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2 토기 제작전통의 형성과 발전01. 기술혁신과 공방의 발전, 원삼국시대

토기의 유형

[필자] 이성주

원삼국 이전에도 일정 시기에 일정 지역에만 존속하였던 토기의 유형이 있었다. 예를 들어 청동기시대에 송국리형토기라고 하면 청동기 중기에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거의 전역에 분포하던 토기 유형이었다. 초기 철기시대에는 그릇입술에 점토 띠를 덧대어 만든 점토대토기가 우리나라 전역에 확산되어 어디에 가도 이 유형의 토기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원삼국시대에는 지역에 따라 토기의 유형이 달랐고 같은 지역에서도 그릇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유형의 토기가 공존하였다. 우리가 이를 토기의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제작의 기술 체계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질감이나 형태가 서로 달랐고 그릇의 종류나 출토되는 유구의 성격도 달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원삼국시대에는 지역에 따라 토기의 양상이 크게 달랐다. 당시의 우리나라 사정을 가장 잘 기록하고 있는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을 보면 남한만 해도 지역에 따라 여러 종족들로 나누어지고 각각 풍습도 달랐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테면 강원도 지역은 예족이 살았고 호서 지역과 호남 지역은 마한이 있었다. 한강 유역에는 마한과 예족이 잡거한 지역이었던 것 같고 영남 지방에는 진한과 변한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렇게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종족이 거주하였고 문화와 풍습이 달랐으므로 토기의 양상도 달랐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때 남한 전체의 원삼국시대 토기를 김해식토기라고 통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지역 문화와 서로 다른 토기 유형이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김해패총의 회청색 토기를 기준으로 설정하였던 개념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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