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Ⅰ. 학문의 발전3. 역사학1) 민족사의 체계화와 전대사의 정리(2) 고려시대사의 정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1. 성리학의 보급
          • 1) 성리학의 역할
          • 2) 5례·4례의 정비
          • 3) 문묘제도의 정비
          • 4) 대표적인 성리학자들
        • 2. 훈민정음의 창제
          • 2) 훈민정음의 창제
          • 5)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 6) 훈민정음과 관련된 사업들
        • 3. 역사학
          • 1) 민족사의 체계화와 전대사의 정리
            • (1) 전대사의 체계화
            • (2) 고려시대사의 정리
            • (3) 전대사의 체계적 정리
          • 2) 춘추관과 당대사의 편찬
            • (2) 춘추관과 사관
            • (3) 실록의 편찬과 보관
        • 4. 지리지의 편찬과 지도의 제작
          • 1) 지리지의 편찬
          • 2) 국내지도의 제작
            • (3) 조선방역도
          • 3) 세계지도의 제작
            • (1) 조선 전기의 세계지도
            • (2)≪해동제국기≫의 일본 및 유구국지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1. 국가제사
          • 2) 자연신
        • 2. 불교
          • 1) 억불정책과 교단의 존폐
            • (1) 억불정책의 전개
            • (2) 양종과 승과의 폐지
          • 2) 도첩제와 부역승
            • (1) 도첩제의 강화와 폐지
          • 3) 왕실의 불교숭신과 불교행사
            • (1) 숭불의 왕과 그 불사
          • 4) 민간의 불교신앙
            • (3) 불탄일 연등과 수륙재
          • 5) 사찰재산과 승려의 경제활동
          • 6) 당시의 고승들
            • (1) 자초와 기화
            • (2) 세종대의 명승들
            • (3) 세조대의 고승들
        • 3. 도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마.≪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는 기전체≪고려사≫가 편찬된 직후, 이전의 편년체 고려사의 전통을 이어 고려왕조의 역사를 편년체로 정리하여 찬진되었다. 편년체의 역사 편찬을 시도한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이전의≪고려사≫편찬과정에서 편년체의 사서들이 계속 개찬되어 왔으므로 그 편찬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기전체의 역사가 읽기에 매우 불편하였으므로 읽히기 위한 역사로서 편년체의 역사편찬이 필요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문종 원년(1451) 8월에≪고려사≫편찬이 완료되어 왕에게 바치는 자리에서, 김종서는 기전체의≪고려사≫는 열람하기 불편하니 새로이 편년체의 사서를 편찬할 것을 건의하여 승낙을 받았다. 이전 작업의 축적으로 개찬작업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고려사≫가 편찬된 지 5개월 만인 문종 2년에 총 35권으로 이루어진≪고려사절요≫가 김종서 등에 의하여 찬진되었다.245) 그리고≪고려사절요≫는 편찬이 완료된 다음해인 단종 원년(1453) 4월에 甲寅字로 간인되었는데,246) 이 때 찍은 책은 35권 35책으로 장정되었다. 몇 질이 인쇄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54질을 집현전에 보관하였고,247) 네 곳의 史庫와 문헌관계의 관청과 관료에게 배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종 원년 4월에 인쇄된≪고려사절요≫의 廣布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있었다. 즉 그 해 7월 성삼문은 광포를 주장하였고,248) 단종 2년에 이극감이≪고려사≫의 광포를 주장하면서, 김종서가≪고려사≫의 인물에 대한 시비득실을 두려워하여 소량만 인출하여 내부에 두고≪고려사절요≫만을 인출하였음을 비난한 사례에서249) 알 수 있다. 이 책은≪고려사≫와 더불어 고려시대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사서로,250) 비록「節要」라는 명칭이 붙여지기는 하였으나 결코≪고려사≫를 줄인 책이 아니라 서로 보완 관계에 있는 사서이다.

