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유밀과의 성행과 다식
油蜜菓와 茶食은 모두 한과류의 대표적 품목이다. 현재는 조리법을 기준으로 해서 약과·유과(강정·산자류), 다식, 전과, 엿과 엿강정, 과편 등으로 크게 구분되며 총칭하여 造菓 또는 菓飣類라고 한다. 그 중 고려에서는 유밀과와 다식이 연등회·팔관회를 위시하여 제향·잔치 등에서 늘 사용되었으며, 특히 유밀과가 성행하였는데≪고려사≫에 기재되어 있는 유밀과는 약과와 유과의 총칭으로 볼 수 있다.
고려의 유밀과는≪慵齋叢話≫에서 말하듯이 모두 새·짐승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 모양이 바뀌었다. 고려에서는 왕이 행차를 하면 거쳐가는 고을이나 사원에서 유밀과를 봉정하였고, 대·소연회에는 유밀과를 성찬의 하나로 숭상하였으며, 혼례에서 납폐예물로 보내는 것이 고려의 관례였다.
한편 유밀과의 쓰임새가 지나치게 많아 곡물의 허비가 많았으므로, 충렬왕 8년(1282) 왕의 행차 때는 유밀과의 봉정을 금하게 하고, 명종 22년(1192)에는 공·사를 막론하고 연회의 사치함을 삼가하여 유밀과를 소연에는 3기, 중연에는 5기, 대연이면 9기로 한하도록 형법으로써 금령을 내린 바 있다.1179) 유밀과의 그릇수로 보아 여러 가지 유밀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밀과는 떡과 달라 밀가루와 기름·꿀이 기본재료이며 이런 식품의 공급이 부족하였으므로 금령으로 제약하게 된 것이다.
다식은 쌀가루(쌀을 쪄서 말려 볶아 가루로 한 것), 볶은 콩의 가루, 볶은 흑임자의 가루, 익힌 밤가루, 송화가루 등을 꿀에 반죽하여 다식판에 찍은 것이다. 다식이란 이름은 團餠茶를 마시던 유습에 연유하여 지어진 이름이며1180) 차와 함께 곁드리기에 좋은 한과의 하나이다.≪목은집≫에는 팔관성례에 쓴 다식을 種德副樞가 보내주어 받은 후 읊은 시문이 있는데 “다식을 먹어보니 달콤한 맛이 입안에 스민다. 좋은 음식은 지금도 우리의 옛 풍습 그대로이고 의관은 역시 옛풍대로 중국 것이 많다”고1181) 하였다. 이 시문을 통해 다식을 위시한 한과류가 우리 고유의 음식으로서 고려 이전의 시대로부터 역사가 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