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Ⅲ. 사림세력의 활동4. 성리학의 연구와 보급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1. 사림의 훈구정치 비판과 새로운 모색
          • 1) 훈구세력의 비판
        • 2. 과전법의 붕괴와 지주제의 발달
          • 1) 과전법체제의 붕괴
        • 3. 상품의 유통과 공납제의 모순
          • 1) 장시의 발달
          • 2) 공납제의 폐단과 방납
        • 4. 군역제도의 붕괴
          • 2) 갑사·정병·수군 군역의 변질
        • 5. 국제교역의 발달과 마찰
          • 1) 중국·일본 사이의 중개무역
            • (2) 중국과의 무역
            • (3) 일본과의 무역
          • 2) 여진과의 무역
          • 3) 왜변의 발발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1. 사림세력의 성장기반
        • 2. 사림세력의 진출과 사화
        • 3. 사림세력 구성의 특징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1. 도학정치의 추구
        • 2. 향촌질서 재편운동
        • 3. 서원건립활동
        • 4. 성리학의 연구와 보급
        • 5. 경제개혁의 추진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성리학의 연구와 보급

1) 성리서의 간행과 보급

16세기 이래 사림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은 性理學, 특히 朱子性理學을 습득하고 실천하는 주체로서 조선사회에 성리학적 질서를 보편화시킴으로써 사상 및 사회체계에 기본적인 바탕을 제공하였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사림의 성장과정은 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심화과정이었으며 이는 성리학 경전에 대한 註釋書와 理論書, 즉 性理書의 수입과 간행·보급 등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미 고려말부터≪四書集註≫와≪大學衍義≫·≪近思錄≫등 성리서가 성리학자들에 의해 도입되어 보급되었으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널리 퍼지지는 못하였다.615) 조선의 건국세력들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제도정비와 부국강병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성리학의 이론적·철학적 측면에 관심을 덜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성리서가 널리 보급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6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초부터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의 행차, 즉 赴京使行의 책교역(貿書) 활동을 통해≪眞西山讀書記≫·≪朱子成書≫·≪四書衍義≫등의 성리서가 새로이 도입되었으며, 經筵의 강의과목으로 채택된≪대학연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입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신들이 책들을 들여왔던 것은 개인의 해외여행이나 상인들에 의한 사무역이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신들에 의한 초기의 책교역은 말 그대로 책을 사고 파는 무역활동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주로 明에서 오는 明使·勅使에 의한 下賜와 중국에 가는 조선사신들이 받아가지고 오는 回賜로 진행되었으며 그 범위도 제한적이었다.617)

이러한 소극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책교역을 벌이는 시기는 세종대였는데, 유교국가의 기반이 마련되면서 儀禮詳定所와 集賢殿 등을 통한 古制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이 그 주된 요인이었다. 그리하여≪四書大全≫·≪五經大全≫·≪性理大全≫ 등이 세종 원년(1419)·8년·15년 세 차례에 걸쳐 사신을 통해 들어왔다.618)

≪사서대전≫은 朱子를 비롯한 宋·元代 학자들의 4서에 대한 주석을,≪오경대전≫은 5경에 대한 주석을 모은 것이며,≪성리대전≫은 성리학에 대한 학설들을 모은 것이다. 永樂 13년(1415) 명의 한림학사 胡廣 등이 황제의 칙명을 받아 동시에 편찬한 이 책들은 송에서 원에 이르는 시기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내용에서 상호보완적인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들의 도입은 조선사회에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사서대전≫·≪오경대전≫·≪성리대전≫은 도입에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국왕인 세종이 그 필요성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偰循 등 당시 학자들도 간행하여 널리 배포할 것을 청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종 7년(1425)부터 간행사업에 착수한 이래 세종 9년≪성리대전≫이 제일 먼저 간행되었으며 이듬해에는 경상도감사가 진상한 이 책 50부를 2품 이상의 문신과 承政院의 承旨, 집현전 博士 이상의 관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이어≪사서대전≫과≪오경대전≫도 세종 11년 경상·전라·강원도 감영에서 간행이 완료되어 중앙관료나 향교에 나누어주었다. 태종대에 癸未字, 세종대에 甲寅字 등 정교한 銅활자가 주조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서적의 간행과 밀접한 연관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619)