 ≪고려사절요≫가 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편찬된 것은 기왕에 편년체로 된 서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윤회의≪수교고려사≫나 권제의≪고려사전문≫은 비록 내용상의 문제로 유포되지 못하였지만, 두 책 모두 편년체 사서로서≪고려사절요≫를 편찬하는데 기본자료로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세한≪고려사전문≫을 기본자료로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려사절요≫의 기본자료로≪수교고려사≫를 들고 있기도 하나,251) 이러한 견해는 세종 24년(1442)에 권제에 의하여 편찬된≪고려사전문≫을 친왕적인 사서라는 정치적인 면으로 파악한 점과 세조 4년(1458) 왕명에 의해 이를 교정한 것을 성종 13년(1482) 양성지가 간행하기를 청하였다는 점에 주목한데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고려사전문≫을 재간행하자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용이 훨씬 상세하고 많은 자료를 모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고려사절요≫를 편찬한 수사관은 김종서, 정인지, 이선제, 신석조, 신숙주, 김예몽, 양성지, 이예, 金之慶, 金閏福, 이극감, 尹起畎, 朴元貞, 洪若治, 李孝長, 全孝宇, 金勇, 韓瑞鳳, 허후, 박팽년, 유성원, 李季甸, 金孟獻, 金礩, 李翊, 李尹仁, 尹子榮, 金漢啓 등 모두 28명이고, 그 중 7명이 고려사를 편찬한 사람과 다르다.252) 이는 편찬이 완료되기 전에 직책이 바뀌었던 데에 기인하는 것으로 그들은 하위급의 春秋館 記事官이 대부분이었으며, 편찬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이들은 두 사서의 편찬에 계속 참여하였다. 그리고 두사서 편찬에 모두 참여한 사람은 21명253)으로, 정치적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으며, 다만 편찬목적에 따른 사료의 선택이 상이한 방향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두 사서는 내용상 상당한 차이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단≪고려사≫는 修史의 주체가 군주였기 때문에 군주 중심의 경향이 강하고,≪고려사절요≫는 주체가 신료였기 때문에 신료중심의 사서로서의 성격을 띤다는 설도 있다.254)

 ≪고려사절요≫의 범례는 모두 4개항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治亂興亡에 관계있는 기사로서 감계가 될 수 있는 기사는 상세히 기술했으며, 기타는≪고려사≫에 실렸으므로 간략히 처리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모든 자료를 다 실으면 사건의 추이를 이해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되므로 치란흥망과 관계가 없는 기사는 삭제하여 그 요강만을 기록한다는 것과 정치적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편찬한다는 편찬목적을 밝힌 것이다.

 둘째는 편찬원칙을 적은 것으로 왕과 왕실에 관련된 용어는 비록 참유하더라도 이를 직서한다는 직서주의 원칙을 천명하면서, 기사를 싣고 뺀 것을 항목별로 제시하였다. 즉 조회·제사의 평상적인 일은 이를 거행하지 못하였을 때에만 기록한다. 단 임금이 직접 참여한 제사는 기록한다. 임금이 사찰에 행차하거나 보살계를 받고 도량을 연 것은 당시 군주들의 일반적인 행사였기 때문에 번거롭게 다 쓰지 않고 각 왕의 처음 기사만 쓴다. 단 飯僧이 천여 명에 이르러 곡식을 많이 소비한 경우는 반드시 쓴다. 상국의 사신 왕래는 번거롭더라도 반드시 쓴다. 災異의 기사는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쓴다. 왕이 사냥나간 일과 연회를 연 것은 반드시 쓴다. 대신의 임명과 파면 및 어진 선비의 관계진퇴는 상세히 쓰며, 신하들의 상소문 가운데 받아들여져 행하여진 것과 일이 절실한 내용은 상세히 기록한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후대 군주에게 교훈을 주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군주는 조회와 제사를 걸러서는 안된다는 것, 불교신앙을 지나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중국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 天譴이 나타나면 이를 경건히 받아들이라는 것, 유희·오락을 삼가라는 것, 대신과 현신의 대우를 잘하라는 것, 충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군주에게 경계시키려 한 것이다.255)

 셋째는 우왕의 경우 王莽의 예에 따라 기년으로 표시하지 않고 갑자의 간지로 써서 참절한 죄를 바르게 한다는 원칙이다. 실제로≪고려사절요≫에서는 우왕대의 기록에서 기년표시는 간지로 하고 그 아래 辛禑 몇 년으로 작은 글씨로 분주하였다.

