책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봉건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실학(17세기 초), 봉건국가의 강화보다 농민계급의 입장을 더 중시하는 과도기의 실학(17세기 중엽∼18세기 중엽), 상공업과 기술혁신을 강조하며 신흥 시민계급을 대변하는 실학(18세기 말엽∼19세기 중엽), 開化思想으로 전화하여 근대개혁에 영향을 준 전환기의 실학(19세기 말엽∼ 20세기 초)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0656)

 이렇게 실학사상 발전의 일차적 요인을 사회·경제 기반에서 찾고 이로써 실학자들의 사상·학문방법을 계열화하려는 문제의식은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 경제사 방면의 연구성과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1970년대에 이르러 더욱 확고해졌다. 실학은, ‘17세기 이래의 사회, 경제 발전의 산물이며 그 변동을 배경으로 하여 이룩된 역사적 개념’0657)이라는 주장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에 따르면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地主佃戶制의 확대에 의한 농민층 분해의 전개, 상품생산·화폐경제의 발달, 봉건적 신분제의 붕괴와 서민의식의 성장, 서학과 청대학술의 영향이야말로 조선 후기 실학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天意에 따른 규범적 차원을 극복한 순수 물질적 존재로서의 자연관, 위선적·사변적 형식윤리에서 해방된 사회적 실천윤리로의 지향, 華夷論의 부정을 통한 萬國倂存의 민족 주체의식을 실학의 기본 성격으로 꼽았다. 무엇보다도 실학은, ‘사회·경제적 배경을 무시하면 그 개념이 관념적·초역사적인 것으로 전화되어 그 연원과 내용 역시 한없이 올라가고 확대되어 결국 실학 아닌 것이 없게 될 것’0658)임을 지적하였다. 조선 후기 사회의 물질적 조건이야말로 실학이 대두하는 기본 배경이자 그 개념과 본질을 규정하는 구체적인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본대로 1960년대 초에 제기되었던 논점을 거듭 강조한데 불과하지만 그러나 이를 재확인하는 의의는 크다고 하겠다.

 크게는 역사를 주체적·발전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와 관련하여, 작게는 역사적 산물인 실학의 본질을 분명히 해명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內因의 내용과 의의는 확인된 셈이다. 곧 조선 후기의 사회, 경제문제란 바로 앞에서 지적한대로이며 그리고 여기에 집권적·신분제적 정치운영의 파행과 수취체계의 문란, 주자학 지배이념의 한계를 더 꼽을 수 있겠다. 이 변동의 가까운 계기는 임진·병자 양란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16세기 이래 조선사회 자체의 자생적 동력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구래 봉건적 양반지배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역사 단계로 진입하려는 추진력이었다. 실학은 바로 이러한 조건 위에서 전개된 학문·사상운동이었다.

 조선 후기 사회의 현안에 대처하는 관인·식자들의 입장과 태도는 대체로 현실의 법제를 개선하여 기존의 질서를 보수하려는 입장과 그것을 근본적으로 개폐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설하려는 진보적인 입장으로 크게 나눠지고 있었다. 논자들의 현실적인 이해관계나 學緣·黨色·門地 등이 여기에 작용하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특히 학문·사상적으로는 정통주자학에 대하여 반주자학의 학풍이 일어나서 서로 대립 갈등하며 점차 보수노선과 진보노선으로 分岐하고 있었다.0659) 그런데 이 때의 반주자학이란 다름아닌 실학이었다. 구래 조선사회체제를 떠받드는 원리가 정통 주자학이었음에 대하여 그러한 구래 질서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學風’이 바로 실학이었기 때문이다.

 주자학과 반주자학(또는 非朱子學)이 처음부터 보수사상과 개혁사상으로 명확히 구분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주자학은 조선왕조의 國是·正學의 지위에 있었고 따라서 모든 관인·식자들의 지적 활동, 학문·사상적 출발점이 주자학이었다. 그러나 사회·경제의 발전과 시대상황의 변동에 따라, 더구나 그 변화가 크고 심각해져감에 따라, 주자학에 입각한 현실의 인식과 대응방법을 놓고 그들 내부에 이견이 생기고 이것이 입장과 이념의 차이로 확대되면서 반주자학의 성립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학파·지역·문벌의 분화와 차이가 한층 뚜렷해지고 당쟁적 정치운영으로 치닫게 된 사정은 이러한 사상·이념적 변동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선 후기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주자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와 주자학의 대항이념으로 성립한 학문·사상을 가리켜 반주자학=실학이라고 부른다.0660) 즉, 실학은, “西歐近代의 사회경제사상이 수용되기에 앞서, 그리고 그것이 전래하는 시기에는 그에 대응하면서, 우리의 전통사상이 스스로 개척한 社會改革思想이고 近代化論이었다”0661)고 하겠다.

