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해방 후 한국 역사학계가 가장 열심히 연구해 온 분야의 하나가 實學이다. 17세기 이후 종래의 성리학적 단일체제에 대한 반작용을 겸하여 새로운 학문경향으로 성장해 온 실학의 한 가지 특징은 바로 서양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세계관에 눈떴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실학자들은 대체로 서양선교사들이 중국에 전해준 근대 서양의 과학기술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또 그것을 배우려는 노력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나라 역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경향이었다. 그런 뜻에서 한국사에서 실학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594) 그러면 과연 실학은 우리 나라의 역사를 크게 방향 전환시킬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인가. 흔히 실학자들의 노력은 높이 평가되는 수가 많다. 근대적 사상이 싹트고, 또 근대적 경제사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실학의 역사적 위치를 높이 평가하는 수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조금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 보여준 노력은 특히 이웃 일본의 같은 시기의 서학 수용과정과 비교해 볼 때, 그 한계성을 절실하게 노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학은 당시 동아시아 나라들이 경험하기 시작한 그 단계에서의 국제화과정을 조선에서 반영하는 역사적 조짐이었다. 실학자로 분류되는 여러 학자들을 통해 굳게 닫쳐 있던 조선왕조의 사상적 문은 아주 조금 열리기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서양 과학기술에 어떻게 관심을 가졌고, 또 얼마나 그것을 받아들이려 힘썼던가를 이익에서 시작하여 홍대용·박제가·정약용을 거쳐 19세기 중반의 마지막 실학자 최한기까지 특징적 현상을 지적해 보자. 그리고 마치 이런 전통을 계승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고종 원년(1864) 실권을 잡은 대원군 李昰應이 어떻게 서양 과학기술에 반응했던가도 아울러 살펴보자.
실학이 그 내용 속에 근대 서양과학의 영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조선의 실학이 같은 시기의 중국이나 일본의 새 학풍보다 더 풍부한 서구과학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본과 중국의 당대 학풍에 비하자면 조선의 실학이 담고 있던 과학의 내용은 훨씬 빈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실학 속의 과학의 비중은 상당하다. 특히 중국 청대 실학 속의 과학의 비중보다는 상대적으로는 오히려 더 무거웠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실학사에서 과학사를 뺄 수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최초로 한국사상 과학사적 전개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낸 洪以燮은 그의≪朝鮮科學史≫에서 조선 후기의 과학사를 서구과학의 수입으로 특징짓고 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을 찾아가 서구과학을 배워 오던 실학자들의 여행길을 “조선 근대 과학사상에 있어 동트는 새벽녘의 하얀 모래길”로 비유하고 있다.595) 그만큼 근대 서양과학의 수용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형성에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사의 실학은 그 시작이 서양과학에서 비롯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왜란과 호란을 거치고 난 조선 지식층 사이에 17세기 후반부터 자연스럽게 새로운 지적 몸부림이 일기 시작했고, 그것이 마침 새로 들어오기 시작한 서구사상에 자극받았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거의 2세기 동안 지속된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반작용 역시 새로운 사조의 등장을 재촉해 준 요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느 의미에서는 한국실학사에서 서구과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 독자적 중요성보다는 그것이 실학의 존재 이유를 보강해 주었다는 측면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사에서 실학자로 분류되는 학자들의 수는 아주 많다. 그런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학자들을 들면 그들은 거의 모두가 서양 근대과학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공통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역사가들의 기준에 따라 한국사에서의 실학이란 정의는 그 범위를 조금씩 달리할 수 있지만, 그 모두가 공인할 정도로 대표적 실학사상가들은 대개 과학의 문제에 일정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실학에서 근대 서양과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름하기 위해서는 두드러진 실학사상가 몇 명의 경우를 들어 그들이 서양과학을 어떻게 수용했고, 또 그것이 그들의 사상 형성과정에 어떤 몫을 했던가를 생각해 보는 일에서 시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연구되어 있는 대표적인 실학사상가들로 과학사에서도 뺄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 대표적 학자들로는 이익·홍대용·박제가·정약용·최한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적지 않은 저작을 후세에 남겨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작품 속에 상당한 서양 근대과학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말고도 특히 조선시대에 중국에 다녀온 많은 학자들은 중국을 방문하는 동안 그 곳에 살고 있는 서양선교사들을 찾아가는 등 여러 가지로 서양과학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들 燕行使들의 서양과학에 대한 관심 역시 한 가지 흥미있는 과학사의 연구분야가 될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 비교적 이름 없는 燕行使 일반을 다루기보다는 앞에 든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과학사상에 주목하면서 실학 속의 서양과학의 내용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