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형극
人形劇으로는 꼭두각시놀이와 만석중놀이(忘釋僧戱)가 있다.
꼭두각시놀이는 일명 朴僉加劇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남사당패에 의해서 연희되었다. 인형극의 기원연대를 고려시대로 잡고 있으나 그 변천사를 문헌으로 고증할 자료가 없다. 다만 나무에 풀잎으로 머린 따고 옷을 입혀 각시라 부르는 인형을 만든 기록이≪東國歲時記≫에 있다.708)
포장을 치고 포장 위로 인형이 나와 있고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은 포장 뒤에 숨어 있다. 무대 앞에 반주하는 잽이가 앉아 반주도 하고 대화를 한다. 재담이 섞이고 해학적인 내용으로 관중을 웃기고 연희효과를 높인다.
꼭두각시놀이의 등장인물은 박첨지·꼭두각시·홍동지·소박첨지·중·소무당·평안감사·관속·동방삭(석)이(東方朔)·표생원·돌모리(덜머리)집·강계포수의 12인과 동물에는 개·이시미·매가 등장한다.
꼭두각시놀이는 조종자의 마음에 따라 시간에 신축성이 있고 가감이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다.709)
제1막;재산을 파산당한 박첨지는 늙은 몸으로 팔도유람의 길을 떠나 방방곡곡을 떠다니다가 어느날 날이 저물어 주막에 머물게 되었다. 그 때에 마침 남녀 사당의 곡예장에서 풍악소리가 요란하자 풍류를 즐기는 노인은 피곤함도 잊고 곡예장에 나가 재담을 하고 노래와 춤을 춘다. 제2막;뒷 절에서 중 2인이 소무당 두 사람과 풍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논다. 박첨지가 보고 중을 꾸짖고 자기도 한바탕 춤을 추다 보니 소무당은 바로 자기의 질녀였다. 그래서 기운이 센 홍동지를 불러 들이니 홍동지는 옷을 벗고 벌거숭이로 등장하여 중들을 꾸짖고 소무당을 쫓아 보내고 퇴장한다. 제3막;박첨지는 의지할 곳이 없어 사돈인 최영로집에 신세를 지고 있다. 때마침 농촌에서 일이 바쁜 가을이라 마당에 벼를 널고 새를 쫓느라 야단이다. 어느날 최영로는 박첨지 보고 오조밭에 가서 새를 쫓으라고 한다. 그 때에 용강의 이시미가 배가 고파서 새 쫓으러 나온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먹는 판이라 모두 벌벌떨었다. 그러나 박첨지는 안 갈 수도 없어 들에 갔다가 이시미한테 머리를 물리게 되었다. 박첨지가 사람 살리라고 큰소리를 지르니 홍동지가 듣고 나와 박첨지의 동생인 소박첨지와 협력해서 이시미를 죽이고 박첨지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제4막;동방삭이 곡예장에 나와서 노래하고 춤을 춘 다음 남해지방에 사는 표생원이 첩 덜머리집을 데리고 거처를 알 수 없는 본처를 찾으려고 강원도 금강산까지 갔다가 오는 길이라고 말을 한다. 제5만;본처를 찾으려고 방방곡곡을 헤맸으나 찾지 못한 표생원이 첩과 함께 등장한다. 이 곳에서 우연히 본처를 만난 표생원은 매우 기뻤으나 첩을 거느리고 있어 삼각관계가 생겨 처와 첩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본처는 재산분배를 요구한다. 이 때 박첨지가 나와서 재산을 분배하는데, 좋은 것은 모두 첩에게 주고 나쁜 것은 본처에게 준다. 그래서 표생원은 본처와 이별하고 서로 헤어진다. 제6막;신임 평양감사는 평양에 도착하자, 먼저 강계포수를 불러 꿩사냥에 열중한다. 제7막;평양감사의 어머니가 사망해서 상여가 나간다. 그러나 상주인 평안감사는 별로 슬퍼하지도 않고 도리어 장타령·양산도 등 노래를 부른다. 향도꾼의 한 사람이 발병이 나자 홍동지가 벌거벗은 몸으로 상여를 메는 불손한 행동을 한다. 제8막;평안감사의 어머니가 죽은 뒤 백일 만에 불공을 드리려고 법당을 짓고 축원을 한다.