0642)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實學’은 흔히 古文獻에 보이는 ‘實學’이라는 용어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조선 후기의 역사상에 등장했던 학문·사상운동으로서의 실학이다. ‘實學’용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 참조.

全海宗,<釋實學>(≪震檀學報≫20, 1959).

朱七星,<실학의 개념과 그 변천>(≪실학파의 철학사상≫, 예문서원, 1996).
0643)千寬宇,<韓國實學思想史>(≪韓國文化史大系≫6, 고려대, 1970;<朝鮮後期 實學의 槪念 再論>으로 改題하여≪韓國史의 再發見≫(一潮閣, 1974)에 재수록, 989∼994쪽).

―――,<實學의 槪念是非>(≪近世朝鮮史硏究≫, 一潮閣, 1979), 381쪽.
0644)1958년 10월 초 歷史學會 주최로 ‘實學의 槪念’을 주제로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實學’과 그 성격에 대한 관심은 해방 직전에 이미 제기되었는데(洪以燮,<實證學派의 社會性>,≪朝鮮科學史≫, 정음사, 1944), 본격화된 것은 1950년대 초 千寬宇의<磻溪 柳馨遠 硏究-實學 發生에서 본 李朝社會의 一斷面->(≪歷史學報≫2-3, 역사학회, 1952∼3;≪朝鮮近世史硏究≫, 一潮閣, 1979)을 통해서였다. 이 밖의 논자와 그 대표적 글은 다음과 같다.

韓㳓劤,<李朝「實學」의 槪念에 대하여>(≪震檀學報≫19, 1958;≪李朝後期의 社會와 思想≫, 을유문화사, 1961).

全海宗, 앞의 글;≪韓中關係史硏究≫(一潮閣, 1970)에<實學의 意義에 대하여>로 재수록.

金良善,<韓國實學發達史>(≪崇大學報≫5, 숭실대, 1955).

姜在彦,<朝鮮實事求是學派について>(≪歷史學硏究≫195, 東京, 1956).

李佑成,<實學派의 文學-朴燕巖의 경우->(≪국어국문학≫16, 1957).

李家源,<燕巖 朴趾源의 生涯와 思想>(≪思想界≫10월호, 사상계사, 1958).
0645)千寬宇, 앞의 글(1970) 참조.

이후 실학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실학이 유교·주자학의 修己治人을 바탕으로 하여 實事求是와 經世致用을 목표로 했다는 것, 실학 발생의 배경으로는 중국에서 전래한 서양의 천주교와 과학기술이나 명·청대의 陽明學과 考證學 등 특히 외래적인 요인이 중시되지만 그와 함께 임진왜란으로 인한 피해와 충격이 한 계기가 되며, 여기에 유통경제의 발달과 수취체계의 문란, 토지집중과 농민층의 영세화에 따른 농촌경제의 파탄, 당쟁적 정치운영의 폐해 등등 내부적인 조건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 실학을 주도한 사람들은 대개 당쟁으로 권력에서 소외된 재야학자들이며 그들 사이에 학문적·사상적 친소·계승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 실학의 성립시기를 18세기에 한정하거나 고려 말 주자학 수용기까지 소급해 볼 측면도 있으나 대체로는 조선 후기를 특징지우는 학풍으로 본다는 것, 그리고 실학의 발전적인 과정이 인정되지만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쇠퇴·변형된다는 것 등에서 대체적인 견해의 접근이 이루어졌다.
0646)여러 논자들의 연구사적인 정리를 통해서도 이 같은 사정이 쉽게 확인된다. 예컨대 최근에는 19세기의 北學思想만을 실학으로 인정하고 그 이전의 실학은 朝鮮性理學으로 불러야 옳다는 주장(池斗煥, 아래 글 참조)이 나오게 된 것은 이러한 실학 개념의 불확실성과 혼란상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실학에 대해 연구사적으로 정리한 글들은 다음과 같다.

金容燮,<最近의 實學硏究에 對하여>(≪歷史敎育≫6, 역사교육연구회, 1962).

宮原兎一,<李朝後期の實學についての硏究動向>(≪朝鮮學報≫43, 天理大 朝鮮學會, 1967).

千寬宇, 앞의 글(1952∼3).

鄭求福,<實學>(≪韓國史硏究入門≫, 지식산업사, 1981).

鄭昌烈,<實學>(≪韓國學硏究入門≫, 지식산업사, 1981).

鄭在貞,<朝鮮後期 實學硏究의 동향과「국사」교과서 서술의 변천>(≪歷史敎育≫39, 1986).

