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2 세시 풍속과 사회·문화02. 세시 풍속의 계급적 성격

민간의 세시 문화

[필자] 정승모

민간의 세기 정경은 농촌에 머물며 전원 생활을 하는 문인들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정홍명의 「전가사시사」의 예처럼 대개는 본격적으로 민간의 세시 문화를 담았다고 말할 정도는 못된다. 김상헌이 은퇴 후 경기도 양주 석실에서 지은 다음과 같은 세시 관련 시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난 해 봄에 지국이 안산 시골 집에 있을 때 병으로 누어있음에도 내게 시를 지어주었는데 내가 미처 화답을 못하였다. 올해 내가 석실로 물러나와 읊어보니 더욱 그 맛을 알 것 같아 그 운을 따라 시 10수를 짓는다.”고 하였다.

그 10수 중 농촌 가을 풍경을 나타내는 시 한 수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구월 늦은 가을은 만 가지 보배를 만들었고 사방 들에는 누렇게 익은 벼로 황금 들판을 이루었다. 집집마다 막걸리를 담는 것은 농부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취해 노래 부르며 언덕을 오르니 새 무덤들이 눈에 들어온다. 슬프다 무덤 아래 묻혀있는 사람들 이 노래를 어찌 들을 수 있을까.

<남양주 석실터>   

동악 이안눌이 본 강화의 입춘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그는 “북산 봉화는 평안을 알리고 동각 매화는 차례로 피어난다. 농부들의 고사술에 마을마다 북소리. 바다 객의 고기잡이 노래에 포구마다 들어선 배들. 뽕 마을 보리 언덕 노래소리 울려오고 어부집과 염부집 부역 가볍기를” 라고 하고 있다.

현주(玄洲) 조찬한(趙纘韓, 1572∼1631)은 권필, 이안눌, 임숙영 등과 교유하였는데 이들 모두 주옥같은 세시 관련 시를 남긴 문인들이다. 그는 1616년 영암 군수를 지낼 때 「남농팔영(南農八詠)」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남쪽 지방 농가의 봄, 여름, 가을 세시 풍경을 더욱 구체적으로 담았다.

(1월 이른 봄) 눈과 얼음이 녹아 땅이 풀리면 농부는 농기구를 손질한다.

(2월) 부들에 싹이 나고 살구에 꽃피며 왜가리와 꾀꼬리가 날아다닐 때 소를 매어 쟁기질하고 거름을 준다.

(3월) 신록이 지고 보리가 익어갈 무렵 꿩과 장끼가 날고 송아지 풀먹인다.

(한 여름) 품팔이 얻어 농사지을 제 들밥에 농주 곁들이고 김매기하며 수확을 기다린다.

(7월) 이른 메벼 벨 때 이삭은 여물고 멀건 국 싫어할까 봐 푸른 콩 넣어 밥 짓는다.

(8월) 사방이 익은 곡식으로 반은 푸르고 반은 누렇게 변하고 콩은 살찌고 메밀은 시들 무렵 노파의 박 자르는 소리 요란하다.

(9월) 새 술이 동아에 가득하고 과일이 바구니에 가득하니 조사 나온 관리와도 반갑게 서로 음식을 나눈다.

(가을 논갈이) 소여물을 끓이는 것은 춥기 전에 땅을 갈아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른 땅이 기름지게 되면 내년 농사도 기약할 수 있다.

그 밖에도 50세를 넘어가는 새해 아침에 지은 「원일(元日)」이란 시는 그가 경상도 상주 목사를 지낸 때로 추정되는데, 그 전날인 섣달 그믐 제석을 맞아 집집마다 촛불을 켠 채 밤을 세는 풍경과 요귀를 쫓기위해 폭죽을 터뜨리고 복숭아 가지를 삶는 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민간의 세시 문화에 대한 기록은 풍부하지 않을 뿐더러 내용에 있어서도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일제강점기 이후의 기록들도 적절한 수준에서 소급하여 보완하였다. 정월 한 달과 추석은 민간 세시 문화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계절별로 나눈 데서 이것들은 별도로 정리하였다.

[필자] 정승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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