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음악
1) 한국음악사의 시대구분을 위하여
한민족이 활동한 역사가 한국사이듯이, 한국음악사는 한국의 음악인들과 수용자들이 이루어 놓은 음악활동의 역사이다. 한국의 음악인들과 수용자들이 어떻게 음악의 역사를 발전시키면서 오늘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체계적 인식은 여러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한 시대의 음악사를 어느 사회계층이 주도적으로 전개시키고 향수했는가라는 음악수용층의 관점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고, 시대에 따라 외래음악을 어떻게 수용했는가라는 수용사적 측면의 견해도 가능하다. 한 시대의 음악수용층과 외래음악의 수용이 음악사의 전개과정에서 등장한 음악의 갈래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수용층 및 외래음악의 수용에 따른 음악의 갈래가 시대마다 새로 등장하여 어떻게 변천됐는가에 대한 이해는 한국음악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다.
한국사의 발전과정에서 음악수용층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달라졌으며, 외래음악의 수용과 변천도 시대마다 그 양상을 달리하였다. 그러나 음악수용층의 시대적 변천과 외래음악의 수용양상에 따라 생성된 음악의 갈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음악사의 大勢, 곧 큰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접근방법이다. 따라서 이런 두 가지의 관점에 의해서 찾아낸 음악의 갈래가 시대마다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는지가 한국음악사의 시대구분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한민족이 이루어 놓은 음악의 역사는 음악활동의 흔적을 담은 음악사료의 근거로 서술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시대 변천에 따른 음악수용층의 양상 및 외래음악의 수용과 변천에 관련된 흔적을 담은 음악사료는 음악사 서술의 필수적 근거이다. 그런데 한국의 음악사료는 어떤 형태로 전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두 갈래로 구분된다. 하나는 문자나 기호로 기록된 음악사료이고, 다른 음악사료는 문자가 아닌 고고학자료에 나타난 그림 등과 같은 역사적 유물이다.
문자나 기호에 의한 음악사료는 記譜法에 의거하여 음악실체를 담은 樂譜와 음악이론을 서술한 樂書, 그리고 한 시대의 음악문화에 관하여 기록한 음악문헌으로 세분된다. 악보나 악서는 音樂樣式(music style)과 음악이론의 역사적 변천을 밝혀주는 직접적인 음악사료이고, 음악문헌은 한 시대의 음악양식과 관련된 음악문화의 변천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음악사료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최고 악보가≪世宗實錄樂譜≫이고 최고 악서는≪樂學軌範≫(1493)이므로, 15세기 이전의 음악사는 음악문헌과 고고학자료에 의거해서 서술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조선왕조 이전의 음악사는 음악문헌과 고고학자료에 의거해서 서술되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양식의 변천사 서술은 15세기부터나 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음악의 전체 역사는 양식사적 관점보다는 음악문화사적 견지에서 서술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음악사료의 상황 아래서 음악수용층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천됐으며, 외래음악이 어떻게 수용되어 발전됐는지를 찾아서 음악의 갈래를 중심으로 한국음악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순리적이다. 그런데 한 시대의 음악문화가 그 사회의 음악수용층에 의해서 형성되고 외래음악의 수용과 변천에 의해서 전개되지만, 그렇게 형성되거나 전개된 음악문화의 갈래들은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음악사의 대세파악은 음악문화의 지속적인 측면보다는 변화의 측면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한국음악사의 전개과정에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등장하는 새로운 갈래의 음악, 예컨대 唐樂이나 雅樂, 그리고 洋樂과 같은 외래음악의 등장과 변천은 그래서 한국음악사의 대세파악에서 중요시되어야 한다.
한 시대 음악수용층의 지배사상도 역시 음악문화의 전개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의 하나이다. 조선왕조의 건국을 주도했던 新興士大夫 출신 儒臣들의 유가적 禮樂思想은 조선 전기의 음악문화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력을 미쳤고, 중세 전기의 고려시대를 마감하고 중세 후기의 새 지평을 여는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등장한 實學思想은 궁중음악의 역사적 변천과 민간음악의 등장에 크게 영향력을 미침으로 인하여 중세에서 근대로의 移行期를 열었던 사상적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음악수용층의 지배사상이 한 시대의 음악사를 전개시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므로, 한 시대의 지배사상도 음악사의 대세파악에서 고려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음악인의 사회적 지위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고대사회의 음악인은 비교적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렸으니, 거문고의 대가 王山岳과 玉寶高 그리고 가야금을 신라에 전해준 가야국의 악사 于勒과 그의 제자였던 法知·階古·萬德과 같은 신라관리들이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음악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입증해준다. 그러나 고려왕조와 조선왕조를 거치는 중세에 이르러 음악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변천되어 천시받는 천민의 계급으로 전락되었다. 한국음악사의 전개과정에서 음악인들이 누렸던 사회적 지위의 변천이 음악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가 음악사의 대세와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됐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발전과정에서 음악인과 수용층이 형성한 음악의 갈래 및 외래음악의 수용과 변천에 의한 음악의 갈래들이 시대에 따라서 어떤 변천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체계적 인식은 음악사의 대세를 파악하는 하나의 접근방식이다. 그리고 음악사의 서술이 음악양식사적 관점에서만 이루어지기 어렵고, 오히려 음악문화사적 견지에서 서술되어야 하는 이유가 음악사료의 시대적 한계성 때문이다. 한 시대 음악수용층의 사상과 음악인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변천됐는지에 대한 이해도 음악사의 대세파악에 중요한 구실을 담당한다는 견지에서 음악사 서술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대변천의 중요한 요인들에 의한 한국음악사의 전개양상은 결국 시대마다 새롭게 등장하여 변천된 음악의 갈래로 귀착된다. 이러한 전제 아래 한국음악사의 큰 흐름을 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