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리학 발달의 배경
조선 초기의 지배층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문명을 최상의 것으로 여겨, 유학과 관련된 중국의 문물수입에는 열정적이었으나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육성하는 문제나 중국 이외의 나라들로부터 문물을 수입하는 일에는 관심이 적었다. 이러한 가운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게 되었으며 왜란 당시 구원병을 파견했던 명이 만주족에게 멸망당하자 전통적으로 慕華思想에 빠져 있던 조선의 지배층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이 때 지배층의 대부분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용납하지 않고 우리 민족이 모처럼 얻은 독자적 문화창조의 기회도 포기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17세기부터 대륙에서 불어온 새로운 바람, 즉 서양의 과학사상과 청조의 학풍이 유입되어 일부 지식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학풍은 기성의 정계에서 소외된 소수의 사대부와 평민출신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그쳤으나 점차 틀이 잡혀 조선 후기의 학문을 상징하는 실학으로 승화되었다. 이 새로운 학풍에서 地理學은 국토재건의 기초가 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학문인 동시에 새로운 우주관에 입각한 우리 나라의 위치 파악의 기초가 되는 학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