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국수와 만두·떡·한과
우리 나라의 국수요리는 본래 정규 식사용 음식이 아니라 잔치음식 또는 별식이었다. 전통국수는 메밀국수이며, 고려시대에는 사원에서 제면업을 하여 시판하였다. 조선 초기 국수의 종류로는 메밀국수(메밀 5되에 거피해서 불쿤 녹두 1국자를 섞어 빻아서 만든 국수)·녹말국수(일명 시면:밀가루 7홉으로 쑨 죽에 녹두녹말 2되를 섞어 만든 국수)·별착면(밀가루와 녹두녹말을 동량으로한 것) 난면(밀가루에 달걀을 섞어 반죽한 칼국수)·차면(메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칼국수) 등이 있다. 이들 국수요리의 국물은 모두 꿩고기 국물을 사용하였다. 이외에 녹두나화와 착면이 있다. 녹두나화는 녹말가루를 물에 풀어 중탕하여 만든 국수를 볶은 참깨즙 국물에 말고, 착면은 녹두 녹말만을 물에 풀어 중탕하여 만든 국수를 오미자국(오미자즙에 꿀을 탄 것)에 띄운 것인데, 이들은 모두 주안상(술상)에 대접한 요리였다.
만두의 경우, 만두피는 메밀가루로 하였으며 만두속은 삶아 으깬 무·양 념한 꿩고기·잣·호도·표고버섯·오이 등으로 만들었다. 만두는 생강즙을 가미한 초간장에 찍어 먹었다. 한편 대만두라는 것이 있어≪해동역사≫권 19 조선연의조에 그 모양과 먹는 법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다. 즉 “잔치 끝 무렵 대만두 한 그릇이 나온다. 대만두 그릇에는 은제의 뚜껑이 덮혀져 있는데 한 대신이 칼로 대만두의 껍질을 배 가르듯이 자르면 그 속에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호도 알만한 소만두가 가득 들어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정교한 국수와 만두 조리법을 통하여 조선 초기의 잔치음식의 격조를 알 수 있다.
떡은 역사가 깊은 토착음식으로 밥문화가 정착되기 이전에는 떡을 상용 식으로 하였다. 밥이 상용된 이후로 떡은 의례용·선물용·별식으로 보다 다 양하고 격조있게 발달하였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나는 떡은 200여 종으로 가장 보편적인 음식임을 알 수 있다.569)≪규곤시의방≫에는 조선 초기의 떡으로 잡과편·밤설기·증편·빈자떡·섭산자 등에 관한 요리법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특별한 떡만을 수록하고 보편적인 것은 생략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잡과편은 찹쌀가루 반죽을 썰어 삶아 곶감·대추·밤·잣을 두들겨 부수어 무친 것이며, 밤설기는 밤가루와 멥쌀가루를 꿀물에 내려 찐 것이다. 석이편은 멥쌀과 찹쌀가루에 석이버섯을 다져 버무린 후 잣가루를 켜켜로 얹혀 찐 것이다. 증편은 좋은 쌀가루를 술로 반죽해 부풀려 찐 것이며, 이 때에 쓰는 술은 별도로 빚어 사용하였다. 한편 빈자떡(빈대떡)은 오늘날은 안주요리이지만 본래는 떡이었다. 거피한 녹두를 갈아서 번철에서 사이에 꿀팥소를 놓고 아래 위의 두 장이 포개지도록 지져 만들었다. 섭산자는 더덕의 쓴맛을 우려내고 두들겨 찹쌀가루를 무친 후 기름에 지져 꿀에 재운 것이다.
한과(조과)는 잔치·제사 등에 쓰는 의례음식이다. 조과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논증하기는 어렵다. 고려시대에는 차와 한과로 차린 다과상으로 빈객을 접대하는 것이 일정한 양식이 되어 성행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대전회통≫형전 금제에 “헌수·혼인·제향 이외에 유밀과를 사용하는 자는 장 60에 처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성행할 수는 없었다고 여겨진다. 이는 유밀과의 재료인 찹쌀·밀가루·꿀·기름 등이 귀한 재료였기 때문이다.≪규곤시의방≫에는 연약과 약과·중박겨[中朴桂]·강정 및 빙사과 등의 조과류 조리법이 기술되어 있다. 이 밖에 다식·박산·앵도 편 등을 만드는 법도 수록되어 있으며 이상 살펴본 떡과 한과의 조리법은 현재에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들이다.
569) | 尹瑞石,≪한국의 음식용어≫(民音社, 1991) , 313∼34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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