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한국어의 계통
언어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옛날의 한 언어가 서로 다른 변화를 입어 여러 언어로 갈라진 예들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한 祖語에서 나뉜 언어들은 親族關係에 있다, 系統이 같다고 하며 친족관계가 밝혀진 언어들은 한 語族으로 묶이게 된다. 이것은 주로 19세기 초엽부터 인도와 유럽에 걸친 많은 언어들의 비교 연구에 의해서 인도·유럽어족이 확립되면서 형성된 이론이다. 이 연구에 힘을 얻어 세계의 다른 지역의 언어들도 어족으로 묶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져 왔지만 이것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인도·유럽어족의 경우처럼 여러 가지 혜택된 조건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어의 경우도 이중의 하나였다. 한국어와 친족관계에 있다고, 한 조어에서 갈리어 나왔다고 분명히 증명할 수 있는 언어 또는 언어들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한국어의 존재는 19세기에 서유럽에 알려졌는데, 처음으로 한국어에 접한 학자들은 우랄·알타이제어(Ural-Altaic)에서 볼 수 있는 몇몇 특징을 한국어에서도 발견하여 한국어의 우랄·알타이 계통설을 주장하였던 것이다.503) 그 특징이란 저 위에서(제2장) 거론한 모음조화와 문법적 교착성이었다. 이런 큰 특징의 공유가 친족관계의 좋은 밑바탕이 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친족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 친족관계의 증명은 더욱 구체적인 사실들의 일치를 발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미 19세기에 알타이제어의 비교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이들과 한국어의 비교 연구는 20세기의 2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 동안 이 연구에 헌신하여 온 학자들은 적지 않은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 왔으며 이제는 한국어를 포함한 알타이어족이 성립된 것으로 믿기에 이르렀다.504) 그러나 이에 대한 회의론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음이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성과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에는 모자라는 점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언어의 비교 연구는 고대 문헌 자료가 풍부하고 그 언어들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잘 이루어질 수 있는데, 알타이제어와 한국어는 고대 자료가 극히 적은 데다가 구조가 단순하여 비교 연구에 불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구조의 일치일수록 우연성이 적고 따라서 證明力이 큰 법인데 알타이제어와 한국어에서는 이런 일치를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증명력이 큰 사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여기서 알타이제어와 한국어의 문법에서 하나하나의 형태는 단순하지만 몇 형태가 모여서 이루는 구조는 매우 특수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알타이제어의 문법에서 動名詞는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동사의 활용형들을 분석해 보면 대개 동명사형을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 많다. 알타이제어에서 동명사의 어미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 ①-r, ②-m, ③-n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여기서 이들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할 수밖에 없으므로 간략하게 말하면 기원적으로 ①은 미래, ②는 현재, ③은 과거를 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도 이 셋이 모두 확인된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②만이 명사형 어미로 쓰이고(‘자다’, ‘먹다’에서 ‘잠’, ‘먹음’과 같은 동명사를 만들 수 있음) ①과 ③은 관형사형 어미로 쓰이고 있다. ‘잘 사람’, ‘먹을 밥’, ‘잔 사람’, ‘먹은 밥’. 그러나 중세한국어에서는 ①과 ③도 명사형 어미로 쓰인 예가 발견되며 이들도 기원적으로는 동명사 어미였음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이 동명사 어미들은 하나하나의 일치도 중요하지만, 셋이 이루는 구조가 일치하는 사실은 우연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인상적인 일치를 드러내기에 한층 더 큰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친족관계는 확립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국어는 알타이제어 중에서도 퉁구스어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고구려어 자료가 좀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오늘날 전하는 고구려어 자료가 퉁구스어와 가까운 일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구려어는 퉁구스어와 신라어 사이에서 이들을 이어 주는 고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503) | 20세기에 들어 우랄 어족과 알타이 어족이 나뉘면서 알타이 계통설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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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 | 대표적인 학자로 G. J. Ramstedt와 N. Poppe를 들 수 있다. G. J. Ramstedt, Studies in Korean Etymology(Helsinki, 1949);Einführung in die altaische Sprachwissenschaft Ⅰ-Ⅱ(1952∼1957, Helsinki). N. poppe, Vergleichende Grammatik der altaischen Sprachen(1960, Wiesbaden);Introduction to Altaic Linguistics(1965, Wiesbad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