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붕당정치의 운영형태
1) 붕당정치의 전개와 붕당론
붕당은 중국 고전에서부터 쓰이던 용어로서, 同門·同師의 벗을 칭하는 ‘朋’과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모인 집단을 의미하는 ‘黨’의 합성어이다. 초기에는 벗들의 모임 또는 조직이란 일반적인 개념이었으나, 후에는 당의 개념이 강화되어 동지가 결합하여 당외의 사람을 배척하는 단체로 개념화되면서 배타적이고 투쟁적인 의미가 널리 관용화되었다.0179) 그러나 송대에 이르러 范仲淹·歐陽修·朱熹 등에서와 같이 긍정적인 주장도 제기되었다.0180)
범중엄은 “군자·소인이 일찍이 당을 이루지 않은 적이 없다”고 붕당 존재의 불가피성을 제시하였고, 구양수는 이것을 발전시켜 朋黨論을 제시했다. 구양수는 소인의 당인 ‘僞朋’과 군자의 당인 ‘眞朋’을 구분하고, 진붕을 써야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붕당론을 주장했다. 주희는 “붕당의 해는 縉紳에 그칠 뿐이지만 전에 붕당을 미워하여 그것을 없애려 했던 사람들은 종종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고 하여 붕당망국론을 부정하였다. 이어서 붕당 내에 군자와 소인이 함께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이를 보다 철저히 변별하여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배척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군자가 스스로 붕당을 이루고 임금을 끌어들여 그 당에 속하게 해야 한다는 引君爲黨說을 주장하였다.
붕당정치의 개념은 “복수 붕당의 공존(朋黨共存)을 특색으로 하며, 학파에 근거를 두고 형성된 각 붕당 사이의 公論에 입각한 상호 비판과 견제를 원리로 하는 정치운영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시기는 선조 8년(1575)경 붕당이 성립된 이후부터 일당전제화가 시작되는 숙종 6년의 庚申換局에 이르기까지 약 100여 년간이 될 것이다.
조선에서의 붕당론은 정치운영의 변화나 권력 집단의 성격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시기별로는 16세기 사림의 정계 진출 이전과 그 이후, 붕당의 성립기, 붕당정치의 전개기, 환국정치기, 탕평정치기의 붕당론이 달랐다. 또한 왕의 입장과 신료들의 입장, 각 붕당의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른 붕당론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붕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과 붕당에 대한 긍정적 시각에서 붕당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 폐단의 시정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