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4. 과학과 기술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3) 경학의 심화
          • 4) 의리론의 전개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5) 국가적 활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2) 학술활동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2) 실학사상의 전개
            • (2) 정치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2) 언어학
            • (3) 근대국어의 변화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2) 가사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2) 국문소설
        • 2. 미술
          • 1) 회화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2) 서예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목칠공예
          • 5) 건축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2) 기악의 발전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3) 민속무
          • 2) 체육
            • (1) 편사
          • 3) 연극
            • (1) 산대나희
            • (4) 민속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역법과 시법-시헌력 도입

 천문기구들의 제작이 활성화되었던 숙종시기 이후는 또한 중국에서 새로운 역법이 자리잡기 시작하는 전환기였다. 서양선교사들이 주동이 되어 서양식 천문학을 참고하여 새로 만들어 내는 신법천문역산학이 더 정확한 천체운동을 예보해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명나라 말기에 활약한 선교사 아담 샬은 조선의 소현세자와도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양천문학을 중국에 도입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가 주동이 되어 만든 신법서양역법은 명나라에서 시행되지 못하고, 새로 증원을 차지한 청나라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時憲曆을 채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선의 지식층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미 원나라 때의 授時曆을 바탕으로 세종 때 서울에서 맞도록 수정하여 사용하던 七政算이 어긋나기 시작하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신법 서양식역법인 시헌력을 채용하자는 논의는 김육에 의해 인조 22년(1644)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효종 4년(1653)에 조선왕조는 시헌력의 채택을 선언했다. 그 사이에 봉림대군을 따라가 중국에 있었던 韓興一이 여러 가지 자료를 구득해 가져왔고, 인조 24년에는 김육이 중국에 갈 때 동행한 역관을 시켜 시헌역법을 배워 오려 했으나, 중국이 이를 비밀로 감춰 두어 欽天監에 접근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결국 다시 책 등을 구입해 돌아와서 관상감의 천문학자 金尙范을 시켜 연구하게 하였고, 효종 2년에는 김상범에게 많은 뇌물을 가지고 중국에 다시 들어가 그 비밀을 알아내도록 했다. 마침내 2년 뒤에는 겨우 시헌력을 채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서양식 천문체계에 대한 이해에는 그 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이 확실하다. 시헌력을 채택한 때까지도 아직 행성운동의 계산법을 확실하게 알아내지 못했으므로 효종 5년에는 다시 김상범을 중국에 보냈다. 하지만 그가 도중에 객사하는 바람에 이 노력은 다시 중단되었다가 숙종 24년(1698)에서야 겨우 5행성의 계산이 시헌법에 따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관상감 천문학자 許遠의 노력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계산과 중국의 계산 결과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어서 숙종 31년 허원을 중국에 보내 필요한 자료를 사들이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年根의 계산방법은 완전히 체득하지 못하여, 중국의 전문가 何君錫에게 자료를 얻어 온 기록도 남아 있다. 또 하군석이 죽기 전에 그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논의에 따라 다시 허원을 중국에 파견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영조 원년부터는 새로이 수정한 時憲七政法을 시행했다.

 중국에서 서양선교사들이 만들어 낸 서양식 천문학지식을 이용한 동양식 역법인 시헌력은 인조 22년 그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한 이래 거의 1세기 만인 영조 원년에서야 완전히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바로 이 기간이 조선 후기 천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천문학체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조선정부는 여러 차례 천문관을 중국에 파견하여 책과 자료를 얻어 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바로 이 시기에 조선에서는 갖가지 천문기구들이 세종 때의 그것대로 재현하는 것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숙종 39년 청나라의 사신 何國柱가 와서 象限大儀를 사용하여 서울의 종로에서 서울 北極出地를 측량했는데, 그 값을 37도 39분 15초로 얻었다고≪서운관지≫에는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증보문헌비고≫는 그 중국학자 이름을 穆克登이라고 밝히고 있어, 그 이름이 다르다. 그러나 이름이 누구였건 간에 중국천문학자가 와서 북극출지 또는 北極高度 즉 오늘의 개념으로는 緯度를 실측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라 하겠다. 또 정조 16년(1792)에는 각 도와 주군의 북극고도를 측량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시기에는 시헌력의 도입과 함께 서양식 각도표시법과 시간측정법이 자리잡게 되었음을 이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서울의 북극고도 또는 북극출지를 표시한 값은 이미 원둘레를 360도 기준으로 한 값을 가리킨다. 조선 초·중기 이래 서울의 북극고도가「38도 이상」으로 표시되었는데, 그것은 원둘레가 365¼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헌력과 함께 서양식 각도의 개념이 자리잡으면서 숙종 39년의 하국주의 측량값은 37도 반 정도로 나타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와 함께 각도도 원둘레가 365¼도였던 전통적 각도표시법에서 서양식으로 360도 원주로 바뀌어 있었다.