 넷째는 공양왕 원년 10월 이전은 비록 창왕이 재위하였으나,≪資治通鑑≫의 원칙을 들어 정월부터 공양왕 원년으로 기술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창왕이 즉위한 해의 기사는 우왕 14년조로 기술되고 다음해는 공양왕 원년으로 기술됨으로써 창왕의 기년은 기록되지 않았다.

 ≪고려사절요≫의 편찬자들이 거의 대부분≪고려사≫를 편찬한 사람들이고 그 편찬시기가 5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므로, 두 사서에 나타나는 역사관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고려사≫가 모든 자료를 자세히 기록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에 반해,≪고려사절요≫는 후대 군주에게 정치에 참조하라는 교훈적 성격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차이를 지적할 수 있다. 이는≪고려사절요≫에서 고려 전시기에 걸쳐 많은 사론을 싣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고려사절요≫에는 사론을 싣는 데 대한 범례가 없으나,≪고려사≫와 마찬가지로 찬자들이 사론을 써넣지 않았다. 그러나≪고려사절요≫는 후대의 군주에게 정치적 교훈을 주려는 목적에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고려왕조의 실록에 수록되었던 당대 史臣의 사론,≪국사≫에 실렸던 이제현의 사론, 정도전·정총 등이≪고려국사≫에 써넣었던 사론 등 총 108편의 사론을 실었다. 이는≪고려사≫에서 34편의 사론을 실은 것에 비하여 대단히 많은 사론을 실은 것으로 고려왕조와 조선 초기의 사학사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려사절요≫가 그 내용에 있어서≪고려사≫보다 일반적으로 소략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고려사≫에서 찾을 수 없는 기록도 있으며, 특히≪고려사≫에서는 한 내용이 세가·지·열전으로 나누어 기술됨으로써 연월에 관한 기록이 많이 누락된 데 비하여,≪고려사절요≫의 모든 기사는 년·월·일의 순으로 기술됨으로써 이러한 점은 보다 상세히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정치적 사건의 추이를 이해하는 데에는≪고려사절요≫가≪고려사≫보다 월등히 좋은 자료가 된다. 따라서≪고려사절요≫는≪고려사≫와 더불어 고려시대에 관한 중요한 사료집이며, 또한 사학사상을 연구하는 사학사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서라고 할 수 있다.

245)≪文宗實錄≫권 12, 문종 2년 2월 갑신.
246) 단종 원년의 갑인자 초판본은 일본 蓬左文庫에 소장되어 있으며, 규장각에도 일부 소장되어 있다.
247)≪端宗實錄≫권 7, 단종 원년 7월 정축.
248) 위와 같음.
249)≪端宗實錄≫권 12, 단종 2년 10월 신묘.
250)≪高麗史節要≫는 성종시대(1470∼1494)에 을해자로 다시 간행되었다. 1932년 조선사편수회에서 규장각본(을해자본)을 대본으로 영인한바 있고, 이는 1960년에 동국문화사에서 다시 영인되었다. 같은 해 일본 학습원 동양문화연구소에서는 봉좌문고본을 영인하였으며 이를 대본으로 다시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 출판한 바 있다. 1968년에는 동국문화사본을 이용하여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본이 나왔다.
251) 韓永愚, 앞의 책(1981), 93쪽.
252) 그 7인은 이계전·김맹헌·김질·이익·이윤인·윤자영·김한계이다.
253)≪高麗史≫편찬자 명단에서 누락된 허후·박팽년·유성원을 포함하였다.
254) 韓永愚, 앞의 책(1981), 83∼134쪽.
255) 이러한 편찬원칙은≪高麗國史≫의 序에 나타난 편찬원칙과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邊太燮,<高麗史·高麗史節要의 纂修凡例>,≪韓國史硏究≫46, 1984, 55∼59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