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층서의 검토
지금까지 발굴된 패총유적을 검토해 보면 여러 문제점이 제기된다. 최초의 발굴인 김해패총에서는 자연층이 무시되고 계단식발굴법을 채용하였는데 최상층과 최하층에서 거의 같은 내용의 유물이 출토되어 층서적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0733)
웅천패총은 구릉 정상부의 평지에 위치하며 인공층(20cm)에 의해 발굴되었으나 그 출토유물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찾지 못하였다.
그 뒤 층서의 구분이 비교적 확실한 발굴은 조도패총과 성산패총의 경우이다. 조도패총은 3개층으로 구분되었는데 최하층(1층)은 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섞여있고, 그 위층(2·3층)에서는 주로 타날문토기가 출토되었다. 한편 성산패총은 4개층으로 구분되었는데 최하층(Ⅳ층) 역시 무문토기층이고 그 위층은 타날문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층이다. 그런데 이들 패총에서 무문토기층 다음에 바로 타날문토기층으로 연결되거나 혹은 일부 혼재되어 나타났기 때문에 이들 사이가 연속적인 것이며 적갈색연질토기와 회청색경질토기의 발생시기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군곡리패총은 층서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패각층을 14개의 자연층으로 나누었고 다시 이를 5개의 기층으로 묶었으며 각 기층간의 문화적 변천이 밝혀졌다. 즉 경질무문토기, 경질찰문토기, 연질의 타날문토기 및 회청색경질토기 등이 등장하는 시기에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상의 패총 발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패각층의 조사가 층서적 발굴이 되지 못하였고, 설사 층서적 발굴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층간의 세밀한 문화적인 변화를 찾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패각층이 다른 유구와 달리 쉽게 교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0733) | 다만 有光敎一은 앞의 글에서 김해패총의 패각층에서 최하층인 Ⅶb층과 최상층인 Ⅱa층 사이에 유물의 차이가 관찰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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