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Ⅰ. 학문의 발전3. 역사학1) 민족사의 체계화와 전대사의 정리(3) 전대사의 체계적 정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1. 성리학의 보급
          • 1) 성리학의 역할
          • 2) 5례·4례의 정비
          • 3) 문묘제도의 정비
          • 4) 대표적인 성리학자들
        • 2. 훈민정음의 창제
          • 2) 훈민정음의 창제
          • 5)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 6) 훈민정음과 관련된 사업들
        • 3. 역사학
          • 1) 민족사의 체계화와 전대사의 정리
            • (1) 전대사의 체계화
            • (2) 고려시대사의 정리
            • (3) 전대사의 체계적 정리
          • 2) 춘추관과 당대사의 편찬
            • (2) 춘추관과 사관
            • (3) 실록의 편찬과 보관
        • 4. 지리지의 편찬과 지도의 제작
          • 1) 지리지의 편찬
          • 2) 국내지도의 제작
            • (3) 조선방역도
          • 3) 세계지도의 제작
            • (1) 조선 전기의 세계지도
            • (2)≪해동제국기≫의 일본 및 유구국지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1. 국가제사
          • 2) 자연신
        • 2. 불교
          • 1) 억불정책과 교단의 존폐
            • (1) 억불정책의 전개
            • (2) 양종과 승과의 폐지
          • 2) 도첩제와 부역승
            • (1) 도첩제의 강화와 폐지
          • 3) 왕실의 불교숭신과 불교행사
            • (1) 숭불의 왕과 그 불사
          • 4) 민간의 불교신앙
            • (3) 불탄일 연등과 수륙재
          • 5) 사찰재산과 승려의 경제활동
          • 6) 당시의 고승들
            • (1) 자초와 기화
            • (2) 세종대의 명승들
            • (3) 세조대의 고승들
        • 3. 도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가.≪삼국사절요≫

 세조는 4년(1458) 9월에 문신들에게≪동국통감≫의 편찬을 명하였다. 이처럼 사서의 편찬 초기에 서명이 정하여지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이는 세종대에≪資治通鑑綱目≫을 깊이 연구하여≪思政殿訓義本≫을 출판해 낸 것과≪治平要覽≫을 편찬한 데서 나온 중국사의 편찬에 대한 깊은 이해 위에 성립된 것이다.256) 그런데 세조대에 부왕인 세종이≪자치통감강목≫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에 비하여≪자치통감≫체재인≪동국통감≫을 편찬하려 한 이유로는 다음의 두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우리 나라 역사가 통감형식으로 정리된 것이 아직 없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세조의 즉위과정으로 보아 그에게는 역사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강목형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조는 이러한 지적 분위기 속에서 중국의≪자치통감≫에 준하는≪동국통감≫을 수찬하여 우리 나라의 역사를 상고 이래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하였다.

 그 때 세조는 우리 나라의 역사책은 빠진 것이 많고 체계가 잡히지 않았으므로 삼국사와 고려사를 하나의 편년으로 합쳐 편찬하되, 여러 책에서 자료를 보완하라고 명하였다.257) 여기에서 본국의 역사기록에 탈락된 곳이 많으므로 그를 보완하여 보다 충실한 사서로 만들려 했던 것과 단대사가 아닌 상고 이래의 통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뒤 세조 9년 9월에 또 다시≪동국통감≫수찬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명령하였으며,258) 양성지로 하여금 여러 유생을 데리고 편찬하게 하고, 신숙주와 권람은 이를 감수하고, 李坡는 그 출납을 맡도록 명하였다.259)

 세조의≪동국통감≫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260) 편찬이 세조의 뜻에 만족할 만한 정도로 진척되지 않아 세조의 질책을 받기도 하였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편년체 역사를 편찬하는 유신들이 국가정치와 관련된 기사내용을 중시하여 불교측 자료를 배제하려 하였고, 년·월·일이 없는 황당한 설화도 취하지 않으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세조가 고대사를 단군 중심으로 편찬하려 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261)은 신빙하기 어렵다.