꼭두각시놀이에서는 혼탁한 인간관계와 불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한 남성이 두 여인을 거느려 처와 첩 사이에서 질투와 갈등의 삼각관계가 생기고 재산분배를 하는데 본처는 못쓸 것만 주고 첩에게는 값진 것을 주는 것은 연극이라고는 하지만 남성의 불성실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또 중이 불도에는 마음이 없고 소무당과 놀아나는 것은 파계승의 이야기이며 홍동지가 벌거벗고 상여를 메는 일은 양반과 법도에 대한 모독이다. 평안감사가 상주로서 근신해야 함에도 장타령·양산도를 노래함은 양반의 비도덕성을 풍자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법당을 지어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속계의 혼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니 불교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꼭두각시놀이가 서민사회에서 형성되고 서민들을 위해서 놀이되는 과정에서 양반이나 승려를 조롱하는 대목이 설정되어 관중의 환영을 받았다.
극은 관람자에 흥미가 있어야 한다. 웃을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하고,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극적 요소를 첨가시키는데 꼭두각시놀이에서는 서민을 웃기고 감동을 주는데 성공했다.
인형극의 하나로 만석중놀이가 있다. 기록은 남아 있으나 연희자가 단절되어 지금은 볼 수 없다.≪동국세시기≫에서는 4월 초파일 밤에 燃燈을 하는데 이 때이 괴뢰를 만들어 쿨에 달아매서 논다고 하였다.710) 만석중놀이를 초파일에 놀았고 연희방법이 나무인형인 만석중을 끈으로 꾀서 조종하고 있어 동일한 놀이라고 생각된다.
만석중은 曼碩僧舞라고 했고 만석승을 고려승려의 이름이라고 했으므로 만석중놀이는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711) 또 다른 설에는 松都명기 黃眞伊를 사랑한 知足禪師가 하루 아침에 도가 무너지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지족을 풍자하기 위하여 발생했다는 설도 있다.
연등하는 풍속은 고려시대부터 있었고712) 원래 정월 보름에 했으나 공민왕 때에 4월 초파일에 하게 되었다. 만석중놀이의 기록이≪경도잡지≫에 비로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형성되었거나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후기에 왕성해져서 초파일놀이로 채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만석중놀이는 무언극이다. 꼭두각시놀이에서는 인형 조종자와 잽이 사이에 대화가 있지만 만석중놀이에서는 대사가 전연 없다. 막 뒤에 인형 조종자가 숨어서 끈으로 인형을 조종하고 잽이들의 반주악에 맞추어 인형이 움직였다. 대사가 없으면 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우나 인형의 움직임으로 짐작할 수 있으니 상상력이 풍부했다.
만석중놀이에 등장하는 인형은 만석중·노루·사슴·용·잉어뿐이다. 각 인형의 구성과 역할은 다음과 같다.713)
만석중;사람 모양의 나무인형이다. 관중을 향해서 서고 인형 뒤에 조종하는 사람이 숨어서 끄나풀을 잡아당겨서 움직이게 한다. 가슴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 구멍을 통해 끈으로 팔과 다리를 각각 매고 있다. 인형 뒤에서 끈을 잡아당기면 두팔은 가슴을 치고, 두 발은 머리를 친다. 나무인형이기 때문에 나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얼굴을 바가지로 만들면 그 소리가 더욱 요란하다. 만석중은 연극 처음부터 끝까지 뚝딱거리고 요란하게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노루와 사슴:노루와 사슴도 끈으로 조종한다. 끈을 잡아당기면 머리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어 짐승이 움직이는 동작을 한다. 노루와 사슴은 마주 서 있으나 실이 엉킬 수 있어 교묘하게 조종하고, 또 엉켜도 서로 싸우는 것 같아 비극적 효과가 있다. 용과 잉어;용과 잉어는 종이로 만들고 燈을 가운데 놓고 좌우에 자리 잡는다. 실끈으로 조종하기에 따라 용과 잉어가 노는 듯이 움직이고, 용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가운데 놓은 등은 용쪽으로 갔다 잉어쪽으로 갔다 한다. 이 때에 등은 如意珠을 상징한다. 여의주를 서로 입에 물려는 동작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