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3. 음악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3) 경학의 심화
          • 4) 의리론의 전개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5) 국가적 활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2) 학술활동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2) 실학사상의 전개
            • (2) 정치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2) 언어학
            • (3) 근대국어의 변화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2) 가사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2) 국문소설
        • 2. 미술
          • 1) 회화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2) 서예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목칠공예
          • 5) 건축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2) 기악의 발전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3) 민속무
          • 2) 체육
            • (1) 편사
          • 3) 연극
            • (1) 산대나희
            • (4) 민속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고취악의 변천 및 세악·내취의 등장

 조선 후기의 鼓吹樂은 아악·당악·향악의 경우처럼 조선 초기의 전통을 전승하였으나, 이것 역시 양란 이후 역사적 변천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시대적 변천은 불가피했던 역사의 대세였다. 고취악의 역사적 변천은 고취악현 및 여민락의 경우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의 고취악현은 초기 이래에 비해서 많이 축소됐다. 殿庭鼓吹의 악현을 실례로 들어 보건대, 성종 때의 악현은 50명으로 구성됐지만 정조 때의 악현은 27명으로 구성됐으니,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전정고취의 악현에서는 23명이나 감원됐다. 성종 때의 前部鼓吹와 後部鼓吹 악현은 모두 51명으로 구성됐으나, 정조 때에는 12명이 감원된 39명으로 구성되는 변천과정을 거쳤다.767) 고취악현의 축소과정에서 대체로 가얏고나 거문고 등의 현악기가 제외됨으로써 관악기 위주의 악기 편성으로 바뀌었으니, 이런 경향은 다른 궁중음악의 경우에서 발견된다.

 고취악의 계열에 드는 대표적 악곡 여민락은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역사적으로 변천됐다. 본래 한문가사를 가졌던 여민락이 현재의 것처럼 완전히 기악화된 때가 조선 후기였다. 조선 후기의 고악보에 나타난 현악여민락의 음악적 특징은 첫째 기본음 황종의 음고가 8도 높아진 점, 둘째 하행종지형이 상행종지형으로 변한 점, 셋째 10장의 여민락이 8·9·10장의 생략으로 인하여 7장으로 된 점, 넷째 여민락의 4·5·6·7장이 이전보다 빨라진 점, 이상의 네 가지였다.768) 4장부터 빨라지는 여민락이≪芳山韓氏琴譜≫·≪學圃琴譜≫·≪西琴譜≫등과 같은 조선 말기의 고악보에 전하기 때문에, 현행 여민락은 19세기의 악곡에서 거의 그대로 전승됐음이 명백하다.

 細樂·內吹의 등장은 조선 후기 음악사의 발전과정에서 중요시되는 사건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고취계열에 드는 세악과 내취가 현행 또는 內吹打의 전통과 역사적으로 관련됐기 때문이다. 18세기부터 日本通信使의 行列圖 및≪大典會通≫·≪春官通考≫등에 등장하는 세악과 내취는 모두 조선 초기의 전부고취나 후부고취처럼 관악기와 타악기의 악기편성으로 行樂을 연주한 점에서 서로 공통적이다.

 일본통신사행렬도에 나오는 세악은 대체로 吹鼓手와 細樂手로 구성된다. 사신행렬의 앞에 따르는 악대가 취고수였고 행렬 뒤에 따르는 악대를 세악수라고 불렀다. 취고수는 어가의 앞을 따르는 전부고취에 해당하고 세악수는 어가의 뒤에 따르는 후부고취로 보면 이해가 빠르다. 취고수와 세악수의 악기편성은 서로 달랐다. 통신사 趙泰億의 수행원 494명 중에 세악수 8명과 취고수 43명 총 51명이 수행했는데, 세악수는 해금 2명, 장고 2명, 젓대(笛) 2명, 피리(苾) 2명 이상 8명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취고수 43명은 喇叭手 6명, 螺角手 6명, 태평소 6명, 銅鼓 4명, 세악수(자바라) 3명, 鼓打手 6명, 三穴手 3명, 錚手 7명, 고수 2명이었다. 취고수의 이러한 악기편성에서 현행 취타나 대취타의 뿌리가 모색되어야 할 것이므로 취고수와 내취의 등장은 조선시대 음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조 9년(1785)에 편찬된≪大典通編≫의 조문에 비로소 등장하는 兼內吹와 元內吹에서 유래된 내취는 국왕의 거둥 때 또는 정전에 출좌할 때 시위가 그 임무였다.769) 그런데 그들은 장악원의 악공이라기보다는 어가의 거둥을 시위했던 군악대원일 것으로 보여진다. 헌종 10년(1844)경의 漢陽歌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나발·북 등의 악기들은 취고수의 악기편성과 관련됐기 때문이다.

