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국토의 재발견
지리학은 국토에 관한 정보를 바탕으로 성립되므로 이 학문이 발달하려면 마땅히 국민의 지적 호기심이 강해야 하고, 각종 정보의 수집이 활발해야 하며, 또 그것을 분석·정리할 만한 이론이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데 조선 초기 이래 조정에서 상업을 억제하였으므로 지역간의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였다. 또한 정부에서는 관광이나 종교적인 巡禮旅行 등을 불필요한 인구이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지리학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조 중반의 정체된 분위기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전란중 온 백성들이 피난처를 전전하는 민족의 대이동에 참여하게 되었던 바 7년전쟁 동안 유랑생활을 통하여 백성들은 각 지방의 자연환경·교통로 등 지리적 정보에 접하고 우리 국토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과거에는 지배층만이 독점했던 지리적 정보가 대중화됨에 따라 백성들 스스로 미래의 전란을 피할 수 있는 곳, 혼란한 세상을 피해 은거할 만한 곳, 교역을 통해 이익을 남길 수 있는 품목과 교역로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미증유의 전란이 몰고 온 민족의 대이동은 결과적으로 경험을 통한 올바른 국토의 인식과 지리적 관심의 증대를 낳았다. 그리고 그 지식은 국토의 재건과 관방정책 수립의 기초로서 뿐 아니라 實事求是의 학문으로서의 지리학의 토대구축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