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ㆍ현대사 사진 모음’은 역사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나뉜다.
첫째는 “국사편찬위원회 사진 자료 맛보기”이다. 이 서비스는 한국 근∙현대사의 시기적 흐름에 따라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와 관련된 사진을 10컷 내외로 선별하여 설명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개화기부터 6·25전쟁 직후까지를 대상 시기로 했고, 주제는 106개이다. 콘텐츠를 구축하는 데 주로 활용된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조선사 편수회 사진 자료 컬렉션과 유리 필름 컬렉션, 일본 이와테현[岩手県] 오슈시(奧州市)에 있는 사이토 마코토 기념관(齋藤實記念館)에서 수집한 사이토 마코토 사진 자료 컬렉션, 미국에서 수집한 노먼 소프(Norman Thorpe) 컬렉션과 미 국립 문서 기록 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사진 자료에서 선별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현재 소장하고 있는 사진 자료로만 콘텐츠를 구성했기 때문에,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빠진 주제들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사료 수집 사업이 계속 되는 한, 콘텐츠의 대상 시기가 계속 확장될 것이고, 주제도 더해질 것이다. 이 서비스는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수집된 사진 자료를 신속하게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주제 콜렉션”이다. 첫 번째 서비스와는 달리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주제를 보다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임시 정부,’ ‘1920년대 사회상,’ ‘농촌 생활과 새마을 운동’이라는 세 개의 주제 콜렉션이 서비스되고 있다. 각각의 콘텐츠마다 450컷 전후의 사진이 설명과 함께 서비스되고 있다.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1919년 3·1운동에서 나타난 민족사적 염원을 기반으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국(民國)’을 표방하면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27년의 역사를 상해 시기(1919~1932), 이동 시기(1932~1940), 중경 시기(1940~1945)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내용은 정부 활동, 정당 활동, 군사 활동, 외교 활동, 해외 활동, 외곽 단체, 생활을 기본으로 하였고, 중경 시기에는 임시 정부의 환국을 추가하였다. 한인 애국단이나 한국광복군은 별도로 다루었다. 각 시기별 임시 정부 요인들의 사진과 현재 중국에 보존되어 있는 임시 정부 관련 유적지 사진을 첨부하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정당이나 정부 문서도 포함시켰다. 모두 430여 장의 사진이 실렸다.
‘1920년대 사회상’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 통치기(1919~27, 1929~31 재임)를 중심으로 일제 식민 통치하 조선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총 395매의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회유의 정치’, ‘개발과 수탈’, ‘관공서와 신사’, ‘특별 주제’라는 소주제 하에 사진과 설명을 배치하였다. 이를 통해 1920년대 조선 총독부가 한국인들을 회유하고 한반도의 통치 권력으로서 기반을 구축해가는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특별 주제는 한국인은 물론,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 서양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들과 일제가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식민사관과 관련된 사진들로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식민 통치하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 관계망을 확인하는 한편, 한반도라는 공간 자체가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고 재편되는 양상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1960~70년대 농촌 생활과 새마을 운동’은 국사편찬위원회의 국내 지역 사료 수집 사업에서 수집된 사진들로 만들어졌다. 지역의 기록물들에 부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던 사진들이기 때문에 전국적인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상태도 불량하다. 그러나 그동안 해당 지역 사회에서 소중한 기록으로 간직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중앙의 정책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었는지 당시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어떠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이들 사진의 대부분이 마을 공동체나 면사무소에서 다분히 전시적인 목적으로 촬영한 것들이 많아 주민 사회 내면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지 못한 점도 있다. 그러나 시골 마을 구석구석에 국가의 정책들이 시행되고 반영되고 있었으며 국가의 시선을 대단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그 사실부터가 1960~70년대 역사상의 중요한 측면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