 당연히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시간측정 단위도 바뀌었다. 즉 전통적으로는 하루를 12시 100각으로 나누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각도 개념의 변화와 함께 시간 기준도 바뀌어 100각법이 96각법으로 바뀐 것이다. 12支를 이용하여 하루를 12시로 나누는 방식은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하루를 100각으로 나누던 방식은 사라져 96각이 그에 대신하게 되었고, 따라서 1시간은 8각이 되어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전통시대의 1시간을 다시 2시간으로 나누어 하루를 24시간으로 쓰고 있으니까, 우리의 1시간은 4각이 된다.

 같은 시기에 또한 많은 천문관련의 서적들이 나왔다. 숙종 35년 관상감의 천문학교수 崔天壁은≪天東象緯考≫를 완성하여 고려왕조 475년 동안에 있었던 여러 가지 재이를 분류하여 기록해 놓고 그 점성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金益廉의≪歷代妖星錄≫은 중국의 혜성기록으로 춘추시대 노나라 문공 14년부터 명나라 萬曆 5년(선조 10:1577)까지의 기록을 모은 것으로 당시 점성술적인 관심이 잘 나타나 있다.

 시헌력을 도입하기 위해 여러 차례 중국을 다녀온 허원은 중국의 천문기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기록한 책을 국내에서 간행했는데, 그것이 숙종 10년에 간행된≪儀象志≫(13책)이다. 그 가운데 2책이 그림으로 당시 중국에서 사용되던 천문기구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 허원은≪細草類彙≫를 숙종 36년에 간행했는데, 이것은 그의 시헌력에 관한 연구결과를 소개한 책이다. 머리말에 밝힌 것처럼 그는 시헌력을 배워 오려다가 객사한 김상범의 뒤를 이어 숙종 31년과 34년 두 차례 중국에 가서 중국의 천문학자 하군석을 만나며 배운 결과를 정리하여 이 책을 낸다고 되어 있다. 조선왕조는 서양식 시헌력을 도입하는데 60년 이상을 걸린 것으로 되어 있다.

 서운관 천문학자였던 成周悳(1759∼?)은 여러 가지 책을 후세에 남겼는데,≪國朝曆象考≫(4권 2책)는 정조 19년에 徐浩修(1736∼1799)와 金泳(1721∼?) 등이 함께 펴낸 책으로「한국천문학사」라 할 수 있으며 역법연혁·북극고도·동서편도, 경루 등 5부로 나누어 서술한 책이다. 성주덕은 또한 순조 18년(1818)≪서운관지≫를 완성했다. 이 책은 서운관의 역사와 관련자료를 정리해 놓은 책으로, 조선시대의 관상감(서운관)의 역사를 아는 것은 물론 서운관의 조직과 구성, 온갖 규칙과 운영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8세기 후반 관상감의 뛰어난 천문학자였던 것으로 보이는 김영은 성주덕과 함께≪국조역상고≫의 편찬에도 가담했는데, 그 밖에도≪新法漏籌通義≫를 완성했다.

 19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유명한 천문학자·수학자이며 고위관리였던 南秉哲(1817∼1863), 남병길 형제는 둘 다 천문관계 책을 많이 썼다. 형인 남병철은 철종 13년(1862)≪推步續解≫를 펴냈다. 이 책은 중국에서 나온 戴進賢≪曆象考成後編≫을 소화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역시 남병철이 쓴≪儀器輯說≫은 그 저작연대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시대 말기에 제작되었던 여러 가지 천문기구의 구조와 기능을 자세히 설명하는 점에서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된다. 여기 설명하고 있는 기구들은 혼천의·혼개통헌의·간평의·지구의·양도의 등등인데, 그 상세한 그림을 그려 놓지는 않았다.

 아우 남병길의≪星鏡≫은 철종 12년 관상감 제조인 그가 편찬한 별그림에다가 항성목록을 겸한 것이다. 2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1,449개의 별을 6등으로 나눠 그렸다. 또 철종 11년에 남병길이 낸≪時憲紀要≫는 시헌역법의 요점을 정리한 책으로 천문학시험에도 사용할 수 있게 편찬한 것이다. 그 밖에도 남병길은≪七政步法≫(철종 12)을 냈는데, 실제 책 이름은≪推步捷例≫로 되어 있고 역시 시헌력의 해설을 위한 책이다. 그의≪量度儀圖說≫(1권)은 철종 6년에 인쇄되었는데, 그의 형인 남병철이 여러 가지의 천문기구들을 설명한 책인≪의기집설≫에서 마지막으로 다룬 양도의를 아주 상세히 그림을 곁들여 설명한 것이다. 또한 남병길은≪중성신표≫·≪태양출입표≫·≪춘추일식고≫등 천문관계의 책들을 썼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