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계통지리학
조선 후기 지리학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계통지리학의 발달이다. 이 분야는 기존의 지리가 잡다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던 것과 달리 역사지리·농업지리·교통지리 등 특수한 내용만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이다.
역사지리분야의 연구로는 韓百謙의≪東國地理誌≫, 安鼎福의≪東史綱目≫ 地理志, 丁若鏞의≪我邦疆域考≫등을 들 수 있다.≪동국지리지≫는 왜란 후에 편찬된 최초의 계통지리서로서 역사상의 영토변천과 천도의 과정, 고지명, 古戰場의 위치, 전략요지의 특성 등을 문헌고증과 답사의 방법으로 연구한 것이다.532)
≪동사강목≫지리지는 고대국가의 영토, 주요 산천의 위치 등을 고증하는 동시에 요동지방 상실의 요인과 배경을 분석하고 있다.533) 정약용의≪아방강역고≫역시 국경과 영토의 변천과정을 고증한 역사지리서로서 저자의 집필의도는 왜란으로 피폐한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들에게 국토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534) 한말에 오면 선각자 張志淵은≪아방강역고≫의 내용이 당시 학생들의 애국심 고취에 적합하다고 믿어 이를≪大韓疆域考≫저술의 기초로 삼았었다.535)
교통분야의 연구는 조선 후기의 지방상업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李瀷·柳馨遠·李重煥·朴趾源·丁若鏞·朴齊家·申景濬 등 교통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들은 도로의 개발과 수레의 이용, 내륙수로와 항만개발의 필요성 등을 역설하였는데, 그 이유는 교통의 발달이 국가의 부강은 물론 지역통합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나라는 산이 많지만 도로개발에 힘쓰면 어느 지방에서나 수레를 사용할 수 있다. 둘째, 왜구의 출몰로 漕運路가 막힐 것에 대비하여 육로의 개발이 필요하다. 셋째, 여러 가지의 교통수단 가운데 배가 가장 운송비가 저렴하고 그 다음은 수레이므로 수상교통을 발달시켜야 한다. 넷째, 항만을 개발하여 외국과 직접 교역함으로써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동시에 서양의 문물을 수입할 것을 촉구하였다는 내용 등이다.536)
신경준은 교통문제를 가장 심도있게 다룬 학자로서 그는 “도로는 경제발전과 지역통합에 큰 역할을 하니 정사에서 중요시해야 할 과제는 治道”537)라고 하였다. 교통로가 잘 정비되고 물자유통이 원활해지면 원거리 교역체계가 형성되고 교통요지에는 상업취락이 발달한다. 유형원은 이러한 취락들을 개발하는 案(站店頃)을 제시하였으며,538) 柳壽垣은 이러한 취락들의 계층화에 따라 지방상권, 대지역상권, 나아가서 전국적 단일상권의 발달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539)
농업은 조선시대 국가경제의 근간이었던 만큼 이 분야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성과는 괄목할 만하였다. 그런데 농업은 지형·기후·농산물의 유통 등 지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농업의 발달이 지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지리적 관점에서 볼 때 농업분야의 연구는 경지개발·토지이용·농업경영 등 세 분야로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경지개발은 산록사면과 저습지를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그런데 과도한 산지개간은 삼림파괴에 따른 풍수해와 가뭄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는 산지보다 저습지를 주요 개간대상으로 삼았다.
농업경영분야는 농민의 복지와 직결되는 사항이므로 유형원·박지원·정약용·홍만선 등 다수의 실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유형원은 효율적 토지이용대책을 위한 방안으로 토지의 비옥도·수리조건·지형조건 등을 기준으로 한 토지등급의 합리화와 구획정리를 제시하였다.540) 그 밖의 실학자들은 원예농법을 통한 집약적 토지이용과 농산물 유통체계의 합리화를 통한 近郊農民의 소득증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은 한양 근교의 농민들이 도성으로부터 비료를 공급받으면서 출하시기가 다른 각종 과채류를 재배하여 도성에 출하함으로써 높은 수입을 올리는 점에 착안하여, 이러한 영농기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킬 것을 강조하였다.541)
532) | 尹熙勉,<韓百謙의 學問과 東國地理志 著述動機>(≪震檀學報≫63, 1987), 16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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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 | 姜世求,<順庵 安鼎福의『東史綱目』「地理考」에 관한 考察>(≪歷史學報≫112, 1986), 61∼65쪽. |
534) | 千寬宇,<韓國實學思想史>(≪韓國文化史大系≫Ⅵ, 高麗大 民族文化硏究所, 1970), 1033∼1035쪽. |
535) | 南相駿, 앞의 책, 20∼21쪽. |
536) | 李 瀷,≪星湖僿說≫권 13, 人事門 驢輦. 朴齊家,≪北學議≫(李翼成 譯, 한길사, 1992), 171∼175쪽. 柳馨遠,≪磻溪隨錄≫권 25, 續編, 道路 橋梁. 李重煥,≪擇里志≫,卜居總論 生利. |
537) | 申景濬,≪道路考≫序文. |
538) | 柳馨遠,≪磻溪隨錄≫권 1, 田制 상, 分田定稅節目 站店. |
539) | 劉元東,≪韓國實學槪論≫(正音文化社, 1984), 20쪽. |
540) | 柳馨遠,≪磻溪隨錄≫권 1, 田制 상, 分田定稅節目. |
541) | 朴趾源,≪燕巖集≫별집 권 8, 放璚閣外傳. 丁若鏞,≪經世遺表≫권 5, 地官修制 田制 3;권 8, 地官修制 田制 11 井田議 3. 洪萬選,≪山林經濟≫권 1, 治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