池斗煥,<朝鮮後期 實學硏究의 問題點과 방향>(≪泰東古典硏究≫3,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 1987).

金炫榮,<實學硏究의 反省과 展望>(≪韓國中世社會 解體期의 諸問題≫上, 한울, 1987).

趙 珖,<朝鮮後期 實學思想의 硏究動向과 展望>(≪何石金昌洙敎授華甲紀念史學論叢≫, 범우사, 1992).
0647)金良善, 앞의 글의 경우에서 특히 그러하다.
0648)全海宗, 앞의 글(1959) 참조.
0649)千寬宇, 앞의 글(1952∼3).
0650)金容燮, 앞의 글.
0651)金容燮,≪增補版 朝鮮後期農業史硏究≫Ⅰ(지식산업사, 1995), Ⅱ(一潮閣, 1990).

―――,≪增補版 韓國近代農業史硏究≫上, 下(一潮閣, 1984).

―――,≪朝鮮後期 農學史硏究≫(一潮閣, 1988).

―――,≪韓國近現代農業史硏究≫(一潮閣, 1992).

劉元東,≪韓國近代經濟史硏究≫(일지사, 1977).

姜萬吉,≪朝鮮後期商業資本의 發達≫(高麗大 出版部, 1973).

―――,≪朝鮮時代商工業史硏究≫(한길사, 1981).

宋贊植,≪李朝後期 手工業에 관한 硏究≫(서울大 出版部, 1973).

鄭奭鍾,≪朝鮮後期社會變動硏究≫(一潮閣, 1983).
0652)李乙浩,≪茶山經學思想硏究≫(을유문화사, 1966).

―――,≪韓國改新儒學史試論≫(박영사, 1979).

韓㳓劤,≪星湖李瀷硏究≫(서울大 出版部, 1980).

―――,<白湖 尹鑴 硏究>(≪歷史學報≫15·16, 19, 1961, 1962).

李丙燾,<朴西溪의 反朱子學的 思想>(≪大東文化硏究≫3, 成均館大, 1966).
0653)尹絲淳,<朝鮮後期實學>(≪韓國儒學論究≫, 현암사, 1980) 참조.
0654)琴章泰,<朝鮮後期의 實學思想>(≪韓國哲學史≫下, 한국철학회, 1987).
0655)李佑成,<18세기 서울의 都市的 樣相-實學派 특히 利用厚生學派의 성립배경->(≪鄕土서울≫17, 서울시사편찬위원회, 1963;≪韓國의 歷史像≫, 創作과 批評社, 1982).
0656)趙璣濬,<李朝後期의 實學思想과 社會經濟的 背景>(≪亞細亞硏究≫32, 고려대, 1967;≪韓國史의 反省≫, 신구문화사, 1969).
0657)金泳鎬,<實學思想의 勃興>(≪한국사≫14, 국사편찬위원회, 1975), 128쪽.
0658)위와 같음.
0659)조선 후기 현실인식과 그 타개책을 둘러싼 주자학과 반주자학의 사상·이념적 대립과 분기현상은 이 시기 土地論의 전개과정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즉 주자학적 토지론이 양반 지주적 입장, 개량적 방법의 농업문제 수습책임에 대해서 반주자학의 토지론은 농민적 입장, 혁신적 방법에 의한 해결책이었다는 것이다(金容燮,<朱子의 土地論과 朝鮮後期 儒者>,≪增補版 朝鮮後期農業史硏究≫Ⅱ, 一潮閣, 1990).
0660)실학과 주자학을 이렇게 대항적 관계로 설정하는 것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견해가 아니다. 예컨대 실학은 상황적으로 중국 고대에서 淸代에 걸쳐서, 또 조선 전기에서 조선 후기에 이르도록 존재했는데 구체적으로는 陸王學에 대항한 程朱學에서, 空談化한 性理學·禮學·詞章學을 배격하는 經世學에서 실학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韓㳓劤, 앞의 글, 1958). 이 견해는 구학문과 신학문, 虛學에 대한 實學의 대응관계에 주목한 점, 그리고 어느 역사시기에도 사상, 학문간의 갈등은 존재하게 마련임을 예시하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 학문 상호간의 대응관계가 필연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대립 갈등 관계를 반영하게 마련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변동 발전과 학문·사상의 계기적 발전을 정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느낌이 있다.
0661)金容燮,<朝鮮後期의 農業問題와 實學>(≪東方學志≫17, 연세대, 1976), 60∼61쪽.

이러한 농업문제를 통해서 드러나는 실학의 성격과 관련하여 최근에는 실학의 정치구조·정치운영론에서도 이같은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金駿錫,≪朝鮮後期 國家 再造論의 擡頭와 그 展開≫, 연세대 박사학위논문, 1991).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