나아가 세종 17년에는 각 지방의 향교나 궁벽한 향촌에까지 이 책들을 배포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즉 지방의 향교에 비치하기를 원하는 자나 개인적으로 소장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는 경우 지방 관아에서 종이를 모아 올려 보내면 중앙의 鑄字所에서 인쇄하여 내려 보내겠다는 것이었다.620) 이후 지방으로의 보급상황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이를 계기로 중앙은 물론 지방의 학자들도 이 책들을 접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성리대전≫은 周敦頤의<太極圖說>과 邵雍의<皇極經世書>를 비롯하여 성리학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었기 때문에 理學의 淵源으로서 공부하는 학자들이 먼저 마땅히 보아야 할 책으로 인식되었으며≪근사록≫과 함께 경연에서 강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성리대전≫에 대한 이해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당시 최고의 학술기관이던 집현전의 학자들도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경연에서 가르칠 사람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621) 이러한 상황은 그 뒤에도 계속되어 성종대에도 반드시 여러 관련서적을 참고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여겨져 弘文館員 가운데 똑똑한 자를 뽑아 미리 공부하여 경연에 대비하게 할 정도였으며 강의를 훌륭하게 한 관원에게는 왕이 선물을 내리기도 하였다.622)

이러한 가운데≪性理群書≫·≪朱文公集≫·≪朱子語類≫ 등이 도입되어 학자들의 성리학 이해에 도움을 주었으나623) 성리서의 도입과 간행은 연산군대에 가서 일시 중단되었다. 연산군은 독서금지령을 내리고 홍문관을 혁파하고 왕실에 소장한 책들까지 불태워버려 많은 책들이 소실되었다. 더욱이 중종 9년(1512) 왕실에 남아 있던 책들을 보관해왔던 尊經閣에 화재가 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624)

그러자 이듬해인 중종 10년 이에 대한 본격적인 대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홍문관은 세종대에 서적의 간행과 보관, 활자의 주조 등이 文治를 빛나게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 全帙이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연산군대를 거치면서 거의 없어졌음을 지적하며, 求書敎旨를 내려 개인집에 있는 책들을 수소문하여 모으고 명에 주청하여 없어진 책들을 구해오며 별도로 都監을 만들어 간행에 힘쓸 것을 청하였다. 아울러≪주문공집≫·≪주자어류≫·≪진서산독서기≫·≪伊洛淵源錄≫처럼 홍문관에 1질밖에 남아 있지 않거나≪二程全書≫처럼 개인에게만 있는 책들은 간행하여 널리 배포하고, 희귀서적은 각 도로 하여금 木刻本을 만들어 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쇄하여 갖도록 청하였다.625)

여기에 대해 중종은 중국에 갔다 오는 자는 서적을 널리 구해 오도록 하고 개인의 경우 없어진 책들을 기증하면 상을 후하게 내릴 것을 명령하였다. 또한 홍문관에서 언급한 희귀서적에 대해서는 큰 道가 卷帙이 많은 서적을, 작은 도가 권질이 적은 서적을 분담하여 간행하도록 하였다.626)

이에 따라 부경사행에 의한 책교역도 다시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그 중심인물은 金安國이었다. ‘己卯士林’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중종 13년(1518)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오면서≪語孟或問≫·≪傳道粹言≫·≪經學理窟≫·≪延平問答≫등 다량의 성리서를 구입해와 중종에게 진상하면서 간행하여 널리 배포할 것을 청하였으며 중종은 이 책들을 간행하도록 하였다.627) 趙光祖를 위시한 기묘사림들이 등장하여 道學政治를 펼치면서 성리학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간 것도 이 시기 성리서의 활발한 수입과 간행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己卯士禍가 일어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위축되고 사신들을 통해 서적들이 간간이 들어올 뿐이었다. 또한 중종 17년에는 禁書인≪大明一統志≫를 중국에 간 사신이 구입하려다가 중국당국에 의해 적발된 사건을 계기로 서적의 수입이 금지되기도 하였다.628)

성리서의 도입과 간행이 다시 활발해지는 것은 중국의 서적 반출 금지가 풀리고 사림이 다시 정계에 진출하는 중종대말경이었다. 이 때에는 서적 구입을 위한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 이루어지는데 중종 자신이 직접 목록을 작성하여 김안국에게 넘기는 열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김안국은 藏書閣과 文武樓에 보관되어 있는 서적들을 조사하여 중국으로부터 구입할 책들의 목록을 작성하였는데≪皇極經世書說≫·≪象山集≫등 經學理書를 중심으로 하여 家訓書·政事書·文學書·筮占書·地志 등 매우 광범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서적의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하고 긴요한 책들을 모으는 계획도 세세히 세워져 시행되었다.629)

한편 서적의 보급과 유통을 위해 지금의 서점이라고 할 수 있는 書肆를 설치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서적을 상품으로 사고 파는 관행이 없었던 상황에서 관의 주도 아래 중국으로부터 책을 수입하고 그 책을 간행하여 보급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없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이 원하는 책을 자기 손에 구입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서사의 설치는 중종 14년 잠깐 제기되었으나 기묘사화로 논의가 무산되었다가 중종 24년 大司諫 魚得江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즉 그는 世家大族은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은 반면 지방의 儒者는 공부에 뜻이 있어도 책이 없어 독서하지 못하고 책값이 비싸 구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서점을 설치하여 책을 싸게 매매토록 하고 가난한 사람은 서점에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청하였다.630)