 세조 12년 7월 이후에는 북방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이에 관한 노력은 중지된 듯하다. 왜냐하면 이후≪동국통감≫의 편찬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종이 즉위하자 이 사서의 편찬에 참여한 바 있는 崔淑精은 경연에서≪동국통감≫의 편찬을 완결할 것을 건의하였다.262) 예종은 이를 받아들여 편찬을 완수하도록 명하였으나, 곧 예종이 죽음으로써 편찬사업은 다시 중단되었다. 그 후 성종 5년(1474)에 당시 영의정으로 정무를 주도하던 신숙주에게 명하여≪동국통감≫의 편찬을 마치도록 하였다.263) 신숙주는 세조대부터≪동국통감≫의 편찬에 참여한 바 있던 이파로 하여금 이를 완성하게 하여, 성종 7년 12월에≪삼국사절요≫라는 이름으로 바쳤다.264)

 이 책을 바치는 表箋文은 盧思愼·徐居正·李坡의 이름으로 지어졌으며, 서문은 서거정이 썼다. 그러나≪삼국사절요≫의 편찬 주역은 세조 9년≪동국통감≫수찬이 착수될 때부터 계속 이 작업에 종사하였던 이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세조 이래≪동국통감≫이라는 명칭으로 수찬된 것은≪삼국사절요≫로 귀착되고,≪동국통감≫은 다시 성종 14년 10월 서거정의 발의로 수찬이 시작되었다.265)

 ≪삼국사절요≫는 단군조선으로부터 삼국의 멸망까지를 다룬 사서인데 총 14권으로 삼국 이전의 상고사는 외기로서 권수 안에 넣지 않고 별도로 쓰여졌다. 그러므로 서문이나 표문에는 15권으로 되어 있으나,266)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14권으로 편찬되었다. 세조년간에 주조된 乙亥字로 출판되었는데 대체로 성종년간의 수찬 직후에 인출된 것으로 보인다.267)

 ≪삼국사절요≫의 체재는 편년체이다. 원래 세조대에 편찬이 시도된≪동국통감≫은 그 준비작업으로서 모든 자료를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長編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삼국사절요≫의 서문에서 “全史만 있고 장편과 강목이 없어도 안되고, 장편과 강목이 있고 전사가 없어도 또한 안된다. 요컨대 이 세 가지 체재는 모두 구비함이 필요하다”268)고 하여, 기전체의≪삼국사기≫와 강목체의≪동국사략≫에 비견하는 장편체의≪삼국사절요≫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그러나≪삼국사절요≫의 서문에서 언급한 장편은≪자치통감≫을 말하는 것으로 서문의 작자는≪자치통감≫을 편찬하기 위해 많은 양의 사료를 모은 대본으로서의≪자치통감장편≫과≪자치통감≫을 혼동하여 쓰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전사는 기전체를, 장편은 편년체 또는 통감 형식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삼국사절요≫의 책이름이「절요」라는 점에서 장편의 내용을 줄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269) 이는≪고려사절요≫의 이름과 연관시키기 위하여 취해진 이름이고, 원래의 자료가 부족한 한국고대사부분에서는「절요」라 하여도 장편에서 취합되었던 내용이 거의 대부분 그대로 실렸을 것이다. 그리고 편년체 사서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탈락시킨≪동국사략≫이나 정치적 교훈을 위해 사건을 발췌하여 정리한≪동국통감≫과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고 하겠다.

 ≪삼국사절요≫의 편찬원칙에 대하여 살펴보면 조선 초기 권근이≪동국사략≫을 쓰면서 삼국시대의「즉위년칭원법」이 예가 아니라 하여,「유년칭원법」으로 개서하여 서술한 점을 다시 고쳐서 사실대로 직서하였다. 그리고 신라중심적인 편년체계를 수정하여 삼국사를 균등히 보아 삼국을 각각 독립된 나라의 역사로서 대등하게 다루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9년(669) 이후부터는 신라를 정통으로 다루었고, 발해사는 제외시켰다. 한편 연대표시에서 신라와 고구려가 병존하기 시작한 신라 혁거세 21년(B.C. 37)부터 문무왕 9년의 삼국통일까지는 중국·신라·고구려·백제의 年紀를 작은 글자로 2행으로 썼으며,270) 그 후는 신라왕의 연기를 큰 글자로 앞에 쓰고 중국 연기는 부주로 썼다. 모든 연기의 난 위에는 간지를 밝혔다. 이러한 표기방식은 조선시대의 삼국사 연기표시의 관례가 되었다.

