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떡의 보급
떡은 우리 나라의 가장 보편적이고 토착적인 의례음식의 하나로서 시루(甑)를 쓰던 시대에 개발되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시루 중 제일 오래된 것은 청동기시대 유적인 羅津 草島貝塚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유적지에서도 계속 출토되고 있을 뿐 아니라 황해도 安岳3호분, 藥水里고분 등에는 시루를 앉힌 주방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이 시대에는 시루가 상용되는 용구이고 시루에 쪄서 만든 떡이 상용음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삼국시대 후기에 이르면 쌀·보리·조 등 주곡이 양산되고, 무쇠솥이 보급되어 밥을 짓게 되므로 밥과 반찬으로 구성한 차림이 상용식사의 기본양식으로 정착됨에 따라 떡은 통과의례·생업의례·명절·선물 등에 쓰이는 의례음식으로 정착되었다.1178) 즉 쌀은 낟알(粒食)로 조리하기에 편리한 곡물이므로, 우리의 쌀음식 중 떡이 밥에 앞서 개발되었지만 상용음식은 조리하기에 간편한 입식형으로 정착되고 떡은 의례음식으로 정착되어 전통을 이어온다.
고려시대 떡에 관련된 풍습과 조리법이≪牧隱集≫·≪海東繹史≫·≪芝峰類說≫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정월 보름에는 찹쌀 찐 것에 기름·꿀·잣·밤·대추 등을 섞어 다시 쪄서 만든 약식을 이웃의 여러 집과 나누어 먹는다. 유두일에는 단맛과 신맛이 어울려 감미롭고 몸이 눈같이 깨끗한 단자병을 만든다. 찰기장의 전병은 붉은 팥소를 넣고 지져 표면이 황금색이며 요기를 하기에 좋다. 고려에서 상사 때는 어린 쑥을 멥쌀가루에 섞어서 찐 쑥설기(靑艾餠)를 으뜸가는 음식으로 안다. 高麗栗糕는 그늘에서 말린 밤가루와 멥쌀가루를 2:1의 비율로 섞어 꿀물이나 백탕으로 물을 내려 찐 떡이다. 이같이 설기떡·전병·단자병·약식 등의 조리기술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기본조리법이다.
| 1178) | 尹瑞石,≪改訂增補韓國食品史硏究≫(新光出版社, 1993), 80∼8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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