그의 건의는 당장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 뒤에도 계속 논의되었으며 중종 33년에는 서사를 설치하여 시행하자는 대신들의 요구로 담당 관서로 하여금 구체적인 절목을 마련하라는 왕의 지시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명종 6년(1551)에 서사를 설치하는 법이 시행되어 비로소 일반인들이 서적을 매매할 수 있게 되었다.631) 당시 매매되었던 책 종류와 책값에 대해서는 魚叔權의≪攷事撮要≫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유교경전과≪성리대전≫과 같은 성리서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632) 따라서 서사는 이러한 책들의 보급을 통해 당시 학자들이 성리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서사의 설치는 서적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이미 상당히 증가해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종 38년(1543)≪朱子大全≫이 중국으로부터 처음 들어와 간행되었다. 이 책은 주자의 저술을 모두 모은 문집으로≪주자어류≫와 함께 주자의 학문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전의 성리학 연구는 주로≪성리대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 책은 주자의 설과 다른 학설들도 포함되어 있어 주자성리학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 따라서 주자의 전사상체계를 본격적으로 접할 수 있는≪주자대전≫의 간행은 조선학계에서 성리학 연구가 본궤도에 오르게 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李滉·金麟厚·奇大升 등 당시 대학자들이 이 때 비로소 이 책을 접하고 주자성리학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나갔으며≪朱子書節要≫·≪朱子文錄≫ 등 관련 연구서를 저술하였다.

한편 명종대에도 성리서의 간행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주로 개인에 의해 지방의 서원이나 관청 등에서 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李楨으로 그는 주로 이황과 의논하여≪程氏遺書≫·≪전도수언≫·≪연평문답≫·≪이락연원록≫·≪學庸章句指南≫ 등 기존에 들어와 있던 성리서는 물론 중국에서 새로 구입해온 책들을 간행하였다.633)

이처럼 성리서의 수입과 간행·보급을 통해 사림들은 보다 성리학을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성리학에 대한 이해도 심화시켜 나갔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가 성리학에 대한 다양한 주석서와 이론서를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명종말 선조초에 성리학은 조선사회에서 거의 완전히 이해되는 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615) 都賢喆,<高麗後期 朱子學 收容과 朱子書 普及>(≪東方學志≫77·78·79, 延世大, 1993), 198∼213쪽.
616) 韓永愚,≪鄭道傳思想의 硏究≫(改正版) (서울大 出版部, 1983), 9∼13쪽.
617) 李存熙,<朝鮮前期의 對明 書冊貿易>(≪震檀學報≫44, 1980), 62∼63쪽.

李元淳,<赴京使行의 文化史的 意義>(≪史學硏究≫36, 1983), 136∼139쪽.
618)≪世宗實錄≫권 6, 세종 원년 12월 정축·권 34, 세종 8년 11월 계축 및 권 62, 세종 15년 12월 임술.
619) 鄭亨愚,<『五經·四書大全』의 輸入 및 그 刊板 廣布>(≪東方學志≫63, 1989), 18∼26쪽.
620)≪世宗實錄≫권 70, 세종 17년 10월 계해.
621)≪世宗實錄≫권 39, 세종 10년 3월 갑신 및 권 55, 세종 14년 2월 을미.
622)≪成宗實錄≫권 122, 성종 11년 10월 병인 및 권 231, 성종 20년 8월 기유.
623)≪世宗實錄≫권 64, 세종 16년 6월 을축.

≪文宗實錄≫권 8, 문종 원년 7월 경신.

≪成宗實錄≫권 139, 성종 13년 3월 병자.
624)≪燕山君日記≫권 56, 연산군 10년 12월 임오.

≪中宗實錄≫권 21, 중종 9년 12월 경인·신묘.
625)≪中宗實錄≫권 23, 중종 10년 11월 갑신.
626)≪中宗實錄≫권 23, 중종 10년 11월 병술.
627)≪中宗實錄≫권 34, 중종 13년 11월 무오·신유.
628) 吳性鐘,<朝鮮中期 陽明學의 辨斥과 受容>(≪歷史敎育≫46, 1989), 65∼70쪽.
629)≪中宗實錄≫권 98, 중종 37년 5월 정해 및 권 99, 중종 37년 10월 무인.
630)≪中宗實錄≫권 36, 중종 14년 7월 갑오 및 권 65, 중종 24년 5월 기미.
631)≪中宗實錄≫권 87, 중종 33년 3월 을유·갑신.

≪明宗實錄≫권 11, 명종 6년 5월 갑인.
632) 魚叔權,≪攷事撮要≫권 하, 書冊市准.

李存熙, 앞의 글, 74∼75쪽.
633) 金恒洙,<16세기 士林의 性理學 理解-書籍의 刊行·編纂을 중심으로->(≪韓國史論≫7, 서울大, 1981), 159∼16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