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총설01권 한국사의 전개Ⅳ. 한국문화의 특성1. 언어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1. 생태학적 특성
          • 1) 한반도의 위치와 지형
          • 2) 한반도의 기후
          • 3) 식생
          • 4) 동물
          • 5) 생태계
          • 6) 생물상
        • 2. 지리학적 특성
          • 3) 지형
            • (2) 하천과 평야
            • (3) 해안과 해양
          • 4) 기후
        • 3. 인류학적 특성
          • 4) 산촌과 낙도 주민의 생태적 특성
          • 5) 도시인의 주거지역과 생태적 특성
      • Ⅱ. 한민족의 기원
        • 1. 고고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문화계통의 다원론적 입장-
          • 3) 문화계통
        • 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 1) 한민족·한국문화 기원론의 흐름
          • 2)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여러 양상과 그 계통
        • 3. 문헌에 보이는 한민족문화의 원류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1. 선사
        • 2. 고대
          • 1) 국가의 성립과 발전
          • 2) 통일 신라의 수취제도
        • 3. 고려
          • 1) 정치적 특성
          • 2) 경제적 특성
          • 3) 사회적 특성
          • 4) 사상적 특성
        • 4. 조선
        • 5. 근현대
          • 1) 근대적 사회변동과 자주 개혁의 시련
            • (7)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의 전개
          • 2)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독립운동
            • (1) 일제의 강점과 식민통치의 기조
            • (2) 식민통치의 시기별 특징
            • (4) 독립운동의 시기별 특징
          • 3) 해방정국과 현대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1. 언어
        • 2. 문학
        • 3. 종교와 사상
          • 5) 한국 종교사의 전개
        • 4. 과학기술 -한국 과학기술사의 시기별 특징-
          • 1) 전통과학시대
          • 2) 근대과학시대
          • 3) 현대과학시대-한국전쟁 이후
        • 5. 미술
          • 1) 선사시대 미술의 특성
          • 2) 삼국시대 미술의 특성
        • 6. 음악
          • 2) 한국음악사의 전개양상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분열과 통합의 역사

 우리 민족은 핏줄이 하나요, 말도 하나다.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단일 민족이요, 단일 언어다. 이 단일성의 신화가 오늘날도 우리 나라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한반도와 대륙에 널리 흩어져 산 옛 조상들이 모두 한 언어를 썼다고 하는 주장은 미덥지 못하다. 이 주장은 두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첫째로, 모든 언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古典을 읽어 본 사람은 그 언어가 오늘의 언어와 같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세종대왕의≪용비어천가≫나 鄭澈의≪松江歌辭≫는 특별히 연구한 학자들만이 읽어서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로, 언어 변화의 방향은 다 똑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같은 말을 하면서 살던 한 종족의 사람들이라도 몇 갈래로 나뉘어 떨어져 살게 되면 그들의 말이 서로 다르게 되는 것이다. 독일어와 영어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두 언어는 지금으로부터 1500년 조금 전에 갈린 뒤에 서로 다른 변화를 겪어왔다. 언어의 변화가 얼마나 빠르고 큰 지 이 두 언어는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上古에 한반도와 대륙에 흩어져 살았다. 혈연 중심의 씨족 단위의 마을들로 나뉘어 살았고 차츰 가까운 씨족들이 모여 부족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뉘어 사는 동안에 언어의 분화가 일어난 것이다.

 고대의 언어 상황에 대한 기록은≪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 나라 史書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중국의 사서에 단편적으로 보인다. ≪三國志≫(魏書 東夷傳)에 의하면 고구려는 夫餘의 별종인데, 언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가 많이 부여와 같았고 東沃沮는 그 언어가 고구려와 크게 같은데 때때로 조금 달랐고 濊는 언어와 法俗이 대개 고구려와 같았다고 하였다.499) 그리고 辰韓의 언어는 馬韓과 같지 않았고 弁韓의 언어는 진한의 언어와 비슷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後漢書≫(東夷傳)는 진한과 변한의 언어와 풍속에 다름이 있었다고 하였음을 본다. 언어의 異同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데 그 옛날 중국에 알려진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북쪽 언어들은 大同小異했고 남쪽 언어들 사이에는 다름이 있었다고 하면서 정작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쪽의 고구려와 남쪽의 백제·신라가 솥발과 같이 벌여 선 것은 언어 상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세 나라의 영토 안에서 王都의 언어를 중심으로 언어 통합의 기운이 일어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3장) 한자의 새김을 표기에 이용했음을 말했는데, 이 새김 역시 왕도의 언어로 이루어졌던 것이므로 이것도 언어 통합의 촉진에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삼국의 언어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전하는 자료를 통해서 그 모습을 어림잡을 수 있다.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보잘것없지만 이것은 사실상 한국어의 가장 오랜 자료로서 매우 소중한 것이다. 여기서는 길게 논할 수 없으므로 두 예만 들어보기로 한다.