 서술내용은≪삼국사기≫·≪삼국유사≫·≪수이전≫등에서 국가정치와 관련이 되는 기록을 모두 옮겨 실었다. 특히≪삼국사기≫본기와 열전·지를 중심으로 서술하였지만, 삼국 상호간이 전쟁기사는 하나의 편년에 의하여 서술함으로써 기사의 중복을 피하였으며, 삼국간의 기사 가운데 착오가 있는 부분을 합리적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삼국사기≫의 지 및 열전의 내용에서 장황한 것은 세주로 처리하였다. 또≪삼국유사≫기이조에 실린 신화나 전설로≪삼국사기≫의 내용과 상이한 것은 부주로 인용하였으며, 다만 단군조선에 대한 신화는 인용하지 않았다. 그 외≪동국사략≫·≪동명왕편≫·≪고려사≫·≪八道地理志≫·≪舊唐書≫등에서 널리 자료를 채록하여 서술함으로써 삼국사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혔다.271) 그러나 더 많이 수록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불교사자료가 보완되지 않은 점은 당시 유신들의 유교적 역사관 때문이었다.

 ≪삼국사절요≫는 단군조선으로부터 삼국시대 말까지 우리 나라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하여 민족사의 체계를 잡은 역사서이며, 세종과 세조대 역사학의 학풍에 따라 객관적인 서술을 하여 조선시대 삼국사 서술의 기본틀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술면에서 볼 때 직서 위주로 서술된 점과 신라에 대한 기술이 객관적이라는 점, 세주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점과 사론을 붙이지 않는 점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사실을 가능한 한 직서하려는 입장과 많은 사료를 채집하려는 점은 역사학에서 본다면 하나의 커다란 진전인 것이다.272)

 자료상으로도≪삼국사기≫에 이용되지 않은 자료를 보완한 점 등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수이전≫은 오늘날 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인용된 자료는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현전하는≪삼국사기≫의 옛 판본 중 완질을 갖춘 것으로서 제일 오래 된 것은 중종 7년(1512)에 경주에서 목판으로 찍은 것이다. 이 판본에는 많은 오자가 있음에 비하여≪삼국사절요≫에서 이용한≪삼국사기≫ 및 그 밖에 자료는 고려시대에 간인된 것이거나 아니면 조선 태조 초년에 찍은 善本을 대본으로 이용한 것이므로,≪삼국사기≫의 오자를 바로잡는데 아주 귀중한 길잡이가 된다. 그리고≪삼국사절요≫는≪동국통감≫편찬에 있어서 고대사의 대본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256) 鄭求福,<三國史節要에 대한 史學史的 考察>(≪歷史敎育≫18, 1975), 90∼92쪽.
257)≪世祖實錄≫권 14, 세조 4년 9월 병신.
258)≪世祖實錄≫권 31, 세조 9년 9월 신유.
259)≪世祖實錄≫권 31, 세조 9년 9월 계미.
260) 鄭求福, 앞의 글(1975b), 94∼99쪽.
261) 韓永愚, 앞의 책(1981), 64쪽.
262)≪睿宗實錄≫권 8, 예종 원년 10월 갑인.
263) 申叔舟,≪保閑齋集≫, 文忠公行狀(姜希孟撰).
264)≪成宗實錄≫권 74, 성종 7년 12월 병술.
265)≪成宗實錄≫권 159, 성종 14년 10월 정묘.
266)≪三國史節要≫, 三國史節要箋(盧思愼撰). 이는 단군조선으로부터 삼한까지의 기사가 외기로 독립되어 있어 이를 따로 권수에 넣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67)≪成宗實錄≫권 138, 성종 13년 2월 임자조에는 梁誠之가 다른 도서와 함께≪三國史節要≫를 네 곳의 사고에 안장할 것을 주청하고 있는 데서 그 이전에 이미 간행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 외 다른 판본은 보이지 않으며 규장각에 있는 성종대 乙亥字本을 1973년 亞細亞文化社에서 영인하였다.
268)≪三國史節要≫, 三國史節要序(徐居正撰).
269) 韓永愚, 앞의 책(1981), 69쪽.
270) 중국의 연기를 삼국의 연기 앞에 서술한 이유를<三國史節要序>에서는 천자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하였으나, 그보다는 연대를 비교하는 기준의 필요성에서 고려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문무왕 9년 이후에는 중국의 연기가 부주로 처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鄭求福, 앞의 글, 1975b, 105쪽).
271) 鄭求福, 위의 글, 110∼120쪽.
272) 이 책의 성격을 원래 세조가 구상한 것과는 다르게, 유교적 명분을 확립하여 사대질서를 옹호하고 신권 중심의 유교적 통치이념을 정립하려는 교훈적 의미가 강하게 반영된 사서로 평가한 설도 있다(韓永愚, 앞의 책, 1981, 66∼72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