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집터의 구조
가) 평면형태
평면형태는 원형·타원형·방형·말각방형·장방형·말각장방형 등이 있고 이 중에서 방형·장방형 혹은 말각장방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중부지방에서는 두 개의 집터가 연결된 呂자형과 집터에 출입시설이 있는 凸자형의 집터가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다.
나) 집터의 규모
집터의 규모는 10㎡에서 50㎡사이에 해당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며 적은 수이지만 10㎡ 미만의 소형과 100㎡ 내외의 대형 집터도 발견된다. 소형의 경우는 대개 창고와 같은 부속시설로 추정하고 대형의 경우는 지배계급에 속하는 집터로 설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터의 규모가 초기에는 작으나 후기에는 점차 커지고 있다. 움의 깊이는 0.15∼0.9m로서 중부지역을 제외하면 청동기시대보다 대체로 얕아지고 북부지역의 경우 거의 지상가옥화 되었다.
다) 화덕
내부시설로서 가장 중요한 화덕은 보온뿐만 아니라 취사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인데 신석기시대의 집터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는 반면 철기시대에는 화덕이 없는 경우도 많다. 화덕의 형태는 터널형·敷石形·無施設形·圍石形으로 크게 구별되고 있다.0722) 또한 좀더 발달된 부뚜막 시설도 보인다.
터널형:집터 바닥 한편에 양벽과 뚜껑을 편편한 돌이나 土板으로 조립해 터널형으로 만든 것으로, 곬의 형태에 따라 외곬형·ㄱ자형·다곬형으로 구분되고 있다. 외곬형과 ㄱ자형은 노남리 집터 내에서는 같이 축조되어 있고, 같은 문화층에서 조사된 대평리 2·9호 집터에서도 각각 만들어져 있다. 기술상 외곬에서 ㄱ자형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곬형은 송평동유적에서 한 예가 알려져 있으나 집터시설과 분리, 조사되어 분명치 않다. 이 형태는 최근의 온돌시설과 흡사하여 외곬형·ㄱ자형보다는 발전된 단계로 생각된다. 즉 외곬에서 ㄱ자형으로 된 것이 다곬형으로 발달하여 방 전체를 덮힐 수 있는 온돌시설로 발달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부석형:평평한 돌을 직경 1m 정도의 타원형으로 편 후 그 위에 점토를 덮고 한쪽에 바람막이 돌을 세워 놓은 형태로 중도·마장리유적 등 한강유역에서 조사되었다.
위석형:신석기시대인의 화덕으로 사용된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전통이 이어져온 축조 방법이다. 철기시대의 집터로 이와 같은 위석시설을 하여 화덕을 만든 곳은 중강 토성리, 김해 부원동 C지구 2·3호 집터, 무산 호곡동유적 17·26호 집터 등에서 확인되었으나 뚜렷한 지역적 분포 정형은 보여주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위석형 화덕은 터널형 화덕이나 부석형 화덕처럼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무시설형:호곡동 5기의 집터는 모두 주춧돌을 장축 방향으로 4줄로 펴 기둥을 세우고 있는데 이와 같은 무시설 화덕에 주춧돌을 펴서 기둥을 세우는 수법은 호곡동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에서부터 계속 사용되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두만강유역 일대의 오동과 서포항유적의 청동기시대 집터에서도 대부분 무시설 화덕을 만들고 있어서 청동기시대 이래 두만강유역 일대에서 유행한 지역적인 집터 축조방법이라 하겠다.
부뚜막:화덕에서 좀더 발달된 형태의 부뚜막이 하남 마사동유적을 비롯하여 중남부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는 집터 내부에 부착되어 있고 굴뚝이 외부로 나가 있는 형식이다.0723)
라) 기타 시설
그 밖의 시설에는 저장시설과 도랑이 있다. 저장시설은 집터 바닥을 파서 만든 것이나 한쪽 벽을 밖으로 돌출시켜 만든 것이 있고 집터 밖에 소형의 구덩이를 가진 경우도 있다.
그리고 집터 내부에 벽을 따라 도랑(溝)이 있는 예도 보인다. 즉 승주 낙수리, 보성 죽산리, 광주 오룡동, 삼천포 늑도유적 등 구릉에 위치한 집터에서 가끔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집터 안으로 스며드는 물을 빼기 위한 것이거나 혹은 벽을 보강하기 위해 설치했던 시설의 흔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