 城을 가리켜 고구려어는 ‘忽’이라 하였다.≪삼국사기≫(권 37)의 고구려 지명 표기에 “買忽一云水城”이 보인다. 지금의 水原을 적은 것인데, 音讀表記의 ‘홀’이 석독 표기의 ‘城’과 대응됨을 볼 수 있다.500) 이 대응은 많은 고구려 지명표기에 나타나므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국의≪三國志≫(魏書 東夷傳)에 ‘幘溝漊’에 대하여 ‘溝漊’는 고구려어로 城을 가리키는 말이라 있음이 눈에 띈다. 이 ‘구루’는 ‘홀’의 古形으로 방언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백제어로는 성을 ‘긔(己)’라 하였다. 이것은≪삼국사기≫(권 36)에 백제의 ‘悅己縣’이 ‘悅城縣’으로, ‘結己縣’이 ‘結城縣’으로 고쳐진 데서 볼 수 있다. 신라어로는 성을 ‘잣’이라 하였다.≪삼국유사≫(권 5)에 실린 신라 향가<彗星歌>에 ‘城叱’이 있는데 ‘叱’은 받침 ‘ㅅ’을 나타낸 것이요, 중세한국어에 ‘잣(城)’이 있음을 감안할 때 ‘城叱’은 ‘잣’을 표기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대 일본어 문헌에 성을 가리킨 단어로 ki와 sasi가 보이는데 이들은 바로 위에 말한 백제어의 ‘긔’와 신라어의 ‘잣’과 일치하는 것이다. 필시 백제와 신라에서 築城法과 함께 이 단어들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王을 고구려어로는 ‘(皆)’라 하였다.≪삼국사기≫(권 37)의 고구려 지명 중에 ‘王逢縣一云皆迫’이라 한 것이 그 증거가 된다. 이 지명에는 漢氏 美女가 安藏王을 만난 곳이어서 이렇게 이름하였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여기서 ‘王逢’은 석독 표기요 ‘皆迫’은 음독 표기로 추정되므로 ‘王’의 새김이 ‘(皆)’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는 부여 관직명의 ‘馬加’, ‘牛加’ 등의 ‘加’, 중세몽고어에서 최고 통치자를 가리킨 qaran, qan(可汗, 汗)에 대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501) 한편 백제어의 王稱에 대해서 중국의≪周書≫(異域傳)는 “왕의 姓은 夫餘氏인데 於羅瑕라 일컫는다. 백성들은 ‘鞬吉支’라 부른다. 중국어로는 다 王이다”라고 매우 흥미있는 증언을 하였다. 여기서 ‘어라하’는 북쪽 부여 계통의 이름이요, ‘건길지’는 남쪽 韓 계통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어라하(중국의 옛 발음으로는 uo-lâ-Υa)’의 ‘하’는 고구려어의 ‘’에 대응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건길지’의 ‘길지(중국의 옛 발음으로는 kiĕt-tśiḙ)’는≪日本書紀≫에서 백제의 왕을 kisi라 일컬은 것, 16세기에 전라도 광주에서 간행된 ≪千字文≫의 “王 긔왕”에 보이는 ‘긔’에 대응되는 말임에 틀림없다. 한편 신라에서는 왕을 ‘居西干’, ‘次次雄’ 또는 ‘慈充’, ‘니금(尼師今)’ 또는 ‘닛금(尼叱今)’, ‘麻立干’ 등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보이는 ‘干’은 고구려어의 ‘’와 같은 계통의 것이며 ‘금(今)’은 중세한국어의 ‘님금’의 ‘금’과 같은 것이다(‘님금’은 ‘主君’의 뜻이다). 고대 일본어의 kimi(君)는 이 ‘금’의 차용임이 분명하다.

 위의 예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고대 삼국의 어휘 연구가 쉽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신라어와 백제어는 서로 가까웠지만 이들과 고구려어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502) 여기서 삼국 통일 이후인 景德王 16년(757)에 전국 郡縣의 이름을 漢字 2자로 고친 것도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신라의 통일로 신라어를 중심으로 한 한국어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고려의 건국으로 오늘의 한국어가 확고한 터전 위에 서게 되었다. 이로써 開京의 언어가 中央語로서 전국의 언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중앙어의 성립으로 한국어의 역사에 새로운 시기(중세한국어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한양으로 옮겨진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서 고려 중앙어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하는 것이 한국어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중앙어는 신라어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중세한국어에 대한 연구는 이것이 신라어를 이은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휘에 고구려어의 요소가 끼어들었을 것을 상상할 수 있으며 그런 흔적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밝히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앞으로 더욱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겠음을 느낀다.

499)이 기록이 挹婁에 대해서 그 人形은 부여와 비슷하지만 언어는 부여나 고구려와 같지 않다고 지적하였음이 눈길을 끈다. 읍루는 肅愼의 후예로서 현대 퉁구스족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00)음독 표기의 ‘(買)’는 석독 표기의 ‘水’과 대응된다. 고구려어의 ‘(水)’는 신라어와 중세한국어의 ‘믈’, 만주어의 muke, 퉁구스제어의 mu, 고대일본어의 midu와 비교된다. 몽고어의 mören(江)도 여기에 추가된다.
501)음독 표기의 ‘박(迫)’은 석독 표기의 ‘逢’과 대응된다. 이것은 ‘만나다’를 뜻하는 고구려어의 동사 어간이 ‘박’이었음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 동사는 퉁구스어의 baka-(발견하다, 만나다), 만주어의 baha-(얻다)와 비교된다.
502)고대 삼국의 언어 자료와 연구 방법에 대해서는 李基文,≪國語史槪說≫(新修版, 1998), 43∼51·74∼98쪽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