崇禮門 밖 나오신, 啓螺次知 선전관이,

자주 걸러 여기 와서, 吹打를 청한 후에,

兼內吹 牌頭 불러, 취타령 내리오니,

겸내취 거둥 보소. 초립 위에 雀羽 꽂고,

누른 天翼 藍纏帶에, 鳴金三聲한 연후에,

고동이 세 번 울며, 군악이 일어나니,

엄위한 喇叭이며, 애원한 號笛이라.

旌旗는 표표하고, 金鼓는 당당하다.

한 가운데 吹鼓手는, 흰 汗衫 두 북채를,

일시에 수십 명이, 行鼓를 같이 치니,

듣기도 좋거니와, 보기에도 엄위하다.

  (李石來 校註,≪風俗歌詞集≫, 신구문화사, 1974, 79∼80쪽).

 위에 인용한 바의 한양가에 의하면, 국왕이 거둥할 때 참가했던 내취는 시위행렬의 일원으로 포함됐던 군악대원이었으며 행차 도중에 연주했던 악기들은 취고수의 악기편성처럼 호적·나발·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행차 때의 내취와 다른 내취가 궁중에서 활동했는데, 그것이 바로 船遊樂의 정재반주를 맡았던 연주단이었다.

 순조 29년(1829) 慈慶殿의 진찬 때 선유락의 정재반주를 담당했던 내취의 악기편성은 鉦手 1명·고수 2명·호적수 6명·자바라수 4명·나발수 4명, 이상 5종의 17명으로 구성됐다.770) 선유락의 정재반주를 맡았던 내취들이 군인이었기보다는 장악원 소속의 악공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궁중정재의 반주음악을 악공이라는 전문음악인이 아닌 군악대원들이 연주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헌종 14년(1848), 고종 5년(1868)·14년·24년·29년 등의≪진찬의궤≫및 고종 10년의≪진작의궤≫와 광무 5년(1901)의≪진연의궤≫에도 선유락 관련의 내취가 언급됐으므로771) 내취의 정재반주는 고종(1863∼1907) 말년까지 계속됐음이 확실하다.

 내취가 임금의 거둥 때 참여했고 내취의 악기편성이 취고수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내취는 취고수와 밀접하게 역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재반주의 음악을 제공하기도 했던 내취가 징·태평소·나각·나발·북으로 편성됐는데 이 편성은 대취타의 악기편성과 거의 같다. 따라서 조선 후기 내취의 전통이 현행 대취타에 전승되고 있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67)柳義養,≪春官通考≫권 하, 嘉禮, 行幸·狻御·擧動.

≪樂學軌範≫권 2, 雅樂陳設圖說.
768)李惠求, 앞의 글(1977), 431쪽.
769)≪大典通編≫권 4, 兵典 侍衛.
770)張師勛,≪韓國樂器大觀≫(한국국악학회, 1969), 239쪽.
771)張師勛, 위의 책, 221∼239쪽.

≪進饌儀軌≫己丑 권 3 및≪進饌儀軌≫戊申 권 3(영인본:≪韓國音樂學資料叢書≫3·6, 1980·1981, 國立國樂院).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