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고려의 향악 및 향악정재의 등장
향악이 제례의식의 아헌·중헌·송신의 절차에서 아악과 함께 연주되었던 전통은 명종 18년(1188) 이후부터 확립되었다.0745) 이처럼 향악은 제례의식에서 뿐만 아니라 宰樞가 河南王의 사자인 郭永錫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을 때, 향악이 당악과 더불어 연주되었다.0746)
고려의 향악곡들은≪고려사≫악지에 의하면 舞鼓·動動·無㝵·西京·大同江·五冠山·楊州·月精花·長湍·定山·伐俗鳥·元興·金剛城·長生浦·叢石亭·居士戀·處容·沙里花·長巖·濟危寶·安東紫靑·松山·禮成江·冬栢木·寒松亭·鄭瓜亭·風入松·夜深詞·翰林別曲·三藏·蛇龍·紫霞洞 등 총 32곡이었다.0747) 이 32곡 중 무고·동동·무애는 노래가 아닌 鄕樂呈才였음을 상기할 때, 고려시대 향악은 춤이 포함되었던 넓은 개념이었다. 대부분 고려의 향악곡들은 노래였음이 분명한데, 어느 경우에 어떻게 불리었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다만 후대의 기록에 의해서 일부분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태종 2년(1402) 자하동은 임금이 종친형제에게 베푼 잔치에서, 풍입송은 사신을 위한 잔치에서, 금강성은 신하를 위해서 임금이 베푼 잔치와 1품 이하 사대부를 위한 잔치에서, 또 오관산은 서인이 부모형제를 위해서 베푼 잔치에서 각각 연주되도록 예조가 상소하여 윤허를 받았다.0748) 한림별곡은 새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위해서 베푼 술자리 곧 許參의식에서 노래로 불렸다.0749) 조선 초기의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고려의 향악곡들은 궁중잔치 및 사대부 사회와 일반 서민들의 잔치에서 노래로 불렸음이 분명하다. 고려의 향악곡은 거문고와 같은 향악기의 반주에 따라 노래로 불렸음을 풍입송의 경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0750)
고려시대 향악정재의 등장은 음악사적 관점에서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갖는 역사적 사건이었다.0751) 첫째로 향악정재가 음악사에서 앞 시대와 구분지을 수 있는 근거의 하나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향악정재는 향악의 반주음악을 반드시 수반했으므로 향악을 후대에 전승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이며, 셋째로 고려시대만 해도 향악의 개념 속에 呈才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재라는 말은 본래 임금 앞에서 춤과 재주를 포함한 모든 재능과 기예를 드린다는 獻技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이 차츰 궁중무용의 대명사처럼 사용하게 되었다.0752) 향악정재라는 말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고, 고려시대에는 그냥 향악이라는 용어 안에 정재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음악과 무용을 구별하는 것이 고려음악사의 서술에서 편리하므로 향악과 향악정재를 구별하였다.
향악정재의 특징은 당악정재와 비교해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향악정재에는 긴 장대에 수술로 장식된 竹竿子를 든 무용수가 없다는 점이고, 둘째로 정재의 연주 도중에 노래부르는 致語와 口號가 없으며, 셋째로 무용수가 춤추는 도중에 노래부르는 唱詞가 한문이 아닌 국문으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향악정재는 舞鼓·動動·無㝵 이상 세 가지였다.0753)
무고는 충렬왕 때 시중 李混이 寧海에 귀양갔다가 바다의 뗏목을 얻어 만든 북에서 유래되었는데,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향악정재의 하나였으며, 현재까지 국립국악원에서 공연되고 있다. 무고의 주위를 즐겁게 돌아가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마치 한쌍의 나비가 펄펄 날아서 꽃 주위를 감도는 듯하다고≪고려사≫ 악지에 기록되었다.0754) 본래 창사의 이름에서 유래된 동동은 세종 때까지만 해도 동동정재로 알려졌으나, 그 명칭이≪樂學軌範≫ 권 5에서는 牙拍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무용수들이 아박을 들고 춤을 추기 때문이었다.0755)≪고려사≫ 악지에 의하면, 서역에서 유래되었다는 무애는 원효의 무애가무에 나오는 ‘아무 꺼릴 것이 없는 사람은 한 가지 도로써 생사를 벗어난다’는 구절과 관련되었다고 생각되는 향악정재인데,0756) 순조 29년(1829)에 재현된 무애가 현재 전승되지 않고 있다.
0745) | 宋芳松,≪韓國音樂通史≫(一潮閣, 1984), 16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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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6) | ≪高麗史≫ 권 71, 志 25, 樂 2, 用俗樂節度. |
0747) | ≪高麗史≫ 권 71, 志 25, 樂 2. |
0748) | ≪太宗實錄≫ 권 3. 태종 2년 6월 정사. |
0749) | 成 俔,≪慵齋叢話≫ 권 4 (≪국역대동야승≫ 권 1, 민족문화추진회, 1971, 109쪽). |
0750) | 成 俔,≪慵齋叢話≫ 권 10 (위의 책, 248쪽). |
0751) | 宋芳松, 앞의 책(1984), 179∼180쪽. |
0752) | 張師勛,≪韓國傳統舞踊硏究≫(一志社, 1977), 39쪽. |
0753) | ≪高麗史≫ 권 71, 志 25, 樂 2, 舞鼓. |
0754) | ≪高麗史≫ 권 71, 志 25, 樂 2, 動動. 張師勛, 앞의 책, 125∼126쪽. |
0755) | ≪高麗史≫ 권 71, 志 25, 樂 2, 舞鼓. 張師勛, 위의 책, 126∼127쪽. |
0756) | ≪高麗史≫ 권 71, 志 25, 樂 2, 動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